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도 아닌데, 자꾸만 보게 된다..게임사들이 요새 미는 '이것' [더 테크웨이브]
TV·영화 등 엔터산업 진출하고
가상인간 키워내는 게임사들
지난 6일 넥슨이 마블 영화 '어벤져스'를 연출한 유력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AGBO에 5억달러(약 6000억원)를 투자한다고 전격 발표해 업계가 깜짝 놀랐는데요. AGBO는 마블 영화를 연출한 루소 형제의 영화 제작사입니다. 앤서니·조 루소 형제는 어벤져스(엔드게임·인피니티 워), 캡틴 아메리카(윈터솔져·시빌 워) 등 마블 최고 흥행작을 연출했습니다. 루소 형제가 2017년 설립한 AGBO는 넷플릭스 인기 영화 '익스트랙션' 등을 제작하며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 가치의 영화 제작사로 평가받고 있죠. 넥슨은 이날 4억달러(약 4800억원)를 투자해 AGBO 지분 38%를 확보했습니다. 아울러 AGBO 요청이 있으면 상반기 중 1억달러(1200억원) 규모 투자를 추가로 진행한다는 계획입니다. 회사 역사상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투자 결정인데요, 넥슨이 앞으로 어디에 회사의 명운을 걸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입니다. 대외적으로 밝힌 이유는 회사가 보유한 지식재산권(IP)의 영향력을 세계로 확장하고 '킬러 IP'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영화·TV 등 콘텐츠 분야에서 자체 IP를 강화하고 할리우드를 발판 삼아 세계 진출도 하겠다는 것이죠. 기존 IP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와 비게임 분야로 사업 확장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이를 두고 마블 유니버스를 기반으로 만화, 영화, 게임까지 사업을 확장해온 디즈니 모델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앞으로 AGBO는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메이플 스토리' 등 넥슨 게임 타이틀을 활용해 세계를 타깃으로 한 영화나 TV 시리즈 제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임회사들이 엔터 분야에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새롭게 태동하는 메타버스 시장에 있습니다. 메타버스 시장에서는 핵심 IP 보유와 활용이 수익과 직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메타버스의 원조를 자처하는 게임사들은 가상 세계에서 게임 영역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죠. 향후 메타버스에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분야라면 가리지 않고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엔터테인먼트 분야입니다. AGBO와 손잡은 넥슨이 AGBO 작품을 기반으로 게임과 가상세계 사업을 확장하는 길도 열려 있다는 뜻이죠. 이를 두고 AGBO를 설립한 루소 형제는 "넥슨과의 파트너십은 프랜차이즈 영화 제작과 게임의 융합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중요한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넥슨뿐 아니라 라이엇게임즈, 크래프톤, 스마일게이트, 컴투스 등 국내외 회사들은 자체 IP를 활용한 영화, 웹툰,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게임 IP를 성공적으로 확장한 사례는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죠. 라이엇게임즈는 리그오브레전드(LoL) IP 기반의 장편 애니메이션 '아케인'을 내놨는데,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 세계 1위에 오를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스마일게이트는 슈팅(FPS)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배경으로 한 중국 드라마 '천월화선'을 출시했죠. 중국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에서 드라마 인기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대박'을 쳤습니다. 이 밖에 크래프톤은 '펍지(배틀그라운드) 유니버스' 기반의 웹툰 시리즈 3종을 네이버 웹툰을 통해 세계 시장에 선보였고, 컴투스는 모바일게임 '서머너즈워' IP 기반의 코믹스 시리즈를 미국 시장에 내놓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22에서 '가상인간' 혹은 '디지털인간' 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새로운 기술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LG전자는 CES에서 가상인간 '김래아(Reah Keem)'를 깜짝 공개하고 연내 첫 데뷔 앨범 출시 등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디지털 인간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국내외 주요 게임사들도 진짜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한 3차원(3D) 가상인간 개발과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정보통신(IT) 기업들과 차별되는 게임사들의 메타버스 시장 공략법이죠. 가상인간을 디지털 공간 속 유명인(셀럽)으로 키워내 게임 속 세계관을 현실 세계로 확장시키고, 미래 먹거리인 엔터테인먼트 사업과도 연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는 '디지털 셀럽' 개발을 위한 신규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관련 인력 채용에 돌입했습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난해 정치권과 만난 자리에서 "게임에서 기술적 요인은 게임 내 캐릭터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디지털로 연기를 할 수 있는 '디지털 액터'를 만드는 산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제조업에서 로봇(자동화 기술)이 없으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앞으로 게임산업에서 디지털 액터 역시 제조업의 로봇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게임은 메타버스의 출발점으로 불립니다. 메타버스와 게임은 모두 가상세계를 기반으로 구현되기 때문이죠. 제반 기술에도 공통분모가 상당합니다. 실제 게임 개발사들은 메타버스의 핵심인 3D 콘텐츠의 실시간 반응을 가능케 하는 실시간 렌더링과 게임엔진(제작도구) 분야에서도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해외 게임사인 에픽게임즈가 2018년 관람객이 터치하는대로 실시간 반응을 보이는 가상인간 '사이렌'을 내놓은 게 대표적입니다.
가상인간은 얼마나 현실화됐을까요. 카카오게임즈 산하 넵튠은 자회사인 온마인드를 통해 3D 가상인간 '수아'를 제작했습니다. 수아는 현재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중심으로 메타버스 셀럽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실제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흡사합니다. 디지털인간 제작사인 온마인드는 자체 개발한 3D 디지털휴먼 구현 기술과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IT 기업인 유니티, AMD 등과 제휴 및 협력을 확대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투자전문회사로 출범한 SK스퀘어가 첫 투자처로 8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죠.
스마일게이트는 자이언트스텝과 함께 AI 기술을 활용해 가상현실(VR) 게임 '포커스온유'의 여주인공 '한유아'를 가상인간으로 구현했습니다. VR 게임으로 인지도를 쌓아온 게임 캐릭터가 메타버스 3D 캐릭터로 재탄생한 것이죠. 이 회사는 '크로스파이어' IP 다각화를 위해 드라마 및 할리우드 영화 등을 제작하며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는데요. 한유아는 실제 사람 같은 외모로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 등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활동 범위를 넓혀 연기, 음반 발매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 진출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넷마블은 아예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습니다. 자회사인 넷마블에프앤씨가 지분 100%를 출자했죠. VR 플랫폼 개발과 버추얼 아이돌 매니지먼트 등 게임 관련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입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최근 메타버스 사업을 위해 넷마블 자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처럼 게임사와 비(非)게임 분야 기업 간 협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e스포츠 등 '보는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디지털 셀럽이 게임을 해보는 콘텐츠 제작도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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