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에서 바람으로"..'에너지 전환'이 일으킨 '일자리 전환'

김영배 2022. 1. 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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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발전 김덕열 센터장의 인생 급커브
최고령 화력발전소 '퇴역' 뒤 재생에너지 분야로
석탄발전 속속 폐지..일자리 대이동 예고
동서발전 사업부 소속 신재생에너지권역센터의 김덕열(가운데) 호남센터장이 전남 나주 센터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호남센터 제공

“그 시간에요? 저는 집에서 티브이(TV)로 ‘제야의 종’ (울리는 거) 보고 있었죠. 기분이야, 좀 아쉽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새로 맡게 된 업무를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했고요.”

지난해 마지막 날 밤 12시, 김덕열(54)씨가 꼭 30년 동안 몸담았던 화력발전소의 불이 꺼졌다. 발전소 보일러의 불을 잠시 꺼둔 게 아니라 수명 48년에 이른 호남화력발전소(전남 여수)가 문을 닫고 ‘퇴역’하는 순간이었다.

국내 최고령 석탄화력발전소의 퇴역 당시 그의 머릿속에는 높이 30~40m의 대형 보일러 영상이 떠올랐다고 했다. 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들어내는 보일러는 태양을 연상시키게 할 정도로 밝고 뜨겁다. 화력발전소의 상징이다. 보일러 주변에는 ‘점검 창’이 설치돼 있어 밖에서 연소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돼 있다.

그가 호남화력발전소에 입사한 것은 1992년이었다. 당시 발전소는 한국전력 직속 조직이었다. 발전소 입사 전 제지회사(전주제지)에서 7년가량 일했던 그는 “일이 적성에 잘 맞지 않았고, (당시엔) 미혼이라 자유로운 처지이기도 해서”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호남화력으로 옮긴 뒤 초기에 그가 맡은 일은 환경 관리 업무였다. 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 물질, 폐기물 따위를 처리하는 설비를 운영·관리하는 일이었다.

그의 이력에 변화를 일으킨 결정적 계기는 2013년에 새롭게 제시된 정부의 에너지 정책(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이었다. 호남화력처럼 낡은 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는 내용이 여기에 들어 있었다. 미세먼지를 줄이자는 취지였다. 호남화력발전소는 1973년 생겨나 본래 수명 30년을 훌쩍 넘기고 10년이나 더 지난 상태였다.

전남 여수에 있는 동서발전 호남화력발전소 전경. 지난해 12월31일 밤 12시 가동을 중단하고 생겨난 지 48년 만에 일선에서 ‘퇴역’했다. 동서발전 제공

정부 정책에 따라 발전소 폐쇄는 기정사실로 굳어져 회사 쪽은 화력발전소 대신, 엘엔지(LNG)나 재생에너지 발전을 개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그가 새로운 발전원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분야인 미래사업부로 이동 배치된 실마리였다. 호남화력발전소 후속 사업 모델을 마련하는 일이 해당 부서의 몫이었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던 옛 직장이나, 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드는 현업 모두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는 쪽인 반면, 새로 맡은 업무는 햇빛과 바람을 빚어 전기를 만드는 일이니 정반대 성격이었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외적 강제가 인생 경로를 거꾸로 돌려 놓은 셈이다.

”(미래사업부에 배치된) 초반 제 역할은 주로 지역주민 수용성 문제를 푸는 일이었습니다.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민원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호남화력 후속 발전사업의 당위성을 설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수시청, 지역 시민사회 단체를 상대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일이었죠. 외부 전문가들을 만나 새로운 전원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도 했고요.”

이후 그는 새로운 발전원을 개발하는 미래사업 분야에서 줄곧 일했다. 화력발전소 퇴역 직전인 12월20일 새로운 자리를 맡기 전 그의 명함에는 ‘미래사업팀장’으로 찍혀 있었다.

호남화력발전소는 퇴역 뒤 엘엔지(LNG)복합 및 연료전지 발전소로 거듭날 예정이다. 에너지 전환 정책에 맞춰 진행된 호남화력발전소 미래사업부의 준비 작업을 바탕에 깔고 있는 움직임이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퇴역식 때 이를 두고 “(퇴역은) 마침표가 아니라 이음표”라고 했다.

두 차례에 걸친 수명 연장 공사를 통해 48년의 명맥을 이어온 발전소의 인력 320명 중 290명은 다른 분야로 재배치되거나 자산관리 업무를 위해 잔류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김덕열씨는 재배치된 사례다.

그가 새로 맡은 자리는 동서발전 신재생에너지권역센터 호남센터장이다. 나주에 사무실을 둔 호남센터는 인근 지역에서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전원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호남화력발전소 근무 시절 맡았던 일의 연장선인 동시에 화력발전소의 그늘에서 온전히 벗어났다는 차이점을 아울러 띠고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석탄발전의 잇따른 폐쇄로 일자리가 덩달아 전환되는 사례는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2034년까지 가동 30년에 이르는 석탄발전 24기(2024~26년 7기, 2027~30년 11기, 2031~34년 6기)를 엘엔지 발전으로 전환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기 때문이다. 2034년 말 기준 잔존 석탄발전 37기도 암모니아 발전, 엘엔지 대체 후 수소 발전,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석탄발전소 발전사 및 협력사 인력은 1만5천명에 이른다. 주기기(터빈 및 발전기) 운전, 관리·감독 등 6천명, 연료·환경 설비 운전, 경상 정비 등 9천명가량으로 파악돼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이 자칫 일자리 불안과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재배치 유도 노력과 함께 발전회사들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나서야 할 까닭이다.

동서발전 호남센터는 충청(대전)·경기강원(원주)·영남(대구)센터와 함께 신재생에너지권역센터의 4개 축을 이룬다. 중심축 구실을 하는 충청센터 소속인 제주분소 인력까지 합해 권역센터에 배치된 인원은 100명에 이른다. 지난 12월 조직개편으로 ‘신재생에너지권역센터’의 인력을 기존 18명에서 82명을 증원해 배치한 결과다. 호남센터는 신설 조직으로 이제 막 출범 채비를 하고 있는 준비 단계다. 선발대로 김 센터장을 포함해 5명이 파견돼 있으며 앞으로 25명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김 센터장은 “신안, 고흥 등 서남해권 해상 풍력발전을 중심으로 신규 전원을 개발해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서남해권은 바람(풍향, 풍질)과 일사량이 좋은 편입니다. 풍력발전 입지로 유망하다는 건 이미 많이 알려져 있죠. 소금값이 하락하는 바람에 폐염전이 잇따라 생겨나 이를 활용하면 태양광 발전도 많이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지역주민의 소득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동서발전은 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 정책에 따라 지난 2001년 한국전력으로부터 분리·발족한 발전 자회사 6곳 중 하나다. 지난해 ‘친환경 에너지 전환 선도기업’이라는 비전을 내걸었다. 발전사 중 최대 규모의 신재생 개발조직을 꾸리는 등 신재생·신사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직을 개편한 것은 그 일환이다. 동서발전 신재생에너지 개발 조직(신재생에너지권역센터) 소속 인력 규모는 2위권인 남부발전(40명 남짓)의 두배를 웃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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