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수의 삼라만상 50] 아, 구공탄 난로에 라면을 끓이던 겨울 

정리=박명기 기자 2022. 1. 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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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입대 전 가리봉동 공장 지대에 있는 진도모피 앞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 다녔다.

당시 기억에 미국 DIC의 작품을 대행하는 일본 제작회사 도쿄무비의 하청 작품을 하는 회사였는다.

그 시절 겨울이면 아침마다 3구탄이 들어가는 연탄난로를 꺼지지 않게 서로 빌려 갈았다.

당시 일은 안 하고 매일 술만 마시며 여행을 다니던 세상을 떠난 배 선배라는 사람은 사무실에서 늦은 아침마다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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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니? 입대 전 가리봉동 '그림 공장에서 일하는 그림 그리는 공돌이'

군 입대 전 가리봉동 공장 지대에 있는 진도모피 앞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 다녔다. 

당시 기억에 미국 DIC의 작품을 대행하는 일본 제작회사 도쿄무비의 하청 작품을 하는 회사였는다. 삭막한 공장 건물 사이로 실크 염색공장이 애니메이션 회사와 같이 들어와 있었다. 

그 시절 겨울이면 아침마다 3구탄이 들어가는 연탄난로를 꺼지지 않게 서로 빌려 갈았다. 연 초처럼 휴일이 며칠 있는 날이면 냉골이 된 원화실에 온기를 빌려대느라 아침마다 옆방 컬러실에서 살아있는 연탄을 빌려 연탄불을 살려내곤 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선배들과 동료 몇 명 생각이 난다. 그 시절 건물로 들어갈 때, 셀 컬러와 작화지 냄새가 건물 안에서 바깥으로 비집고 나왔는데 아직도 그 냄새가 생생하다.

겨울이면 널찍한 회색빛 도로 풍경과 칼바람을 피해 빨간 싸구려 패딩을 교복처럼 입은 생머리를 뒤로 묶은 어린 여공들이 단체로 줄을 서서 출근했다.

당시는 죽어서도 욕을 먹는 한 독재자 각하께서 다스리던 시기였다. 나중에 중국을 갔을 때 우리의 풍경과 다를 바 없어 보이던 가난을 막 빠져나오는 못 살던 시기였다. 

당시 키(Key) 애니메이터들의 한 달 봉급이 주변 공장의 여공들 봉급보다 20배 정도 많았지만 실크를 인쇄하는 같은 건물 공원들은 우리를 항상 '그림 공장에서 일하는 그림 그리는 공돌이'로 불렀다. 

나는 구로동에서 그림 그리며 일하는 수출의 역군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추웠을까? 항상 뉴스에는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40년 만에 한파'

결국 한파는 매년 온 것이었다. 그 매서운 한파는 내가 가난을 떠난 이후 다시 찾아오지 않았지만 서울역 노숙자들처럼 한파란 놈은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다시 찾아오는 계절이었다. 

당시에는 "불 좀 빌려주세요"라는 말뜻이 두 개였다. 담뱃불 빌릴 때와 연탄 밑장 한 개 빌리는 일이었다.

당시 일은 안 하고 매일 술만 마시며 여행을 다니던 세상을 떠난 배 선배라는 사람은 사무실에서 늦은 아침마다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었다.

밤을 새우다가 새벽에 소주와 먹던 라면은 영화 '내부자들'의 이병헌이 먹던 라면처럼 맛있다. 

생각해보니 라면 냄새도 역시 그때가 더 좋았다. 갑자기 구공탄 난로에 라면을 끓여 먹고 싶어졌다. 생각만해도 따숩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주홍수 감독은 30년 가까이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며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출간했다.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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