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 아내, 밥먹는 소리 거슬려 이혼 충동"..'팬텀 스레드' 영화 리뷰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1. 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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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17] 영화 '팬텀 스레드'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완벽하다고 여겼던 짝과 결합한 뒤 느껴지는 환멸을 그렸다.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이 두 사람의 결혼과 함께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난다면, 이 책은 결혼 이후에 결코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순간들을 담는다. 철학과 심리학, 종교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부부의 결합은 결혼서약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결혼은 일상의 순간순간 자기 것을 포기하는 결단의 연속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레이놀즈(왼쪽)는 알마(오른쪽)가 아침 식사를 하는 방식이 너무 요란스럽다고 느낀다. 그녀는 식기를 시끄럽게 사용하고, 차를 따를 땐 주전자를 높이 들어 물 소리를 낸다.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처스>
'팬텀 스레드'(2017)는 뮤즈를 만난 디자이너 레이놀즈(대니얼 데이루이스)의 이야기다. 어떤 여성에게도 쉽게 질려버리는 레이놀즈이지만 알마(비키 크리프스)에게선 다른 것을 느낀다. 그녀는 레이놀즈의 작품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며, 그 진가를 알아본다. 레이놀즈가 알마와 연애를 넘어 한 단계 더 나아가보기로 결심하는 이유다. 성공한 남자는 뮤즈를 만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가게 됐을까.
식당에서 서빙을 보던 알마는 레이놀즈의 이상형이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말에 귀기울이며, 요청사항을 하나하나 기억해낸다.<사진 제공=유니버설픽처스>
아내의 요리가 너무 느끼해서 헤어지고 싶다

둘의 결합은 시작부터 삐걱댄다. 알마는 일상의 습관으로 레이놀즈를 괴롭게 한다. 아침밥을 먹을 때 식기를 긁는 소리를 내며 레이놀즈가 작업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또 알마는 아스파라거스를 요리할 때 버터에 졸인다. 기름과 소금만 친 야채를 좋아하는 레이놀즈에게 그녀의 음식은 지나치게 느끼하다. 알마는 새해를 맞이할 땐 사람들이 많이 모인 파티에서 춤을 추고 싶다. 레이놀즈가 꿈꾸는 조용한 연말연시는 흐트러진다.
성공한 디자이너인 레이놀즈는 자기 세계가 흐트러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사진 제공=유니버설픽처스>
배우자가 밥 먹을 때 조금 시끄럽다고, 또 요리를 느끼하게 한다고 고민을 토로하는 남자의 사연을 접한다면 대부분은 그가 너무 까다롭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이것은 이별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문제다. 1950년 런던 최고의 의상실 '우드콕'의 대표 디자이너인 레이놀즈에게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제일 사랑하는 것은 스스로 구축한 예술 세계다. 그에게 여성이란 본인이 외로워하는 순간에 정확히 맞춰 나타나 필요한 것을 주고 조용히 뒤로 사라지는 존재다. 알마 이전에도 많은 여성이 그에게 질려 떠났을 것임을 관객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알마와의 이별을 소망하게 된다.
레이놀즈는 완벽하게 자신의 요구를 맞출 수 있는 연인을 원한다. 자신의 필요를 적시에 채워주고, 뒷자리로 조용히 물러나길 바란다.<사진 제공=유니버설픽처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이 단락은 넘어가세요)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독버섯을 먹였다

그러나 알마는 레이놀즈가 그동안 만났던 여성과는 다르다. 레이놀즈의 견고한 세계를 한 번 무너뜨려 보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알마는 레이놀즈가 한 번씩 몸살을 앓을 때 자신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레이놀즈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공이 아니라고 결론 낸다. 외려 더 많은 실패와 좌절, 고통을 줌으로써 그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가 그의 음식에 미량의 독버섯을 섞기로 마음먹게 되는 계기다.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알마는 레이놀즈를 무너뜨림으로써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독버섯을 먹인다.<사진 제공=유니버설픽처스>
그녀는 두 번째로 그에게 독버섯을 줄 때, 심지어 그것을 숨기려는 생각조차 없다. 그가 좋아하지 않는 버터를 활용한 요리법으로 독버섯을 졸인다. 레이놀즈는 그녀가 독버섯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 독버섯을 삼킨다. 수십 년간 아집으로 구축한 자신의 견고한 세상을 허물어서 그를 구원을 주겠다는 배우자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은 인간의 인정 욕구를 그려왔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에 자신을 증명해내려 한다. 씨네프레소 7회에도 다룬 바 있는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속 다니엘 플레인 뷰(이 역시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연기했다)가 그런 인물의 전형이다. 그는 유전 개발로 거대한 부를 일궈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이다. 석유가 솟구치는 유전처럼 들끓는 그의 욕망은 주변인들을 다치게 한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세상의 인정을 통해 내면의 결핍을 채우려는 인물들을 그려왔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석유를 찾아다니는 다니엘 플레인 뷰는 그런 인물의 전형이다.<사진 제공=유니버설픽처스>
비슷한 욕망을 지닌 두 인물은 각기 다른 결정을 내린다. 누구보다도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했던 다니엘 플레인 뷰가 더 큰 유전을 찾기 위해 아들을 버린다면, 레이놀즈는 디자이너로서의 더 많은 성취를 포기하고 독버섯을 삼키는 것이다. 자기 세계를 포기하지 못한 다니엘 플레인 뷰는 대저택에서 홀로 쓸쓸히 죽어가지만, 배우자가 자기 삶을 허무는 것을 받아들인 레이놀즈는 내면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운다.
더 많은 성취 대신 사랑을 선택한 뒤 그의 삶엔 온기가 가득하다.<사진 제공=유니버설픽처스>
물론 둘 중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몫일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인생인지에 대한 판단도 오로지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를 것이다. 다만, 사랑하기로 결정한 사람이라면 둘 중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선 감독은 분명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원 받기 위해선 포기해야 한다는, 매우 단순하지만 오롯이 받아들이긴 어려운 이치를 영화는 현악 사중주처럼 우아한 연출로 드러낸다.
`팬텀 스레드` 포스터.<사진 제공=유니버설픽처스>
장르: 드라마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출연: 대니얼 데이루이스, 비키 크리프스
평점: 왓챠피디아(4.1/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91%), 팝콘 지수(71%)
※2022년 1월 7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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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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