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이명원의 내 인생의 책 ①]
[경향신문]
지금은 문학평론가로 살고 있지만, 애초에 나의 희망은 남성합창단의 지휘자가 되는 것이었다. 고교시절에 활동했던 중창단과 합창단의 경험 때문에, 한때 성악과에 진학하는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는가와는 별도로, 경제적 사정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고3이 되어 진학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음악이 안 된다면 문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해 가을에 교내백일장에서 우연히 시 부문 은상을 받게 되었는데, 국어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을 주셨다. 어쩌면 내게 문학적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 이런 막연한 희망을 근거로 국문과에 진학했지만, 이후로 내가 시나 소설을 줄기차게 썼던 것은 아니다. 주변에 시를 잘 쓰는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내 언어나 감수성은 그들과 다른 구석이 많았다.
내가 문학평론가와 지휘자의 작업이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해석’의 문제 때문이었다. 악보와 작품은 칸트 식의 ‘물자체’ 비슷한 것이었지만, 고유한 해석을 통해 들숨과 날숨을 팽팽하게 통풍시킬 수 있다. 그것이 해석자의 독창성이다.
아침에는 철학과 사상서를 읽고, 오후에는 두꺼운 소설을 읽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시집을 읽는다. 이런 리듬으로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때 요절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우연히 읽었다. 주변부 도시하층민의 비애와 고백되지 않은 내적 고통과 비관주의가 친밀하게 느껴졌다. 기형도가 고교시절 ‘목동’이란 이름의 복사중창 단원으로 활동했다는 정보도 인상적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기형도론을 써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최종심에 올랐다. 그 이후로 계속 문학평론을 쓰게 되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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