[우리말 산책]'알아야 면장을 한다'의 면장은 사람이 아니다
[경향신문]
배움의 중요함을 얘기할 때 쓰는 표현 중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면장도 알아야 한다’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논리적으로 맞는 표현이지만,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조금 이상하다.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표현에는 ‘면장’을 “행정 구역의 단위인 ‘이(里)’를 대표해 일을 맡아보는 사람”, 즉 이장(里長)보다 높은 ‘면장(面長)’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 사실 40~50년 전에는 ‘면서기’만 돼도 그 동네에서는 똑똑하고 힘깨나 쓰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 시절에 면의 행정을 맡아보는 으뜸 직위인 ‘면장’은 일반인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주 똑똑하고 높은 분이었으니, 그런 면장이 되려면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는 표현 역시 지극히 당연한 소리로 여겨졌을 법하다.
그러나 이 표현 속의 ‘면장’은 이장보다 높지만 군수보다는 낮은 ‘면장’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면장제가 확립된 것은 1910년 10월 일제가 수탈정책을 강화하고자 하부 지방행정조직까지 정비할 목적으로 ‘면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하지만 ‘면장’은 2500여년 전부터 쓰던 말이다. 원말의 ‘면장’은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난다”는, 즉 ‘면면장(免面牆)’이 줄어든 말이다. 이 표현은 공자가 자기 아들에게 “<시경>의 ‘수신’과 ‘제가’에 대해 공부하고 익혀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 데서 유래했다.
이렇듯 우리말을 바로 익히고 제대로 쓰려면 말의 어원이나 유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꾸미거나 고친 것이 전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티가 나지 아니하다”를 뜻하는 말로 ‘깜쪽같다’를 쓰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바른말은 ‘감쪽같다’이다. 이 말은 ‘곶감의 쪽(잘라낸 조각)은 달고 맛이 있어 누가 와서 빼앗아 먹거나 나누어 달라고 할까 봐 빨리 먹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흔적도 없이 다 먹어 치운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이다. 이런 유래를 알면 ‘감쪽같다’를 ‘깜쪽같다’로 쓸 리가 없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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