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비상] 美 달러 올라도 수출주 매력 없어.."투자 늘리기보단 관망"

노자운 기자 2022. 1. 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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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투자 권고..매수한다면 리오프닝주 추천

회사원 최용준(34, 가명)씨는 지난 달 초 주식 포트폴리오를 대형 수출 기업 위주로 재편했다. 미국 중앙은행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가속화함에 따라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하면 수출주가 수혜를 볼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테이퍼링을 통해 전세계에 흩어진 달러를 회수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달러화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달러 강세가 나타난다.

그러나 최씨의 한 달 간 투자 수익률은 0.75%.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의 상승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는 실적 개선 가능성이 큰 수출주를 매수해야 한다는 지인들의 추천을 믿고 ‘버티기’에 들어갈 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고 미국 성장주를 사야 할 지 고민이다.

미국 워싱턴 D.C.연방인쇄국에 달러 지폐 뭉치가 쌓여 있다. /블룸버그

최근 미 달러화 가치가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다. 지난달 8일까지만 해도 1175.19원에 그쳤던 원·달러 환율은 7일 1202.40달러까지 올랐다. 전날 장중 한때는 1207.11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강달러 현상이 나타날 때는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강(强)달러=수출주 강세’라는 기존 투자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환율 자체가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만큼 크지 않으며, 최근 달러 강세를 둘러싼 환경이 수출주에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주식 비중을 확대하는 대신 관망하는 편이 낫고, 꼭 매수해야 한다면 수출주보다는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관련주나 대형 공모주를 사는 선별적 대응 방식이 확실한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 긴축 가속·무역수지 적자에 강달러 심화…“장기 우상향할 것”

지난해 초부터 지속돼온 미 달러화 강세는 최근 들어 심화했다. 원·달러 환율은 작년 1월 초 1080~1090원선에서 등락하다 10월 중 1200원선을 터치하고 다시 하락 전환했으나, 12월 초를 기점으로 빠르게 반등하고 있다.

최근 가속화한 강달러 현상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강화 우려에 영향을 받았다. 지난 5일(현지 시각) 공개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 테이퍼링과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위원들은 대차대조표 축소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차대조표 축소는 연준이 보유한 미 국채 등의 만기가 도래해도 재투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효과를 낸다.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 역시 달러화 가치 상승을 심화하는 요인이 됐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그간 원·달러 환율이 아무리 올라도 1200원이 지지선이었는데, 최근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무역수지가 적자 전환하자 달러 강세가 가속화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12월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8.3% 증가한 607억4000만달러를, 수입액은 37.4% 증가한 613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5억9000만달러 적자였다.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 국내 시장에서 달러화의 공급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달러화의 가치 상승으로 직결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강달러 현상이 올 한해 동안 지속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나, 상반기 중 일시적인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최 부문장은 “작년부터 지속된 강달러 현상의 기저에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미국 기업들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강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만약 유럽에서 서비스업이나 관광업 등이 정상화한다면, 미 달러화에 쏠렸던 자금이 유럽으로 분산되며 달러 강세가 완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부문장은 올 상반기 중 원·달러 환율이 5~10% 조정 받고 1150원선을 하회한 뒤 다시 강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 “강달러 심화하면 증시 자체 매력 떨어져…리오프닝·LG엔솔 투자해 선별적 대응”

전문가들은 미 달러화의 강세에도 수출주의 매수를 권하지 않는 분위기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총괄팀장은 “글로벌 경기가 좋을 때 달러화 강세가 나타난다면 수출주가 수혜를 볼 수 있으나, 최근의 강달러는 연준이 긴축을 서두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꼭 수출주가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강달러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엔·달러 환율의 상승세는 한층 더 가파르다. 지난 달 1일 112.75엔에 그쳤던 엔·달러 환율은 현재 115~116엔 사이에서 등락하고 있다. 최근 1년 간 상승률은 약 13%에 달한다. 환율만 놓고 볼 때 우리 기업이 일본 기업에 비해 수출 경쟁력이 크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격 경쟁력 자체가 수출 기업의 실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 부문장은 “요즘은 가격 경쟁력보다는 제품 자체의 매력도가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고 말했다. 테슬라나 애플과 같이 소비자 가격이 높아도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이 산업 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만큼, 과거와 달리 환율로 인한 가격 매력이 실적을 좌우할 만큼 강한 힘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부산항 신항에 컨테이너 선박이 입항해 수출화물과 환적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연합뉴스

증시 전문가들은 강달러 현상이 현 수준보다 심화하면 오히려 수출 기업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달러화의 가치가 지나치게 오르면 외국계 기관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할 뿐 아니라, 수입품의 가격이 비싸져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기 쉽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이 경우 국내 주식시장 전체의 유동성이 줄고 시가총액 상위권에 포진한 수출주들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유 총괄팀장은 “현 상황에서는 달러화 강세에 따라 새로운 투자 전략을 짜기보다는 보수적 관점에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지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출주와 내수주 사이에서 고민하기보다는 주식 투자 자체를 보수적으로 하며 관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 부문장 역시 방어적 투자를 권했으며, 꼭 주식을 사야 한다면 리오프닝 관련주를 매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대비 사망자 수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는 만큼 리오프닝주의 투자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대형 공모주를 사는 선별적 투자 전략으로 확실한 수익을 노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LG에너지솔루션은 시가총액이 워낙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관이 매수해야 하며, 패시브펀드 자금도 유입될 것”이라며 “지금은 기존 포트폴리오를 비우고 LG에너지솔루션을 담을 현금을 준비할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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