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밤 일기쓰듯 그려낸 그림..사람들은 왜 열광할까 [아트마켓 사용설명서]

송경은 2022. 1. 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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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야 작가의 `창밖의 별 바라보기`(캔버스에 유채, 117x91㎝, 2021). 오는 15일까지 서울 강남구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태도에 대하여`의 전시작이다. /사진 제공=이길이구 갤러리
[아트마켓 사용설명서-2] 어두컴컴한 하늘을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가득 채운 달과 별이 빛나고 있다. 밤이다. 한 사람이 의자에 걸터앉아 창밖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등진 채 머리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무얼 보고 있는 걸까. 손으로 턱을 괴고 서 있던 또 다른 사람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해 있었다.

콰야 작가(본명 서세원·31)의 '창밖의 별 바라보기'(2021)는 고요한 밤 각자 서로 다른 사색에 빠진 듯한 세 사람을 한 폭에 담아낸 작품이다.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서울 강남구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태도의 대하여'에서 처음 선보였다.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 존중이 필요한 다양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만의 시선에서 풀어냈다.

콰야 작가는 매일 밤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려낸다. 그의 작업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하나둘 떠오르는 기억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해나가는 과정이다. 때때로 그 기억 속 장면들은 작가만의 무심한 듯 거칠고 자유로운 필치를 통해 새롭게 재해석되고 변형된다. 일상에서 익숙하게 마주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어딘가 낯선 느낌이 드는 이유다.

왼쪽은 콰야 작가의 `반딧불이 아래에서`(캔버스에 유채, 112×145.5㎝, 2021). 오른쪽은 `별을 쏘다`(캔버스에 유채, 91×73㎝, 2021). 콰야 작가가 표현하는 밤은 어둡고 쓸쓸하기보다는 어린 시절 동화처럼 밝고 찬란한 느낌을 준다. /사진 제공=콰야
'콰야'라는 이름에도 이런 그만의 작업 방식이 담겨 있다. 콰야는 밤을 지새운다는 뜻의 '과야(過夜)'에 'Quiet(조용한)' 'Quest(탐구)' 등의 앞글자인 'Q'를 결합한 것으로, 침묵과 고독의 밤을 의미한다. 과야(課夜)는 '밤이면 밤마다'라는 뜻도 지닌다. 밤이 되어 주변이 어두워지면 생활 반경은 상대적으로 더 밝아지는 효과가 난다. 이처럼 모두가 잠든 시간 콰야 작가는 오롯이 자신의 사색과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다.

밤이라는 시간은 콰야 작가 작품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하는 요소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표현된 밤은 밤이 가진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와는 반대로 밝고 찬란하다. 마치 동심을 품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두운 밤하늘에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별을 쏘는 장면을 그린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작품인 '별을 쏘다'(2021) 역시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을 자극한다.

실제로 콰야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린 아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작가가 특별한 의도를 갖고 어린 아이를 그렸다기보다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인물이 어린 아이 느낌으로 표현된 것에 가깝다.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꿈을 꾸고,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는 소년과 소녀의 마음을 닮고 싶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바라본 우리의 일상은 너무 복잡하고, 꿈을 꾸기 힘들고, 지나치게 현실적인지도 모른다.

왼쪽은 콰야 작가의 `보내지 못한 편지`(캔버스에 유채, 73×60.5㎝, 2021). 오른쪽은 `아무나 맞아라`(캔버스에 유채, 91×73㎝, 2021). /사진 제공=콰야
특히 이번 '태도에 관하여' 개인전은 여러 사회적인 이슈들이 개인의 영역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치면서 사람들 간에 관계 안에서 생기는 혐오나 분노 같은 문제를 태도의 관점에서 고찰해본 작업이다. 콰야 작가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처음에는 우울하고 암울함 그 자체를 나타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좋았던 경험을 떠올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게 됐다"며 "언제나 작업은 이상향과 결핍을 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독 콰야 작가의 작품에 하늘을 보듯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인물이 자주 나타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는 "생각해보면 여유가 있을 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따뜻함을 느끼고, 별이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평온함을 느낀다"며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콰야 작가는 대학에서 의류디자인을 전공했다.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대학 때부터 틈틈이 그려왔던 그림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금을 모아 작업실을 꾸렸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콰야 작가의 작업은 회화(페인팅)와 드로잉부터 삽화(일러스트레이션),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든다. 콰야 작가 작품은 그림이 새겨진 엽서, 에코백, 노트 등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콰야 작가의 `우산 씌워주기`(캔버스에 유채, 73x60.5㎝, 2021). /사진 제공=이길이구 갤러리
콰야 작가는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한 가지 표현 방법만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매체,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다채롭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작업하는 사람' 혹은 '이야기하는 사람' 정도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어떻게 불려도 괜찮고, 다양한 호칭으로 표현될 때 재미있다는 생각도 한다"고 밝혔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먼저 이름을 알린 그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의 컬래버레이션(협업)에도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아직 먼저 제안하기보다는 주로 협업 제안이 들어오면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하나둘 도전해보는 식이었다. 밴드 잔나비가 2019년 발매한 정규 2집 '전설'의 앨범 재킷 삽화 작업도 그렇게 참여하게 됐다. 콰야 작가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꾸준한 작업 덕분에 최근 미술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국내 여러 대형 아트페어에도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완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내 최대 미술품 박람회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 서울'에서는 총 24점의 작품이 모두 팔렸다. 콰야 작가는 "제가 하는 대단할 것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은 분이 들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라면서도 "평소 '능력만큼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담담히 밝혔다.

왼쪽은 콰야 작가의 `함께`(캔버스에 유채, 100×80㎝, 2021). 오른쪽은 `휴식`(캔버스에 유채, 80×100㎝, 2021). 지난해 10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 서울`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사진 제공=콰야
올해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게 된 콰야 작가는 "중심을 잘 잡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여러 일정 속에서 타성에 젖어 작업하지 않고 매 순간을 잘 담아내고 가끔은 쉬어 가기도 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며 "그 안에서 주변을 잘 돌보고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내 작품이 옆에서 편히 있어 주는 친구 같은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며 "선반에 멋지게 전시된 빳빳한 아트북보다는 침대 머리맡에 자연스럽게 놓인 시집 같은 존재였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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