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300명 넋 기린 '한국공원'..한국인은 모르는 인니 명소
현지인들 한복 입고 탑 배경으로 촬영 인기
10년 넘게 관리 소홀, 정부 무관심에 훼손
보수 작업도 일본 입김 탓에 2년 넘게 걸려
지난 8일 인도네시아 제2 도시인 동부자바주(州) 수라바야 도심 한복판의 공원. 히잡을 쓴 여성 두 명이 녹음 아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1,848㎡ 넓이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도 있었다. 연못과 꽃밭, 열대 나무가 어우러진 아담한 공원 중앙에 유독 눈에 띄는 탑이 있다.
탑에 새긴 한글 이름처럼 '평화 기원의 탑'이다. 이르면 21일 온전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막바지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약 6m 높이인 탑의 절반만 드러나 있었다.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저곳 틈이 벌어지고 훼손된 원석을 대리석으로 두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석판에 새겨 넣은 한글도 이전과 달리 깔끔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기자 일행은 오자와 띄어쓰기를 바로잡는 등 마지막으로 문구를 손봤다. 장장 2년여에 걸쳐 걸린 보수 작업의 시작과 끝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공원 이름마저 한국 공원(Taman Korea·타만 코레아)이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10년 넘게 공원과 탑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들조차 잘 모른다.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담긴 이 곳을 민간의 몇몇 탑 지킴이만 챙길 뿐 우리 정부 차원의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인들에겐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공원에서 만난 페브리(35)씨가 알려준 현지 관광 사이트에는 사진 여러 장과 함께 이렇게 소개돼 있다. '수라바야 한국 공원: 연중 무휴, 무료 입장. 양국 우정의 상징으로 2010년 개장. 태극기와 한글이 새겨진 탑 등 한국 역사와 테마로 꾸며진 공원은 촬영 장소로 인기.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한복을 입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음. 나무와 꽃밭, 연못을 갖춘 시원한 공원에서 체조, 요가, 그림 그리기, 각종 모임 등 다양한 활동 가능.'
공원을 대하는 양국의 격차는 탑이 품고 있는 슬픈 역사에서 비롯된다. '평화 기원의 탑'은 일제강점기에 머나먼 적도의 나라까지 끌려와 고초를 겪고 희생된 우리 조상 2,300여 명의 넋을 기릴 목적으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자진상규명위원회가 2010년 5월 세웠다.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은 수라바야시는 기꺼이 공원 부지를 제공하고 '한국 공원'이라 명명한 뒤 양국 친선의 상징으로 탑 건립을 도왔다.
그러나 끝내 탑 이름에 '추모'라는 글자를 새기지 못했다. 한글 석판에는 강제징용과 추모라는 탑 건립의 목적을 담았으나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석판에는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는 식의 설명만 달렸다. 일본 영사관이 탑 건립을 막기 위해 인근 주민들까지 동원해 물밑에서 수라바야시를 압박하고 탑 이름과 설명 문구까지 간섭하고 제동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본디 목적과 동떨어진 이름으로 탄생한 탑은 그렇게 관심에서 멀어졌고 긴 세월에 짓눌려 훼손이 심해졌다. 동부자바한인회 차원에서 두 차례 보수했으나 비상 조치에 그쳤다.
2019년 9월 기자가 처음 공원을 방문했을 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동부자바한인회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세상에 알렸다. 이듬해 3월 준공 목표였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일본의 입김 탓에 2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공사는 마침내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탑을 지키는 사나이'라 불리는 이경윤 동부자바한인회장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라는 사실을 여전히 석판에 새기지 못했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절충했다"며 "우리 정부의 외교력 부족과 무관심을 공사하는 내내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10년째 현지인들에게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공원 한쪽을 무궁화 꽃밭으로 꾸밀 구상도 밝혔다.
동행이 "자비까지 털어서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자 이 회장이 답했다.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데, 망가져 가는 탑을 볼 때마다 죄스러웠어요. 탑을 세웠으니 누구라도 지켜야죠."
수라바야=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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