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암 "경기장서 악쓰는 감독은 下手.. 이 메시지가 제 원동력 됐죠"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 전 연세대 농구팀 감독 2022. 1.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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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희망에세이―나를 버티게 해준 한마디

휘문중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당시 167㎝로 키가 큰 편이었는데 그 후 10㎝밖에 안 자랐다. 스카우트가 안 돼 공부로 연세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휘문고 교장님 추천으로 연대 농구부에 들어갔지만 동기가 국가대표 박수교·신선우였다. 감독님이 출전을 시켜주질 않으니 나는 늘 불만투성이였다. 그때 인생을 좀 배웠다.

실업팀 현대건설 시절에는 이라크 파견도 다녀왔다. 농구는 1년 365일 똑같은 훈련을 하는데 회사 업무도 반복적이라 오래지 않아 숙달됐다. 현대건설이 수주한 이라크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수출 통관 업무를 했다. 귀국했을 땐 민주화 열기가 한창이던 1986년 한여름,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중학교 체육 선생으로 취업을 준비하다 모교로 귀국 인사를 갔다. 그런데 당시 연대 농구부는 김동원 감독님이 사퇴하고 선수들끼리 훈련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시 체육부장 문세영 교수님이 “9월 정기연고전까지 훈련을 좀 맡아달라”고 하셨다. 나는 ‘후임 감독이 오실 때까지’ 훈련을 돕기로 했다. 정기연고전을 마치고 추계연맹전을 치를 때까지도 후임은 결정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정식으로 감독을 맡게 됐다. 초보 감독 노릇은 했으나 벤치 운용이나 경기를 읽는 능력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TV로 미도파백화점 여자배구팀의 경기를 시청하게 됐다. 오래전 일이라 상대 팀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도파 이창호 감독님의 경기 운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상대편이 거세게 추격해온 때였다. 이 감독님은 작전타임을 불러 선수들을 쉬게 하면서 작고 나직한 목소리로 작전을 지시하곤 코트로 돌려보냈다.

일반적으로 상대가 턱밑까지 따라붙고 우리의 실수가 잦으면 감독도 흥분하기 마련이다. 선수들을 다그치게 된다. 이 감독님도 길길이 뛰면서 큰 소리로 선수를 책망하게나 삿대질을 하겠거니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벤치에 앉아 미동도 없이 차분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니. 그 모습이 내게는 너무도 생소했다.

나중에 현대건설 여자배구팀의 전호관 감독님을 사석에서 뵈었을 때 이창호 감독님의 벤치 운영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전 감독님은 “배구 코트에서 선수들에게 악쓰고 지시하는 감독은 하수(下手)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명감독은 경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훈련 때 철저히 준비하고 혹독하게 단련시키기 때문이었다. 경기장에서 악을 쓴다면 훈련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니 자기 얼굴에 침 뱉기였다. 즉 사전 준비가 안 된 감독들이나 괜히 소리 지르고 열심히 하는 척 쇼를 한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엄청난 복음으로 다가왔다. 훈련 목표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경기 종료 몇 초 전에 실수로 승리를 놓치곤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악쓰면 하수’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체력 훈련을 제외한 모든 훈련은 경기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며 대응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런 훈련 방식과 차분한 벤치 운영의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1990년 겨울철 농구대잔치. 연대는 당시 최강이던 기아 농구팀과의 경기에서 이상범 선수의 극적 버저비터로 대학팀 최초로 기아를 꺾었다. 이 경기에서 나는 경기 종료 4초 전 김유택 선수의 자유투 때 작전타임을 불렀다. 우리가 평소 훈련한 ‘3초 작전’을 차분하게 작전판에 그렸고, 이 모습이 TV로 생중계됐다. 이 작전에 따라 1초 전 오성식 선수의 패스를 받은 이상범의 버저비터가 골망을 흔들고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 경기를 시청한 팬들은 나에게 ‘코트의 교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이후 크고 작은 경기의 극적인 상황에서 승리하며 ‘코트의 마법사’로까지 불리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악쓰면 하수”란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설적 배구 감독님이 준 깨달음이 없었다면 농구 초보 감독의 출세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전 연세대 농구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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