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거는 한겨레] 실명 취재, 고맙습니다

정은주 2022. 1. 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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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보도 윤리를 이야기할 때, 특히 실명 보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입니다.

취재원 실명 보도가 원칙이라고 당차게 맞섰지만, 그 뒤 기획재정부를 취재하는 1년6개월 동안 그는 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취재원 실명 보도가 독자들에게 더 큰 신뢰를 주기 때문입니다.

2회 부동산 편에서도 23명을 심층 인터뷰하며 취재원 실명 보도 원칙을 유지했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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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거는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정은주 | 콘텐츠총괄

1980년 9월28일치 <워싱턴 포스트> 1면에 재닛 쿡 기자가 쓴 ‘지미의 세계’(Jimmy’s World)라는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마약 중독에 빠진 8살 흑인 소년이 그 덫에서 벗어나려는 삶을 그려냈습니다. 소년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지미라는 가명을 썼지만 그 내용이 사실적이라서 편집국장 등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기사가 나가기 전에 취재 경위를 자세히 묻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퓰리처상까지 받은 이 기사는 허위로 드러납니다.

언론의 보도 윤리를 이야기할 때, 특히 실명 보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입니다. 취재원 실명 표기는 분명한 원칙입니다. 한겨레미디어 취재보도 준칙을 보면, 다만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취재원이 익명을 전제로만 말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그 정보를 입수할 다른 방법이 없거나, 실명이 드러나면 취재원이 각종 위해나 불이익에 노출될 위험이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익명을 사용하도록 합니다. 이때 기자는 취재원의 실명 및 신원과 함께 익명으로 표기하는 이유를 편집국장 등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편집국장은 익명 보도의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검토하고 보도 여부를 결정합니다. 보도를 결정하면 취재원 익명의 이유를 밝히고, 기자가 지어낸 가공의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정보를 기사에 추가해야 합니다.

취재원 실명 표기 원칙을 지키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취재보도 준칙은 공적 인물은 실명과 함께 그 신분 또는 지위를 밝히라고 돼 있지만, 오늘치 기사만 보더라도 ‘관계자’가 넘쳐납니다. 한국의 공직자들은 일상적인 정보라도 익명을 보장하지 않으면 입을 닫아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언론에 의견을 밝히는 역할을 맡은 대변인조차 공식 브리핑이 끝나면 관계자로 바뀝니다.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록되지 않는 세계로 숨어버립니다.

몇년 전 기획재정부를 취재할 때 경험입니다. 타사 기자들과 함께 몇가지 사항을 고위공직자에게 확인받고는 실명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모든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이라서 익명 보도할 이유도, 익명 요청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신문을 본 그는 연락해와 익명이 관행인데 왜 실명이냐고 화를 냈습니다. 실제로 타사 기사에서 그 고위공직자는 ‘관계자’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취재원 실명 보도가 원칙이라고 당차게 맞섰지만, 그 뒤 기획재정부를 취재하는 1년6개월 동안 그는 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취재가 어려워지더라도 익명 보도를 줄여나가고 싶습니다. 취재원 실명 보도가 독자들에게 더 큰 신뢰를 주기 때문입니다. 관행적으로 공직자를 관계자로 표기하는 것부터 바로잡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공직자가 아닌 시민 취재원도 더 많이 실명 표기를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첫 보도를 한 유권자 참여형 대선 정책 기획 보도 ‘나의 선거, 나의 공약’의 기후위기 편에서 심층 인터뷰한 취재원 26명을 실명 보도한 것이 그 노력입니다. 취재원들은 원하는 공약을 쓴 손팻말을 들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실명과 얼굴 공개를 허락하는 취재원을 찾기 위해 현장 기자들은 더 많이, 더 오래 뛰어야 했습니다.

2회 부동산 편에서도 23명을 심층 인터뷰하며 취재원 실명 보도 원칙을 유지했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입니다. 실명을 허락하고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전세보증금과 월세, 소득과 자산, 부채 등 가계 형편을 낱낱이 털어놓다 보니 익명 요청으로 끝나버렸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를 작성한 뒤 취재원이 나오는 부분을 미리 보여주며 실명 전환을 다시 부탁했습니다. 고심 끝에 몇몇은 실명 보도를 허락했습니다. 취재보도 준칙에 따라 실명 취재원 관련한 내용을 먼저, 그리고 더 상세하게 보도합니다.

클릭 한번이면 수많은 개인정보가 검색되는 디지털 시대에 시민이 실명 취재에 응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유권자로 내 목소리를 내겠다고 나선 시민 취재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독자의 신뢰와 공익적 가치를 함께 고민해주신 덕분에 작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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