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산재에도..'볼멘소리'만 하는 재계

이혜리·노정연 기자 2022. 1. 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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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앞두고 한전 하청업체 감전사 등 여전
재계 “형사처벌 과도” 기존 입장 고수…안전 대책엔 ‘뒷전’
한전 “직접활선 작업 폐지” 등 대책…노동계 “현실성 없다”

고개 숙인 한전 경영진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에서 세번째) 등 경영진이 9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와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한국전력 하청업체 소속 30대 노동자의 감전 사망 등 산업재해 사고가 논란이 되는데도 기업 처벌에 대한 공포감 조성으로 법 취지가 퇴색되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책임 회피보다는 제대로 된 안전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기업 쪽의 대표적인 주장은 중대재해법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 개인을 형사처벌해 과도하다는 것이다. 특히 법문이 모호해 선의의 피해를 입는 사업주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처벌되려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경영계 우려만큼 지나치게 많은 처벌 사례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모호함이 있을 때는 가급적 수범자(기업) 입장에서 법 해석·적용을 하게 될 것이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변론의 기회가 있는데 경영계가 마치 그런 기회조차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심재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향후 판례나 실무 사례를 통해 사업주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해온 시민사회에선 기업들의 우려 속에 이 법 제정의 취지가 잊히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중요한 것은 이 법이 사업주를 단순히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사업주들이 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자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전력(한전)이 지난해 11월 발생한 협력업체 직원 감전 사망사고와 관련해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한전은 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에 작업자가 접촉하는 ‘직접활선’ 공사를 즉시 퇴출하고, 작업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것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정승일 한전 사장과 경영진은 9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한전은 감전·끼임·추락 등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3대 주요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정한 안전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작업을 시행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우선 감전사고 근절을 위해 작업자가 전력선에 접촉하는 ‘직접활선’ 작업을 없앤다.민원 등으로 인해 잘 이뤄지지 않았던 ‘정전 후 작업’도 늘리기로 했다. 작업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작업도 금지된다. 전 공사 현장에 안전담당자도 필수 배치한다. 정 사장은 “한전 자체 직원 또는 외부 인력을 활용해 1공사 1안전담당자를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공사업체 간 직원 돌려쓰기, 불법하도급 등 부적정 행위가 적발된 업체와 사업주에 대해선 한전 공사의 참여 기회를 박탈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도입도 정부와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경기 여주의 한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한전 하청업체 소속 고 김다운씨(38)가 2만2900V의 고압 전기를 인근 공사장에 연결하는 작업을 하던 중 감전사고로 숨졌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한전 대책에 대해 “새로운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건설노조는 “의미가 있다면 ‘정전 후 작업’ 정도인데 구체적이지 않아 현실 가능성을 점쳐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한전은 발주자의 지위와 역할을 하겠다며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도급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한전을 원청 도급인으로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리·노정연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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