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광화문 월대 난간석' 동구릉에 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2022. 1. 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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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이 1866년 경복궁 중건 당시 왕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광화문 앞에 조성한 넓은 단인 월대(月臺)는 일제에 의해 1925년 무렵 철거됐다.

월대 좌우에 있던 '난간석'과 월대로 이어지는 경사로가 왕의 길임을 표시하는 '용두석' 등이 없어졌는데, 사라진 석재들이 조선왕릉인 경기도 구리 동구릉에 남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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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문화 전문가 논문 통해 주장
일제 때 철거로 사라진 난간석과 용두석
구리 동구릉에 모여있는 석조물과 연관성
확인될 경우 광화문 광장 복원 때 활용 가능
1920년대 광화문 앞 월대와 난간석의 모습.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하고 있다. /사진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학술지 문화재
[서울경제]

조선 고종이 1866년 경복궁 중건 당시 왕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광화문 앞에 조성한 넓은 단인 월대(月臺)는 일제에 의해 1925년 무렵 철거됐다. 월대 좌우에 있던 ‘난간석’과 월대로 이어지는 경사로가 왕의 길임을 표시하는 ‘용두석’ 등이 없어졌는데, 사라진 석재들이 조선왕릉인 경기도 구리 동구릉에 남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선왕릉 석조문화재 분야의 전문가인 전나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계간 학술지 ‘문화재’ 투고한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동구릉에 보존된 석물이 실제 난간석으로 밝혀지면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추진하는 광화문 광장 복원에도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전나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가 지난해 촬영한 광화문 앞 월대 난간석(왼쪽)과 동구릉에 전시된 난간석들. /사진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학술지 문화재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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