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헤중' 훨씬 오랜 헤어짐을 기약하는 만남으로 피날레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2. 1. 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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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SBS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제인 극본, 이길복·김재현 연출)가 종영했다. 강승원 작사 작곡, 김광석 노래의 ‘서른 즈음에’를 닮은 드라마였다.

‘매일 이별하는 삶’은 ‘매 순간 헤어지는 중인 삶’과 동의어다. 노래고 드라마고 산다는 건 떠나보냄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여주 하영은(송혜교 분)은 10년 전 첫사랑 윤수완(신동욱 분)을 떠나보낸 채로 시작한다. 드라마상 두 달의 연애였다. 퍽이나 요란했던 모양이다. 영은의 친구 황치숙(최희서 분), 전미숙(박효주 분)뿐 아니라 영은의 부모 하택수(최홍일분) 강정자(남기애 분)에 윤재국(장기용 분)의 어머니 민여사(차화연 분)와 수완의 약혼녀 신유정(윤정희 분)까지 모두 아는 연애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돼 한국에서 끝난 두달 연애의 여파가 10년 후까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뚜렷이 각인돼 있다는 설정은 너무 과해 초반 몰입을 저해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수완을 떠나보낸 하영은은 이후 일이건 사랑이건 감정을 배제하는 연습을 하며 패션회사 ‘더 원’의 톱브랜드 소노디자인 팀장으로 자리를 잡는다.

마음 끌리고 몸 끌리면 하룻밤 사랑도 오케이인 하영은은 부산에서 열린 제1회 K패션위크에서 윤재국을 만나 통성명도 없이 하룻밤을 함께 한다. 그 윤재국은 친구이자 더 원의 직장상사 황치숙과 맞선을 보기로 한 남자. 영은은 프로 실연녀 황치숙을 대신해 맞선 자리에 나갔다가 다시 윤재국을 보게 되고 인연은 다시 이어져 갑작스런 화보촬영의 포터그래퍼로 윤재국을 섭외하게 된다.

호감은 윤재국에게 먼저 찾아왔다. 누굴 책임질 생각없이 본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1순위로 두고 있지만, 그래서 기대할 일도 실망할 일도 없기 위해 안전거리 유지되는 관계만을 지향해온 윤재국이지만 어쩐지 하영은에게 끌린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관계에 사랑이란 감정이 사나브로 자리잡더니 감정배제니 안전거리니 따위 각각의 인생관을 기억도 안나게 쫓아버리고 눈에, 가슴에 서로만을 담게 만든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윤수완의 망령이 둘 사이에 드리워진다. 윤수완의 연인이 윤수완의 동생을 사랑하는 모양새를 확인하며 낭패한 두 사람이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왔다.

이러는 동안 하영은의 오랜 친구 전미숙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남편 곽수호(윤나무 분)·딸 지민과 아름답게 헤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영은과 윤재국이, 또 전미숙과 곽수호가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 황치숙은 석도훈(김주헌 분)과 새롭게 사랑을 키워간다. 드라마 문법상 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은의 부모 하택수와 강정자도 황혼이혼의 수순을 밟는다. 40년간 서로에게 '내 것' 이었던 두 사람은 앞집 아저씨·뒷집 아줌마가 되어 전구도 고쳐주고 반찬도 해주며 신경 거슬리던 각방살이를 청산하고 신경 써주는 각집살이를 시작했다.

하영은과 윤재국도 결국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사랑이 식어서도 아니고 사랑했기 때문에 떠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각자의 자리를 지키기로 한 것이다. 세상이 상관 없다 해도 그것이 그들의 일이라는 듯이.

하지만 만남 이전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하영은과의 사랑으로 포토그래퍼 윤재국은 피사체를 더욱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고 주제도 패션에 머물지 않고 다채로워졌다. 윤재국과의 사랑으로 디자이너 하영은은 조직 더 원을 떠나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추구할 힘을 얻었다. 그래서 개인 브랜드 ‘화답’을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서로를 떠나온 그들이 마주한 하늘은 더러운 천장처럼 얼룩졌을지 모른다. 내리쬐는 햇살조차 온기를 잃고 차가웠을지 모른다. 미련을 남겨둔 이별이 아니었기에 서로가 그리워도 안부조차 전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가 전해준 사랑의 힘으로 각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맞이한 부산 K패션위크. 둘은 다시 만난다. 첫 만남처럼 우연하게. 작위적인 만남이었다면 지난 2년 전의 헤어짐이 완결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운명이 새롭게 마련해준 만남이어서 두 사람은 지난 만남·이별과 무관하게 다시 헤어짐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엔 훨씬 오래도록 헤어져갈 것으로 기대된다. 등산가 누군가가 말했다 “산을 오르면 문제는 저 밑에 남아”라고.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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