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53] 호랑이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2. 1. 9. 17: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밤중 숲속에서 눈부시게 타오르는 호랑이여, 호랑이여!

어떤 불멸의 신이, 어떤 손과 눈이 너의 무시무시한 균형을 만들 수 있었나?

얼마나 깊은 곳, 머나먼 하늘에서 네 눈의 불길은 타오르나?

어떤 날개를 타고 감히 솟아올라, 어떤 손이 그 불꽃을 잡을 수 있나?

어떤 어깨가, 어떤 기술이 네 심장의 힘줄을 비틀 수 있었나? (중략)

어떤 두려운 손이 감히 그 치명적인 공포를 움켜쥐는가?

별들이 그들의 창을 내던지고 그들의 눈물로 하늘을 적실 때,

자신의 작품을 보고 그분은 미소 지었나?

어린 양을 창조한 신이 너를 만들었나(후략)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1757~1827)

우주적이고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시. 호랑이를 통해 시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문제작이다. 지금은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시인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생전에 블레이크는 문단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믿은 신앙심이 깊은 시인이며 화가였다.

‘호랑이’가 실린 시화집 ‘경험의 노래’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유럽을 휩쓸던 1794년 간행되었다. ‘어린 양’과 대비되는 ‘호랑이’를 인간 영혼에 깃든 사나운 힘의 상징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나는 시인이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처음 보고 그 균형 잡힌 몸과 이글거리는 눈빛에 사로잡혀 시를 착상했다고 믿는다. 동물을 소재로 한 특이한 작품으로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 노래로 만들어졌다. 순하고 어린 양, 혹은 광폭한 호랑이. 우리가 모두 같은 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때로 믿기지 않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