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중대재해 '수심위' 책임소재 엇갈리는 배달독촉 교통사고 등 다뤄..자문 역할 그쳐 한계도
'논란·여론몰이 조기 차단' 의도
일반인 심의요청·위법판단 못해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것은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제3자인 전문가 판단을 통해 중대 재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고용부 수심위는 일반인의 심의 신청권을 허용하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도 다루지 않아 한계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일 고용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달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수심위 설치와 관련해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설치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수심위를 설치하고 별도의 자문단을 꾸리기로 방침을 바꿨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고 고용부 지방 관서에서 중대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경우 적극 대응하기 위한 방침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수심위가 다루는 사건도 질병·교통사고·자살 등 업무로 인해 발생한 사건 중 중대 산업재해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로 한정됐다.
중대 재해는 중대 시민재해와 중대 산업재해로 나뉘는데 중대 산업재해 수사는 고용부가 담당한다. 이에 따라 초과근무로 인한 과로사, 배달 독촉으로 인한 교통사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등 사용자와 근로자의 책임 소재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들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수심위는 수사 중간이 아닌 개시 단계에서만 역할을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자체에 대한 사항도 심의하지 않는다. 중대 산업재해로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사건 역시 맡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고용부와 검찰이 담당한다.
고용부 수심위는 검경 수심위와 명칭이 같고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검찰 수심위는 국민적 의혹이 불거진 사건을, 경찰 수심위는 수사 적정성 논란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심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부 수심위는 질병에 대한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가깝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일반인에게는 심의 요청권이 없다는 점이다. 검찰 수심위의 주요 목적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다. 수사기관이 아닌 제3자에게 사건에 대한 판단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뒀다. 대신 무분별하게 심의 요청이 이어지거나 검찰 수심위가 불기소를 결정하면 검찰이 기소 결정을 내릴 때 부담을 받을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고용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일반인의 심의 요청권을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위원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다. 고용부는 심의 대상 사건의 피의자 및 피해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위원은 심의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소속도 제척 대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앞두고 여러 기업이 주요 법무법인을 선점한 상황을 고려하면 수심위 위원이 될 인력 자원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심위에 참여하는 전문가의 기준이 높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최대 인원 15명 중 의학, 법률, 산업 안전 보건 등의 전문가가 12명 내외로 꾸려진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최소 10년 이상 활동한 경력이 필요하다. 통상 정부 자문 기구 위원이 요구하는 경력이 5년인 점을 고려하면 더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셈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상근 전문위원 자격도 5년 이상 경력이다. 수심위가 10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특성상 심의가 긴박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부 수심위는 수시 개최가 원칙이고 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정해지면 한 달 이내에 처리한다.
한편 고용부는 30명 내외로 의학·법률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문단도 구성한다. 수심위와 달리 분야별 5년 이상 경력 보유자로 자문단을 꾸릴 방침이다. 자문단은 수심위처럼 중대 산업재해 가운데 질병에 대한 판단과 사건 수사에 대한 법률 자문 등을 맡는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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