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어머니' 35년 만에 아들 곁으로
[경향신문]
1987년 6월 열사의 산화 이후
유가협 회장 때 422일 농성 등
일평생 민주화·인권 운동 헌신
문 대통령, 조선대 빈소 찾아
“오늘날의 민주주의 만들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5시28분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8일 퇴원했으나 다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뒤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아들이 떠난 지 약 35년 만에 아들 곁으로 갔다.
배 여사의 인생은 아들이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뒤 송두리째 바뀌었다. 배 여사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1929~2011)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1928~2018) 등과 함께 민주화를 위한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현장을 지켰다.
유가협 회장 시절인 1998년부터 422일 동안 국회 앞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2009년에는 용산참사 범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피해자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했다. 그는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정치권은 조문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김정숙 여사와 함께 광주 조선대병원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민주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와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간 배은심 여사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면서 “고인의 평화와 안식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빈소를 지키고 있던 유가협 회원들에게도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냐”고 위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이제 이 세상은 우리들께 맡기고 편안하게 영생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평생 자식을 가슴에 묻고 고통 속에 사셨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며 “저를 볼 때마다 아들 보는 것 같다고 반가워하셨다. 지난번에 전화를 드렸을 때만 해도 정정하셨는데…가슴 아픈 일”이라고 토로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배은심 여사께서는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35년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해오셨다.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여사님의 그 뜻, 이제 저희가 이어가 민주주의 회복과 발전으로 보답하겠다”고 썼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이날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심 후보는 “어머니가 온몸으로 실현하려 했던 민주주의가 더 꽃피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전남 시민사회는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재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대표는 “배 여사님의 존재와 활동은 민주화운동 단체에 큰 힘이 됐다”며 “민주열사들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는 것을 그렇게 바라셨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관장도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찾아가기로 약속을 잡아놨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늘 못 잊어 하던 아들 옆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리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김순 광주·전남 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어머니(배 여사)를 보낼 수 없다. 보내고 싶지 않다”면서 “어머니는 민주유공자법을 만들기 위해 지난달 말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셨다. 한 달에 3분의 1을 그 앞에 서 계셨던 분”이라며 애도했다.
박용근·박홍두·박순봉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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