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떠났다" 우상호 의원, 배은심 여사 빈소 지킨다

변재훈 2022. 1. 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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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1987년 당시 연세대 학생회장, 이한열 열사 영정 들었던 인연
34년간 아들 자처…"어머니 같은 분, 더 잘 모시지 못해 회한"

[서울=뉴시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 앞줄 가운데·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7.06.08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아들만 못하겠지만 제가 한열이를 대신해 어머님 가시는 길 배웅하려 합니다."

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별세한 9일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장례식장 빈소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묵묵히 조문객을 맞이했다.

우 의원은 1987년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자신의 후배인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 이한열(당시 21세) 열사는 '6·10대회(고문살인 은폐 규탄·호헌 철폐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뒷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약 1개월 뒤인 7월5일 숨졌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돼 그해 6월 29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초석이 됐다.

이 열사의 장례식에서 우 의원이 영정을 든 사진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직선제 개헌 민주화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우 의원은 이후 사단법인 이한열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으며 매년 6월 9일 서울과 7월 5일 광주에서 열리는 이한열 열사 추도식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배 여사와 의붓아들의 연을 맺었다.

빈소가 마련되자마자 광주로 달려온 우 의원은 상주를 자임하며 3일장 내내 빈소를 지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 의원은 "6월 9일 한열이가 최루탄에 맞고 쓰러져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당시엔 6·10항쟁이 한창일 때라 매일 거리에 나가면서도 소생을 애타게 기원했다"면서 "한열이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을 치른 지 34년이 지났고 한열이를 대신한 아들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산동 자택 문제를 비롯해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의논하는 사이였다. 누나, 동생 등 다른 자녀가 있고 아들을 대신할 수는 없었겠지만 수시로 안부를 물었다. 손수 생일 잔치도 해드리고 민주화 투쟁 현장 곳곳에서 함께 해왔다"고 인연을 설명했다.

우 의원은 배 여사에 대해 "금쪽 같은 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아들을 대신 하겠다'는 일념으로 싸워왔고 많은 분들의 가슴을 울렸던 분이다"면서 "남아있는 사람 입장에선 이렇게 보내드릴 수 없다는 서운함이 남았다"고 털어놨다.

공교롭게도 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6월 9일은 우 의원의 친어머니가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난 기일이기도 하다.

우 의원은 어머니의 제사를 음력으로 옮겨 지내면서 매년 이 열사 추도식에서 배 여사의 곁을 지켰다.

배 여사도 생전인 지난해 6월 34주기 추도식에서 "6월 9일은 우상호에게는 악연의 날이다. 한열이가 우상호 어깨에 모든 짐을 지워준 날이 오늘이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추모식을 하면 우상호는 집에 안 간다. 어머니 기일인데 왜 안 가느냐 하면 '어머니 제사를 음력으로 바꿨다'고 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장례식장 내 이한열 열사의 모친 고(故) 배은심 여사의 빈소에서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역으로 출연한 배우 강동원을 맞아 이야기하고 있다. 우 의원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고 배 여사의 의붓 아들을 자처했다. 2022.01.09. hyein0342@newsis.com

우 의원은 "친아들처럼 대해주시며 아껴주셨다.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유세를 도와주시고 늘 진심으로 응원해주셨다"며 "다른 형제들도 제가 아들이 됐다고 생각한다. 살아 계신 동안 살뜰히 모시지 못해 아쉬움과 회한이 남는다"고 했다.

고인과의 기억나는 일화를 묻는 질문엔 " 어머니처럼 일상을 함께 한 분인데 특별히 인상 깊은 순간이 단 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어머니께서 생전 남기신 말을 곱씹어보게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생전 배 여사가 강조했던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대해선 "어머니께서 남기신 숙제"라고 했다.

우 의원은 "늘 '한열이는 좋은 대우 받았지만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다른 이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씀하셨다. 법안 통과를 위해 수정해야 할 사안, 현실적인 어려움도 자주 설명드렸다"고 말했다.

한편 1962년생인 우 의원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을 하면서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다. 이후 정계에 입문해 4선 의원을 역임했다.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제30주기 이한열 열사 추도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이한열동산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참석해 우상호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7.06.09. photo@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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