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8년 만에 최고 신용 등급 노린다..롯데제과 역전 눈앞
[마켓 인사이트]
오리온의 신용 등급이 8년 만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역 다각화 노력이 성과를 내면서 영업 기반이 강화된 덕분이다. 오리온의 신용 등급이 오르면 공기업·금융사를 뺀 기업 중에서는 사실상 최고 수준이 된다.
시장 안팎에선 오리온이 실질적으로 무차입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 격화될 제과 기업 간 경쟁에서도 투자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신용 등급 전망 ‘긍정적’…‘AA+’ 눈앞
오리온이 숙원 과제를 풀게 됐다. 신용 평가사인 한국신용평가사로부터 기다리던 소식을 들어서다. 한국신용평가는 2021년 말 오리온의 무보증 사채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렸다.
현재 오리온의 신용 등급은 ‘AA’다. 신용 등급 자체로도 우량한 편이지만 오리온은 8년째 현재 신용 등급에 묶여 있다. 2014년 해외 제과 사업의 성장 덕분에 ‘AA-’에서 ‘AA’로 올라선 후 별다른 조정 없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제과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눈에 띄는 사업·재무 상태 개선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리온의 신용도가 8년째 정체된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신용평가가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부여하면서 신용도 상향 조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통상 신용평가사가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부여하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안에 실제로 신용 등급이 조정된다. 급격한 시장 안팎의 변수가 발생하지 않으면 올해 안에 오리온이 ‘AA+’로 올라설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단계 차이지만 채권 시장에서 ‘AA’와 ‘AA+’의 신용 등급에 대한 인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AA+’는 공기업이나 금융회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고 신용 등급이다. 오리온의 신용 등급이 오르면 경쟁사인 롯데제과보다 높은 신용 등급을 갖게 된다. 현재 롯데제과의 신용 등급은 오리온과 같은 ‘AA’다. 신용 등급 측면에서 롯데제과를 넘어서는 것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오리온의 지역 다각화와 영업 지역에서의 경쟁력 향상을 높게 평가했다. 이를 통해 영업 기반을 한층 강화했다는 판단이다. 실질적인 무차입 상태에서 잉여 현금 창출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신용도가 좋아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오리온은 한국 제과 시장에서 2위 지위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시장의 성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러시아·베트남 등 지역 다각화에 힘을 쏟았다. 한국에선 장수 인기 제품과 프리미엄 상품으로 탄탄한 수요층을 확보하고 러시아와 베트남 등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투 트랙 전략을 취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선 파이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쌀 과자 등 신규 제품을 연이어 출시해 연평균 10% 정도의 고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주력 제품인 초코파이의 시장 안착과 비스킷류 확대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트베리 주 제2공장 준공이 예정돼 있어 생산 능력과 효율성 향상도 예상된다.
김응관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2019년 이후 중국 사업과 관련해 대규모 인력 구조 조정을 단행하고 광고·판매촉진비를 감축해 비용을 효율화했다”며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신제품을 앞세우면서 베트남과 러시아의 이익 기여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영향으로 영업이익 창출 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도 다각화된 지역 기반을 통해 원재료 가격 변동에 따른 실적 변동성을 통제하면서 탄탄한 이익 창출 능력을 보일 것이란 분석이다.
오리온의 수익성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3분기 누적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은 15.7%다. 2018년 14.6%, 2019년 16.2%였다. 2020년엔 16.9%다.
오리온은 2017년 6월 분할 설립 이후 영업 창출 현금으로 제품·지역 다각화를 위한 설비 투자 부담 해소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약 1조원의 순차입금을 줄였다. 오리온의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2017년 6월 5796억원에서 2021년 9월 말 기준 마이너스 3794억원이다. 2021년 3분기 누적 연결 기준 오리온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0.7배다. 2019년 0.2배에서 2020년 마이너스 0.4배를 기록했다.
물론 러시아 공장 건설이 진행 중이고 충북 진천 물류센터 건립과 사옥 이전으로 투자금이 늘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영업 창출 현금 범위 안에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엄정원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이슈에 따른 실적 악화에도 운전자본과 투자 축소로 잉여 현금 흐름을 창출했다”며 “2018년 이후엔 수익성 개선과 경상 투자 위주의 자본적 지출로 연간 2000억원 안팎의 잉여 현금 흐름을 꾸준히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장 둔화된 한국 시장은 고민
한국 제과 시장은 설비 투자와 유통망 구축 측면에서 진입 장벽에 높은 편이다. 이에 따라 오리온·롯데제과·해태제과식품·크라운제과·농심 등의 기업이 과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 모방 제품이 많고 광고·유통 채널 내 경쟁이 치열하지만 오리온은 초코파이·포카칩·다이제·오징어땅콩 등 다수의 장기 인기 제품 덕에 확고한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다. 마켓오와 닥터유 등 프리미엄 제품 역시 오리온의 브랜드 영향력에 기여하고 있다.
오리온은 파이·비스킷·스낵 등에서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해외 선진 기업들과도 기술 제휴를 적극 맺고 있다.
자체 연구·개발로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 역시 하고 있다. 오리온의 해외 제과 사업은 중국·러시아·베트남 등에서 빠른 성장을 보이면서 전체 매출의 70% 안팎을 창출하고 있다. 한국 제과 시장의 성장 둔화를 해외 제과 시장에서 상쇄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도 오리온에는 기회 요인이 됐다. 외부 활동이 줄면서 제과 수요가 확대된 덕분이다. 이 분위기를 앞세워 오리온은 기존 브랜드를 확장하면서 외형 성장을 꾀했다. 2020년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에 비해 10.2% 증가한 2조20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외형이 성장하면서 고정비 부담이 줄고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판매 촉진 비용이 감소해 수익성이 개선됐다.
물론 제과 시장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출산율 감소와 디저트·자체브랜드(PB) 제품 등 대체재의 성장 등으로 한국에서의 영업 환경이 비우호적이다. 한국 사업은 인구 성장 둔화로 성장 여력이 크지 않다. 해외 사업 역시 각 지역별 경쟁 상황과 외교 분쟁 등 대외 변수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항상 내재돼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코로나19 사태가 산업 자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냈지만 코로나19 특수가 옅어질수록 기업 간 경쟁이 다시 심화될 수밖에 없다”며 “사업 경쟁력 강화, 성숙기 산업 내 새로운 성장 전략에 따라 기업 간 신용도의 방향성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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