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만난 손흥민, 이번엔 우승 트로피 숙원 풀까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지난해 11월1일 토트넘은 누누 산투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 선임된 지 정확히 4개월 만이었다. 산투 감독 체제에서 치른 리그 10경기에서 토트넘은 5승5패, 12득점 13실점을 기록했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결과였다. 산투 감독은 선임 당시 다니엘 레비 회장을 제외한 모두가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발렌시아·포르투·울버햄튼 감독을 거치면서 일시적인 돌풍은 일으켰지만,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퍼포먼스와 선수 장악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전술적으로는 수비를 견고히 하지만 템포가 죽을 경우 무기력한 경기를 반복했다. 언론과 팬들의 혹독한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산투 감독은 토트넘 역사상 최단 기간,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빠른 경질 기록을 세우며 물러나야 했다.
토트넘 구단 이사회는 심각성을 느꼈다. 2020~21 시즌 리그 7위를 기록해 유로파리그 출전권도 획득하지 못하고 하위 대회인 유로파 컨퍼런스리그로 가야 했다. 토트넘이 리그 6위 안에 들지 못한 것은 2008~09 시즌 이후 무려 12년 만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티켓 수입과 스폰서 수입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출전을 통해 배당금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누적 손실은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9년 개장한 새 홈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 무려 1조5000억원의 건설비를 투입한 상황에서 위기감은 더 커졌다.
산투 감독의 실패는 검증된 사령탑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방증만 됐다. 토트넘은 그 교훈을 실천으로 옮겼다. 감독 경질 발표 하루 뒤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안토니오 콘테를 선임했다. 감독대행 기간도 두지 않고 현시점에서 최고의 인선을 한 것이다. 콘테 감독은 유벤투스·첼시·인터밀란에서 모두 트로피를 들어올린 우승청부사다. 한물간 전술이라던 스리백을 공격적인 윙백과 비대칭 전형을 활용해 새로운 트렌드로 이끈 인물이다. 특히 위기에 빠진 팀을 회생시키는 데 능한데, 첼시 시절의 성공 사례야말로 토트넘에도 가장 필요한 요소였다.
11위까지 추락했던 토트넘, 콘테 체제에서 5승3무
기대대로 콘테 감독은 빠르게 팀을 정비하며 반등에 나섰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기 전이어서 기존 선수들을 기용해야 하는 제한된 상황이지만 전술, 그리고 선수들의 의식을 개조시켰다. 에버턴과의 리그 데뷔전은 무득점 무승부에 그쳤으나, 이후 3연승을 달렸다. 콘테 감독의 본격적인 시험대라 할 수 있었던 지난해 12월19일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는 2대2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경기는 토트넘 선수단 내에서 총 2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2경기를 연기하고 2주 만에 치른 실전이었다. 손흥민 역시 장기간 팀훈련을 쉬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추측됐다. 훈련량과 실전 감각 부족으로 토트넘이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리버풀의 강력한 전진과 빠른 템포를 막아내는 견고한 전술을 선보이며 의미 있는 승점 1점을 챙겼다.
이후 3경기에서도 토트넘은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크리스털 팰리스에 3대0 완승을 거뒀고, 사우샘프턴 원정에서는 1대1로 비겼다. 왓퍼드 원정에서 상대의 밀집수비에 고전했지만 후반 추가시간 5분에 손흥민의 프리킥을 다빈손 산체스가 극적인 결승골로 연결하며 1대0으로 승리했다. 콘테 감독 부임 후 리그 8경기에서 5승3무를 기록 중이다. 팀이 챙길 수 있었던 24점 중 18점을 챙겼는데, 산투 감독 시절에 비해 승점 획득이 25% 상승했다. 총 14득점 4실점으로 경기당 득점은 0.55골 늘고, 실점은 0.8골 줄어 공수 밸런스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특유의 전술적 강점도 눈에 띈다. 스리백에 기반한 수비진은 이전보다 체계적인 압박을 통해 상대의 공격 속도를 저하시킨다. 산투 감독 시절 압박 위치 설정이나 지역수비 형성이 엉성해 조직력 문제를 지적받은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공격 전환 시 나아가는 빌드업의 목적성도 확실하다. 좌우 윙백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변함없었다. 왓퍼드전에서는 상대가 내려앉자 수비를 포백으로 전환하고 공격 숫자를 늘린 끝에 득점을 성공시키는 유연성도 자랑했다. 리그에서 무패 행진을 거듭한 토트넘은 21라운드를 마친 현재 승점 33점으로 6위에 올라있다. 코로나 확진자로 인해 2경기를 덜 치른 상황에서 4위 아스널을 승점 2점 차로 쫓고 있다.
콘테 "손흥민은 단지 좋은 선수가 아닌 최고의 선수"
국내 팬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새 사령탑인 콘테 감독과 손흥민의 궁합이다. 결론은 콘테 체제에서도 손흥민은 변함없는 토트넘의 에이스다. 감독 교체에 따라 입지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아시아 선수의 한계를 넘어 월드클래스로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프리미어리그에 앞서 콘테 감독의 토트넘 부임 후 첫 공식 경기였던 피테서와의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에서도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며 승리를 안겼다. 손흥민은 입단 후 새로 부임한 감독 3명(무리뉴, 산투, 콘테)의 데뷔전 첫 골을 모두 기록하는 진기록도 남겼다.
브렌트포드·노리치·리버풀·크리스털 팰리스를 상대로는 리그 4경기 연속골을 터트리며 콘테 감독 체제에서의 무패 행진에 확실한 동력이 됐다. 사우샘프턴전에서는 공격포인트가 없었지만 좋은 패턴 플레이를 만들며 공격을 이끌었다. 그리고 왓퍼드전에서는 극장골을 어시스트하며 세트피스 능력까지 과시했다. 콘테 감독도 손흥민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리버풀전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손흥민은 단지 좋은 선수가 아니라 최고의 선수다. 아주 훌륭하고 환상적인 능력을 갖췄다. 거기다 열심히 뛴다. 우리 팀에는 손흥민처럼 팀의 수준을 높여줄 선수가 더 필요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손흥민의 변함없는 활약만큼 반가운 것은 '단짝' 해리 케인의 부활이다. 맨체스터 시티로의 이적을 놓고 토트넘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다가 결국 잔류한 케인은 콘테 감독 부임 전까지 리그에서 1골을 넣는 데 그쳤다. 하지만 콘테 감독 체제에서는 3골을 기록 중이다. 특히 리버풀·크리스털 팰리스와의 경기에서는 손흥민과 나란히 득점포를 가동했다. 원터치 플레이를 강조하는 콘테 감독의 공격 전술에서 케인의 장점이 되살아났다. 짧은 훈련시간에 콘테 감독은 손흥민, 케인을 중심으로 확실한 공격 패턴 몇 가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것이 심플하지만 명확한 플레이로 이어지며 결정력을 되살렸다는 평가다.
산투 감독 체제에서는 태업까지 의심받던 선수들도 살아났다. 벤 데이비스, 델리 알리, 라이언 세세뇽, 다빈손 산체스, 해리 윙크스 등이다. 확실한 동기부여를 주고, 디테일한 전술 지시로 선수들의 진심을 끌어낸 것이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선수단 장악 능력은 왜 우승을 노리는 구단에 검증된 지도자가 필요한지를 증명했다. 콘테 감독은 "골을 넣은 공격수들은 항상 나머지 팀원들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헌신하며 기회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라며 팀 전체의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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