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안녕히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상상하는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끝을 가늠할 수도 가닿을 수도 없구나.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게 한둘이 아닐 텐데, '안녕히'는 어떤 말과 함께 쓰이나?(1분 안에 열 개를 생각해 낸다면 부디 당신이 이 칼럼을 맡아주오.
안녕히 갈 수는 있어도 안녕히 올 수는 없다니.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글살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상상하는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끝을 가늠할 수도 가닿을 수도 없구나. 바퀴 없는 자전거 타기. 달의 뒷면에 앉아 도시락 까먹기. 우리 아들의 아들로 태어나기. 배낭 메고 부산에서 출발해 강릉, 속초, 원산, 청진,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지나 모스크바까지 가기. 죽음의 길은 날아가는 걸까 걸어가는 걸까. 그러다 문득 현실로 돌아오면 새삼 알게 되지. 일상은 이다지도 진부하구나. 이토록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럴 때면 ‘안녕히’ 같은 말을 곱씹는다. ‘아무 탈이나 걱정 없이 편안하게’라는 뜻이렷다.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게 한둘이 아닐 텐데, ‘안녕히’는 어떤 말과 함께 쓰이나?(1분 안에 열 개를 생각해 낸다면 부디 당신이 이 칼럼을 맡아주오.)
아마도 이런 말들을 떠올릴 듯.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더 쥐어짜내면 ‘안녕히 돌아가세요.’ 정도. 뭐가 문제냐고? 이런 거지. ‘안녕히 오세요.’는 왜 안 되냐고? ‘안녕히 쉬세요. 안녕히 노세요. 안녕히 일하세요. 안녕히 드세요. 안녕히 보세요.’는 왜 어색하냐고? 뜻만 보면 낯가림 없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들러붙을 듯한데, 실제론 제약이 심하군. ‘안녕히’의 친구는 기껏 네다섯일 뿐. 안녕히 갈 수는 있어도 안녕히 올 수는 없다니.
인간은 말이 만들어 놓은 이런 ‘관계의 그물’ 속에 잡혀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망. 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제와 다르게 ‘안녕히 가세요.’ 날마다 새롭게 ‘안녕히 계세요.’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 3주째 정체 이재명, 설 전까지 ‘마의 벽’ 40% 뚫을까
- 윤석열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이번에도 ‘이대남’ 겨냥한 듯
- “우리는 ‘도급인’ 아닌 ‘발주자’”…산재 책임 피하려는 한전의 ‘꼼수’?
- 오세훈 “월세난민 외면” 비판하더니…시의회에 ‘맹탕 계획서’ 제출
- 안철수, 또 ‘마의 15%’ 넘겼다
- “달파멸콩” 윤석열 이어 나경원·김진태도 때아닌 ‘멸공 챌린지’ 왜
- 소방관 순직, 산업재해, 군 성폭력…그리고 ‘대통령의 약속’
- ‘델타+오미크론’ 잡종 변이 키프로스서 발견…이름은 ‘델타크론’
- ‘대장동’ 재판 10일부터 본격화…‘이재명 최측근’ 정진상 소환은 머뭇
- 스타벅스 가격인상에 기프티콘 ‘사재기’까지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