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서 '질병'은 빼"..혁신기술 '계륵' 만드는 규제늪
한국, 어쩌다 기술 무덤이 됐나
헬스케어 핵심은 '질병 미리 진단'
韓선 질병 관련 유전자 검사 "불법"
기술 있어도 "차라리 해외로 가자"
동남아도 하는 원격진료도 불허
낡은 규제가 혁신 기술 막아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CES 2022’는 더 이상 전자·가전업체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최첨단 정보기술(IT)로 무장한 100여 개 헬스케어 업체들은 신개념 건강관리 기기와 검진 기기를 내놓으며 수많은 소비자에게 ‘건강한 미래’를 약속했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 덤테크도 그런 회사 중 하나였다. 침이나 피를 채취하지 않고 피부에 패치를 붙이는 방식으로 자외선 취약 정도는 물론 피부암 발병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선보인 것. 국내 헬스케어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선 시도할 생각조차 못해본 기술”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질환 관련 유전자검사를 병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게 불법이기 때문이다. CES 2022에 대해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무대”란 평가가 국내 헬스케어업계에서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규제가 만든 ‘반쪽 기술’
올해 CES의 헬스케어 분야를 관통한 키워드는 ‘대중화’였다. 헬스케어 업계 최초로 CES에서 기조연설을 한 미국 헬스케어기업 애보트의 로버트 포드 회장은 “진단기술을 의료 영역에서 건강관리 영역으로 확장해 누구나 발전하는 진단기술의 혜택을 손쉽게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인구 3명 중 1명에게 애보트 제품이나 서비스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면서 팔뚝에 부착하는 동전 크기만 한 센서를 이용해 식이요법, 운동, 숙취 등과 관련된 4개 생체신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링고’란 제품을 선보였다.
이를 지켜본 국내 헬스케어업계의 반응은 부러움 반, 허탈함 반이었다. 한 업체 대표는 “헬스케어 관련 규제가 적은 미국 기업이라 저런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규제의 벽에 가로막힌 경험을 해본 대다수 한국 헬스케어 기업은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않을 때가 많다”고 했다.
덤테크가 선보인 피부 진단기술이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피부세포를 채취할 수 있는 패치를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피부에 붙이고 떼어낸 이 패치를 우편으로 보내고 3일 뒤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병원에서 혈액을 채취하지 않고서도 집에서 편하게 흑색종 발병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은 꿈도 못 꾼다. 국내에선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항목은 질병과 무관한 비만, 식습관, 운동에 의한 체중 감량 효과 등 건강·운동 관련 항목에 한정돼서다. 국내 소비자대상 직접유전자검사(DTC) 기업들이 한국 대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질병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먼저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격의료도 ‘그림의 떡’
올해 CES를 빛낸 원격의료 기술도 ‘남의 나라’ 얘기긴 마찬가지다. 일본 옴론헬스케어는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의 원격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 ‘바이털사이트’를 선보였다. 의사와 환자가 모니터를 통해 혈압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상담·진료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선 원격의료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위기상황이 ‘심각’ 단계일 때만 한시적으로 허용됐을 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에도 허용될지 여부를 알 수 없다 보니 원격진료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 사례도 있다. 한 국내 벤처기업은 인공지능(AI)으로 매일 각 개인의 건강 상태를 분석한 뒤 그날 필요한 영양제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솔루션을 CES에 출품했다. ㎜(밀리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각 개인에게 필요한 영양제를 제공하는 게 이 솔루션의 핵심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비타민C 1000㎎ 하루 2알 복용’ 등 ㎜가 아닌 몇 알 단위로 제공토록 규제해 사업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이주현/이시은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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