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멸공 챌린지'
[경향신문]
1975년에 나온 군가 ‘멸공의 횃불’이 2014년 11월 느닷없이 뜬 적이 있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로 시작해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로 끝나는 그 옛날 군가가 국내 유명 음원·포털 사이트의 검색 순위 1위에 오른 것이다. 병역기피 의혹으로 재판을 받은 어느 가수가 컴백하자 누리꾼들이 반감을 표출하며 벌인 일이었다. 지금은 낯설고 뜻조차 헷갈리는 멸공이라는 말을 잠시나마 우리 주위로 불러낸 최근 사례이다.
1980년대 초까지는 가히 멸공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교 교실은 물론 동네 벽면에는 어김없이 반공·방첩이라는 글귀와 함께 멸공·통일의 구호가 붙어 있었다. 공산주의(자)를 멸(滅)한다, 곧 쳐부숴 없앤다는 멸공은 ‘반공’과 ‘승공’(공산주의를 이김)을 넘는 개념이었다. 공산주의를 이기는 최고의 단계가 멸공이었다. ‘충성’이나 ‘단결’ ‘필승’과 함께 전방 부대에서 가장 많이 병사들이 외쳤던 군 부대의 경례 구호였다.
그 ‘멸공’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멸공, #반공방첩 등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잇따라 올리자 윤석열 대선 후보 등 국민의힘 인사들이 화답하며 ‘멸공 챌린지’에 나선 것이다. 윤 후보는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를 방문해 멸치와 콩(멸·콩), 달걀과 파(달·파)를 사는 사진을 올렸다. ‘달파’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 김연주 상근부대변인 등도 비슷한 인증샷을 공개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멸치, 콩 반찬을 먹는 모습을 올리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상의 챌린지는 함께 좋은 뜻을 모으자는 공익 캠페인이 다수다. 코로나19 일선의 의료진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덕분에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재미를 위해 유행하는 춤이나 노래를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정 부회장이 서민들의 ‘멸공’이라는 구호에 대한 정서를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철 지난 ‘멸공’을 띄우고 그것을 또 정치인들이 챌린지로 퍼뜨리다니, 재미는커녕 씁쓸하다. 색깔론을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심산이라면 시대착오적이다. 상상력의 빈곤이 더 슬프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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