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톡]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향기는 변함이 없다

손현 2022. 1. 10.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소셜 미디어에 연말 회고나 새해 다짐류의 글이 많이 보인다. 그중 신선한 소식이 하나 있었는데, 올해 서른 살이 된 직장 동료가 새해를 맞아 이름을 바꿨다고 알린 것. 그의 원래 이름이 한 번에 기억하기 쉽고 독특해서 좋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나 보다. “대학교에서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들을 때, 교수가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었어요. 제 이름을 부른 줄 몰라 출석을 놓친 적도 많았죠. 영어로도 발음하기 쉽고 간결한 이름으로 바꾸고 싶은 바람이 늘 있었어요.” 그의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이런 답이 돌아왔다.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해하셨어요. ‘그래, 이제는 네가 원하는 이름을 쓰라’고 하시더군요.”

/일러스트=양진경

주변을 보면 비슷한 사례가 의외로 많다. 아내와 가까운 친구는 대학 입시 즈음 이름을 바꿨다. 사주를 보니 돌림자를 사용한 원래 이름에 학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바꾼 경우다. 또 다른 지인은 아버지 성뿐 아니라 어머니 성까지 함께 쓰는 쪽으로 바꿨다. “원래 이름은 흔해서 동명이인이 많았어요. 앞으로 계속 디자이너로 일할 건데, 차별화된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아 양쪽 성을 쓰기로 했어요.”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평균 개명 신청 허가 건수는 약 13만건에 달한다. 요즘 법원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존중해 개명 신청의 95% 정도를 대부분 받아준다고 한다. 이름을 바꾸기까지 각자 사정이 다르겠지만, 지인들은 자발적 의지를 공통으로 꼽았다. 그동안 주어진 이름으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이소라 7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 ‘Track 9′ 가사 일부다. 이제는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다. 본인이 원한다면.

내 이름은 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셨다. 손자 손(孫)에 검을 현(玄)을 쓴다. 깊은 바닷속이 검은빛이듯 속 깊은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지으셨단다. 흔치 않은 외자 이름이고, 발음처럼 평생 ‘소년’처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만족해하는 이름이다.

한편 자식 이름을 지어야 하는 입장에 처해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작년 4월 딸아이가 태어났고 출생신고를 하려면 이름부터 정해야 했다. 양씨인 아내 성을 따 ‘양송이’라고 부르던 태명을 그대로 쓸 수도 없는 노릇. 아버지처럼 이름을 잘 지을 자신도 없어 결국 작명원에 의뢰해 후보를 받은 뒤 아내와 정했다. 이름에도 최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몇 가지 기준은 있었다. 소리 내어 부르기 쉽고 뜻풀이가 괜찮을 것. 영어로 쓰기도 어렵지 않고 중성적 이름일 것. 물론 아이가 성인이 될 무렵, 그 이름을 다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20년 정도는 유효할 거라 판단한다.

거의 모든 것의 이름이 변하는 시대다. 하물며 동네나 지하철역 이름도 바뀐다. 정당, 아파트, 기업 등이 이름을 바꾸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본질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더하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직장 동료가 새로 지은 이름은 ‘자유’다. 그의 이름처럼 앞으로의 삶은 자신의 개성을 지키는 자유로 충만하길 바라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