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임종' 후 떠난 아버지, 아들 작품에서 영면하다

김미리 기자 2022. 1.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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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서 개인전 '홈' 여는 지누박, 유쾌한 작품 해온 유명 디자이너
父 코로나확진 보름만에 세상뜨고 어머니와 세 살 아이까지 걸려
버려진 그림에 글씨 써 되살리고 팬데믹 시대 가족의 의미 되새겨
디자이너 지누박이 서울 노들섬의 전시장에서 ‘FATHER’라고 적힌 그림을 들고 있다. 딱 1년 전 코로나에 걸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방에 걸려 있던 그림에 그가 추모의 마음을 담아 글씨를 쓴 것이다. 마침 까만 배경에 흰 꽃 그림. 꽃으로 그린 영정이 돼버렸다. /장련성 기자

예술가가 가족을 소재 삼으면 반칙이란 말이 있다. 가족만큼 모두의 눈물샘을 직격하는 단어도 없는 데다, 예술가의 가정사는 왠지 평탄치 못할 거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20년간 ‘유쾌한 디자이너’란 수식을 달고 다닌 지누박(49·본명 박진우·대구대 교수)도 그랬다. 작품과 개인사는 깔끔히 분리해야 된다고 믿었다. 서울대 금속공예과, 영국 왕립예술학교(RCA)를 거친 뒤 재기 발랄한 작업으로 명성 쌓은 디자이너. 루이비통 가방에 가짜라고 쓴 ‘페이크백’, 스파게티처럼 빨간 전선을 늘어뜨린 ‘스파게티 샹들리에’ 등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12년)을 받기도 했다. 위트와 풍자를 작업 밑천으로 삼아온 그가 ‘HOME: 홈’이라는 제목을 달고 서울 노들섬 ‘스페이스 445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노들섬에서 열리는 지누박의 개인전 '홈'에 걸린 작품. 버려진 그림 위에 'Home Sweet Home'이라는 글씨를 썼다. /지누박

쿨한 기조를 유지했던 그의 작품 세계가 왜 갑자기 난류(暖流)를 만난 걸까. 그를 바꾼 건 불가항력의 역병, 코로나였다. “딱 1년 전입니다. 아버지가 사우나 갔다가 코로나에 걸리시고, 다음 날 어머니와 세 살배기 아이까지 확진됐습니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비극이 저희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죠.” 지난 7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싱글 대디. 홀로 감당하기에 벅찬 현실이 펼쳐졌다. “좀 쉬다 오겠다”며 아침에 염색까지 하고 앰뷸런스에 오른 아버지가 보름 만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다른 병원에 입원한 상태. 아버지의 산소호흡기를 떼는 결정도 그의 몫이었다. 돌아가시기 10분 전, 간호사가 영상 통화로 무의식 상태인 아버지를 연결해줬다. ‘원격 임종’이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에서 가족의 안위보다 나를 짓누른 건 ‘민폐’라는 단어였습니다.” 아이 어린이집, 대학에서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전염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공포가 더 크게 다가왔다.

노들섬에서 열리는 개인전 '홈'에 걸린 작품 앞에 선 지누박./장련성 기자

다시 일어서기 위해 작업에 매달렸다. 이번 전시에 내건 회화⋅가구⋅조명 등 50여 점은 슬픔과 공포를 딛고 써 내려간 극복기이자 비슷한 비극을 경험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코로나 당사자가 되어 보니 사회의 슬픔이 나의 슬픔과 연결되고, 나의 슬픔이 사회의 슬픔과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술의 힘은 ‘공감’과 ‘재생’임을 절감했다.

몇 년간 해온 프로젝트 ‘노 모어 아트(No more art)’를 집으로 확장했다. ‘No more art’는 미대 졸업생들이 버린 작품을 주워 그 위에 글씨를 써서 재생하는 작업. 기존 ‘No more art’ 문구 외에 ‘Home’ ‘Father’ 등을 추가했다. 가정의 중요함을 뜻하는 단어인 동시에 버려진 작품이 전시장에 걸림으로써 ‘새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매일 밤 같은 글씨를 200~300번씩 반복해 썼다고 한다.

전시장 가장 깊숙한 곳, 대문자로 ‘FATHER(파더)’라고 쓴 두 점이 눈에 띈다. “아버지가 보수적이어서 핫핑크로 요란하게 그린 제 작품은 그림이라고도 생각 안 하셨어요. 2년 전 얌전한 그림 좀 가져다 달라고 하시더군요. 마침 미대생이 버린 꽃 그림 정물화가 있어서 드렸지요. 유품 정리하려고 아버지 방에 가보니 찢어진 벽지 위에 그 그림을 걸어두셨더라고요.” 우연히도 검정 배경에 그린 하얀 꽃 그림이었다.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정물화 위에 ‘파더’를 썼다. 꽃으로 그린 아버지의 영정. 허망하게 떠난 아버지는 자식의 작품에서 영면했다. 전시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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