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1년새 안전대책만 두번째.."효율보다 안전 택하겠다"(종합)

임애신 2022. 1. 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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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협력업체 직원 감전사고 사과
1공사 1안전담당자 배치·불법하도급 차단
인력·장비 실명제 도입하고 전수검사

[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정승일 한국전력(015760) 사장이 고개를 숙였다. 하청업체 직원이 숨진 지 46일 만이다. 한전은 이 사고를 계기로 작업자가 전력선에 직접 접촉하는 작업을 퇴출하는 대책을 내놨다. 한전이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마련한 것은 1년 새 두 번째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께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조사 및 수사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법적·사회적 조치를 이행하고 책임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 두번째)을 비롯한 임원진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 관련 대책 발표에 앞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사장은 협력사 직원이 사망한 이후 사과와 대책 발표가 늦은 것에 대해 “사고 경위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를 지속하고 다각적으로 준비를 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사고가 또 발생해서 제도권과 보강하는 작업을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전력 설비의 계획·건설, 유지·보수 과정에서 무정전, 신속 복구 등 전기 사용자의 편의 증진을 최우선으로 하고 예산 측면에서 효율 중심의 관리를 추구한 결과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안전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전 임직원이 되새기면서 올해를 중대재해 퇴출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1월 5일 한전 하청 근로자가 전기 연결작업을 위해 전봇대에 올라가 개폐기 조작 작업을 하다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치료 중 숨졌다.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이 사고와 관련 지난달 27일 한전 지사장과 하청업체 현장소장 등을 절연용 보호구 미지급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성남지청은 또 감전사고가 발생한 한전과 하청업체를 상대로 재해조사 및 산업안전 감독을 실시해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령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과태료 3480만원을 부과했다.

전력선 접촉과 전주 위 작업 금지

한전은 이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감전·끼임·추락 등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3대 재해별로 강화된 대책을 내놨다.

우선 감전사고 근절을 위해 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에 작업자가 직접 접촉하면서 작업하는 공법인 직접활선을 즉시 퇴출한다. 2018년부터 간접활선 작업으로 전환되고 있으나 약 30%는 직접활선 작업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또 비용과 시간이 더 들고 전력 공급에 지장이 있더라도 ‘정전 후 작업’을 확대한다

안전관리 개선 주요 대책 (자료=한전)
전기공사용 절연버켓(고소작업차) 차량의 밀림 사고 예방을 위해 2인 1조로 운전수가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만 아웃트리거가 조작되도록 하는 장치를 설치한 후 작업에 투입한다.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고임목 설치 여부를 확인한 후 작업을 시행하는 제도도 도입한다.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해 작업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작업은 전면 금지한다. 모든 배전공사 작업은 절연버켓(고소작업차)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절연버켓이 진입하지 못하거나 전기공사업체의 장비수급 여건이 곤란한 경우에 한해 해당 사업소가 사전 안전조치를 검토·승인 후 제한적으로만 예외를 적용하도록 했다.

철탑 추락방지 장치는 당초보다 3년 앞당겨 내년까지 완료하도록 했다. 추락방지망 설치 위치를 철탑 최하단 암(Arm) 하부 10미터로 조정하고, 구조를 개선해 안전도를 높일 방침이다.

이종환 한전 사업총괄부사장은 “공법의 개발이나 관리체계 강화는 장비와 시공 인력이 있어야 가능하고 시장 여건도 구비돼야 한다”며 “이번 대책 관련해서 비용을 아끼지 않고 가동 가능해지면 즉시 현장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전 책임 발주처로 제한…현장 준수 관건

이날 한전의 대책 발표에도 현재의 구조에서는 사고 발생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기공사업법 제3조에 의해 발전·송전·변전·배전 등 한전의 모든 전기공사는 면허를 가진 전기공사업체가 시행하게 돼 있다. 한전은 예외적으로 재해 등 비상 시 복구 공사만 직접 시행할 수 있다. 한전이 마련한 종합대책이 실제 현장에서 지키느냐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는 이야기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와 관련해 대책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전의 책임도 원청이 아닌 발주처로 제한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발주자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정 사장은 “발주자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적절하게 행사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책임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전기공사업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며 관리할 업체가 많아진 것도 문제다. 전기공사업 참여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후 표준공법 절차를 지키지 않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적발된 사례만 2011년 1만321개에서 2010년 1만2734개, 2020년 1만9358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영세 소규모 전기공사업체가 급증했고, 이로 인해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한 영향이다.

한전이 안전관리대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에도 102개 안전관리 개선 과제를 발굴해 추진했으나 이번 사고를 막지 못했다. 이번 대책도 공언(空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공사 1안전담당자 배치…인력·장비 실명제 도입

한전은 현장에서 종합대책을 준수하도록 한전 직원 또는 외부 인력을 활용해 1공사 1안전담당자를 배치할 계획이다. 지금은 연 28만여건의 공사 중 도급 공사비 2000만원 이상이거나 간접활선 공사에만 현장 감리원이 상주 배치한다.

(사진=연합뉴스)
불법 하도급 관행도 차단한다. 사전에 신고된 내용이 공사 현장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력·장비 실명제를 도입하고, 이를 안전담당자가 전수검사할 예정이다. 불법이 발견되면 즉시 공사중단 조치를 하고 해당 업체에 페널티를 부여한다. 반면 무사고 달성, 안전의무 이행 우수 업체 등에 대해서는 인센티브 확대할 방침이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전기공사 업체간 직원 돌려쓰기, 불법하도급 등 부적정행위가 적발된 업체와 사업주에 대해 한전 공사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게 정부와 협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작업자가 공사를 거부하고 중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확대도 독려한다. 기존에는 불이익을 우려해 제 기능을 못했지만 무리한 작업량, 단독작업 등 부적절한 작업 지시에 이 제도를 전면 확대함과 동시에 손실보전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현장에서 안전 관리가 미흡한 것은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김숙철 한전 기술혁신본부장은 “전기공사 업체가 워낙 많아 경쟁을 하다 보니 낙찰 하한선에 대부분 걸리는 경향이 있다”며 “발주 후 하청이 이뤄지면서 일부 예산이 삭감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부분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겠다”고 강조했다.

임애신 (vamo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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