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톡]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향기는 변함이 없다
새해가 되면서 소셜 미디어에 연말 회고나 새해 다짐류의 글이 많이 보인다. 그중 신선한 소식이 하나 있었는데, 올해 서른 살이 된 직장 동료가 새해를 맞아 이름을 바꿨다고 알린 것. 그의 원래 이름이 한 번에 기억하기 쉽고 독특해서 좋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나 보다. “대학교에서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들을 때, 교수가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었어요. 제 이름을 부른 줄 몰라 출석을 놓친 적도 많았죠. 영어로도 발음하기 쉽고 간결한 이름으로 바꾸고 싶은 바람이 늘 있었어요.” 그의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이런 답이 돌아왔다.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해하셨어요. ‘그래, 이제는 네가 원하는 이름을 쓰라’고 하시더군요.”
주변을 보면 비슷한 사례가 의외로 많다. 아내와 가까운 친구는 대학 입시 즈음 이름을 바꿨다. 사주를 보니 돌림자를 사용한 원래 이름에 학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바꾼 경우다. 또 다른 지인은 아버지 성뿐 아니라 어머니 성까지 함께 쓰는 쪽으로 바꿨다. “원래 이름은 흔해서 동명이인이 많았어요. 앞으로 계속 디자이너로 일할 건데, 차별화된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아 양쪽 성을 쓰기로 했어요.”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평균 개명 신청 허가 건수는 약 13만건에 달한다. 요즘 법원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존중해 개명 신청의 95% 정도를 대부분 받아준다고 한다. 이름을 바꾸기까지 각자 사정이 다르겠지만, 지인들은 자발적 의지를 공통으로 꼽았다. 그동안 주어진 이름으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이소라 7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 ‘Track 9′ 가사 일부다. 이제는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다. 본인이 원한다면.
내 이름은 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셨다. 손자 손(孫)에 검을 현(玄)을 쓴다. 깊은 바닷속이 검은빛이듯 속 깊은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지으셨단다. 흔치 않은 외자 이름이고, 발음처럼 평생 ‘소년’처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만족해하는 이름이다.
한편 자식 이름을 지어야 하는 입장에 처해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작년 4월 딸아이가 태어났고 출생신고를 하려면 이름부터 정해야 했다. 양씨인 아내 성을 따 ‘양송이’라고 부르던 태명을 그대로 쓸 수도 없는 노릇. 아버지처럼 이름을 잘 지을 자신도 없어 결국 작명원에 의뢰해 후보를 받은 뒤 아내와 정했다. 이름에도 최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몇 가지 기준은 있었다. 소리 내어 부르기 쉽고 뜻풀이가 괜찮을 것. 영어로 쓰기도 어렵지 않고 중성적 이름일 것. 물론 아이가 성인이 될 무렵, 그 이름을 다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20년 정도는 유효할 거라 판단한다.
거의 모든 것의 이름이 변하는 시대다. 하물며 동네나 지하철역 이름도 바뀐다. 정당, 아파트, 기업 등이 이름을 바꾸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본질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더하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직장 동료가 새로 지은 이름은 ‘자유’다. 그의 이름처럼 앞으로의 삶은 자신의 개성을 지키는 자유로 충만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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