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협력업체 직원 감전사망 두 달 만에 특별대책 발표.."전기 흐르는 전선 작업 즉시 퇴출"

노정연·이혜리 기자 2022. 1. 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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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에서 세번째)을 비롯한 임원진이 9일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한국전력(한전)이 지난해 11월 발생한 협력업체 직원 감전 사망사고와 관련해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한전은 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에 작업자가 접촉하는 ‘직접활선’ 공사를 즉시 퇴출하고, 작업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것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정승일 한전 사장과 경영진들은 9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정 사장은 “현장에서 생명을 잃으신 고 김다운님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 진심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 작업자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충분한 안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감전·끼임·추락 등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3대 주요재해에 대해 미리 정한 안전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작업을 시행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우선 감전사고 근절을 위해 작업자가 전력선에 접촉하는 ‘직접활선’ 작업을 없앤다. 정 사장은 “2018년부터 간접활선 작업으로 전환되고 있으나 약 30%는 여전히 직접활선 작업이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앞으로는 이를 완전히 퇴출해 작업자와 위해 요인을 물리적으로 분리하겠다”고 말했다.

차량 진입의 어려움 등으로 직접활선 작업이 불가피한 지역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직접활선 작업이 어려운 곳도 간접활선으로 가능한 공법을 개발하겠다”고 설명했다. 한전에 따르면 현재 간접활선 작업에 활용되는 공법은 9종이고, 올해 6종, 내년 3종이 추가로 개발될 예정이다.

민원 등으로 인해 잘 이뤄지지 않았던 ‘정전 후 작업’도 늘리기로 했다. 정 사장은 “정전 후 작업은 전기 사용에 민감한 사업체 등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충분한 예고와 임시 전기 공급 방법 등을 강구한 뒤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임원진이 9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와 관련해 대책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작업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작업도 금지된다. 한전은 “모든 배전공사 작업은 절연 버킷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절연 버킷이 진입하지 못하거나 전기공사업체의 장비수급 여건이 곤란한 경우에만 해당 사업소가 사전 안전조치를 검토·승인한 뒤 제한적으로 예외를 적용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전국 4만3695개소 철탑에 추락방지장치를 설치하는 작업을 계획보다 3년 앞당겨 2023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추락방지망 설치 위치를 철탑 최하단 암(Arm) 하부 10m로 조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전 공사현장에 안전담당자도 필수 배치한다. 연간 28만여건 공사 중 도급 공사비가 2000만원 이상이거나 간접활선 공사에는 현장 감리원을 상주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공사의 22%에 불과하다. 정 사장은 “한전 자체 직원 또는 외부 인력을 활용해 1공사 1안전담당자를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공사업체간 직원 돌려쓰기, 불법하도급 등 부적정 행위가 적발된 업체와 사업주에 대해선 한전 공사의 참여기회를 박탈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도입도 정부와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정 사장은 “즉시 가능한 것은 바로 조치할 것이고, 준비가 필요한 사항들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시행할 것”이라며 “한전 사장으로서 임직원 모두와 함께 이번 사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고용노동부와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으며 향후 법적 책임과 후속 조치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노동자들이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 노후 전선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앞서 지난해 11월 경기도 여주의 한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한전 하청업체 소속 고 김다운씨(38)가 2만2900볼트의 고압 전기를 인근 공사장에 연결하는 작업을 하던 중 감전 사고로 숨졌다. 한전 안전 규정상 2인 1조로 작업하게 돼 있지만 김씨는 당시 홀로 작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고압 전기작업에 쓰이는 고소절연작업차 대신 일반트럭을 타고 작업했으며 고무 절연장갑이 아닌 면장갑을 착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해당 사고와 관련해 지난달 27일 한전 지사장(안전보건 총괄책임자)과 하청업체 현장소장 등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고용노동부와 한전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한전 하청업체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46명이다.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에 따라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한전 대책에 대해 “새로운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건설노조는 “의미가 있다면 ‘정전 후 작업’ 정도인데 구체적이지 않아 현실 가능성을 점쳐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한전은 발주자의 지위와 역할을 하겠다며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도급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한전을 원청 도급인으로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건설노조는 “사고 원인은 위험의 외주화에 있고 직접고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적어도 한전은 전기 노동자들과 안전을 위한 협의체를 정기적으로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노정연·이혜리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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