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 기피하는 이재명·윤석열, '미니 공약'만 쏟아진다
'다양한 니즈 충족' 이면에 '미래 비전 실종'
이번 대선 특징 중의 하나는 여야 대선후보들의 생활밀착형 공약 경쟁이다. 경제성장, 균형발전, 노동개혁 등 불특정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찬반이 첨예한 거대 담론보다는 특정 계층의 다양한 요구에 소구하는 '마이크로 정책'을 부각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부터 발표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이 대표적이다. '정권 심판'을 앞세워 공중전에 주력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새해 들어 '석열씨의 심쿵약속'이란 이름으로 생활밀착형 공약 경쟁에 가세했다. 체감도가 높은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호응을 즉각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정작 국가를 어떻게 이끌지와 직결되는 국정 운영 비전은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재명 '소확행 공약'에 지지율 상승 효과
이 후보가 지난해 11월 이후 이달 9일까지 발표한 소확행 공약은 총 43건이다. 지난해 11월 11일 첫 소확행 공약인 '가상화폐 과세 1년 유예'를 발표하면서 "좋은 정치는 작지만 소중한 민생과제를 하나하나 실행해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상대적으로 취약한 청년과 여성 등을 겨냥한 맞춤형 정책을 쏟아냈다. 미혼 여성들을 겨냥해 산부인과를 여성건강의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임신 중지·피임 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약속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게임에 관심이 많은 '이대남(20대 남성)' 공략을 위해선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e스포츠 산업 육성 등을 약속했다.
이 같은 '다품종·소량' 공약 생산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게 이 후보 측 판단이다. 이달 3, 4일 진행된 KBS·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의 지지율은 39.1%로 윤 후보(26.0%)를 앞섰다. 두 달 전 대비 이 후보는 10.5%포인트 상승한 반면 윤 후보는 8.6%포인트 하락했다. 지지율 역전은 국민의힘 내홍 등에 따른 반사이익 측면이 크지만, 이 후보의 소확행 공약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최근 이 후보의 공식 애플리케이션인 '이재명 플러스'의 소확행 국민 제안 게시판에는 3,000건 이상의 글이 올라왔다.
윤석열, '반문' 공중전에서 '심쿵약속' 태세 전환
윤 후보도 당내 갈등을 봉합한 이후 '미니 공약' 발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9일 '석열씨의 심쿵약속' 네 번째 공약으로 청년층을 겨냥한 '전체 이용가 게임물의 본인인증 절차 폐지' 공약을 발표했다. 앞서 윤 후보는 △택시운전사 보호칸막이 설치 △ 주세(酒稅) 수입의 10% 음주운전 예방 활용 △반려동물 쉼터 확대 등을 발표하는 등 거의 매일 생활밀착용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윤 후보가 이준석 대표와 원희룡 선대본 정책본부장과 함께 출연한 '59초 영상'도 그 연장선상이다. 8일 공개된 첫 영상은 전기차 충전요금 동결과 지하철 정기권의 버스 환승 적용 공약을 담았다.
미래 비전 없는 '포퓰리즘' 대선 우려
역대 대선과 비교하면 이 같은 현상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1997년엔 외환위기 극복, 2002년 행정수도 이전, 2007년 한반도 대운하, 2012년 경제민주화, 2017년 적폐 청산 등이 대선을 달구는 쟁점이었고 유권자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이슈'를 중시하는 2030세대가 캐스팅보터로 떠오르면서 여야가 생활밀착형 공약에 보다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자칫 포퓰리즘 경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이 후보가 제시한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 대표적이다. 희귀·난치병의 건보 확대보다 시급한 사안인지, 탈모 개선에 건보 적용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인지에 대한 세심한 검토보다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모두 공약화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여야 후보들이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 우리 경제를 앞으로 어떻게 살릴지에 대한 성찰이나 청년의 미래와 직결되는 노동·연금 개혁 등 이해가 첨예한 문제에 대해선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정치가 유권자의 다양한 목소리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라면서도 "뚜렷한 미래 비전이 제시되지 못한 상태에서 공약이 표에 따라 움직이면서 대선의 무게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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