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환자 300명 한겨울 도시락 먹는 사연..건물주·병원 갈등 [현장에서]
[경향신문]
광주광역시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 300여명이 한겨울에 열흘이 넘도록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병원이 법원 판결에도 건물을 비워주지 않자 소유주인 전남방직 측이 강제집행을 통해 환자들의 식사를 만드는 구내식당의 조리시설을 모두 뜯어 낸 탓이다. 광주에는 추운 겨울에는 강제집행을 통해 거주자 등을 퇴거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조례가 있지만 광주시는 “조례 적용대상이 아니다”라며 지켜 보고만 있다.
9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 북구의 한 요양병원은 열흘이 넘도록 입원 환자들에게 병원이 조리한 음식 대신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외부 업체에서 만든 도시락이나 죽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이 병원에는 치매나 뇌혈관질환, 암 수술 등을 받은 환자 300여명이 입원해 있다. 이 중 70세 이상 고령자는 250여명에 달한다. “따듯한 국을 먹고 싶다”는 환자들의 요청이 이어지자 병원은 최근 강당에 도시락으로 제공된 밥과 국을 데울 수 있는 간이조리시설을 설치했다.
이 병원은 원래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조리해 환자들에게 제공했지만 지난달 29일 150여명이 들이닥쳐 식당 조리시설을 모두 뜯어내는 강제집행을 했다. 2010년 1월 전남방직 기숙사 건물을 임대해 개원한 이 병원은 2020년 6월 계약이 종료된 이후 이전을 둘러싸고 전남방직과 갈등을 빚고 있다.
2019년 11월 공장 가동을 중단한 전남방직은 2020년 7월 부동산 개발업체와 부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병원이 건물을 비우지 않자 법원에 명도소송을 내 승소한 전남방직은 지난해 6월과 9월에도 병원장실과 원무과 등에 대한 강제집행을 진행했다.
전남방직 측은 “임대기간 만료 6개월 전부터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수차례 병원에 전달했으며 소송에서도 이겼다”면서 “병원이 환자들을 볼모로 보상금을 요구하며 버텨 부지 매매대금도 받지 못하는 등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식당 시설을 뜯어 낸 것은 병원에 불편을 줘 빨리 건물을 비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는 5월까지 이전을 확약하면 기다려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겨울 환자들의 정상적인 식사를 막은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환자 보호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안정된 식사는 쇠약한 환자들에게 치료의 방편이며 생명줄인데도 식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인도적 차원의 최소한의 배려조차 포기했다. 관계당국의 대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9년 4월 개정된 ‘광주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는 동절기(12월∼2월)에는 명도소송 등에서 승소했더라도 강제집행을 통해 건축물을 철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는 기존 거주자를 강제로 쫓아내지 못하도록 한 조례지만 광주시는 “이번 사건은 주택 재개발(주거환경정비) 사업이 아니어서 해당 조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요양병원 원장은 “병원을 인수한지 2년7개월 만에 쫓겨나게 됐다. 새 건물을 물색하고 있는 만큼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만이라도 운영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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