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탈·재결합'만 돌고도는 윤석열의 대선전략
[경향신문]
‘회심의 승부수’일까, ’뒤늦은 고육지책’일까.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를 해체했다. ‘다시 시작’을 강조한 윤 후보는 실무형 선대본부 체제로 개편을 선언하고, 선대본부장에 4선의 권영세 의원을 임명했다. 이로써 ‘킹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는 사실상 결별했다. 다만, 갈등상황에 놓였던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는 극적 화해를 하며 다시 한 번 ‘원팀’을 이뤘다.
윤 후보는 대선까지 남은 60여일 안에 지지율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는 “국민이 기대하셨던 처음 윤석열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며 “제게 시간을 좀 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윤 후보에게 닥친 위기는 선대위 문제가 아닌 본인의 발언, 가족 의혹 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쇄신 방향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인만 떠나면 해결될까
출범부터 삐걱댔던 국민의힘 선대위가 끝내 좌초했다. 윤 후보는 지난 1월 5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선대위 개편 방안을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선거 관련 조직의 축소다. ‘매머드’, ‘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선대위를 선거대책 본부를 중심으로 단출하게 재편했다. 산재해 있던 여러 ‘본부’를 ‘단’으로 바꿔 선거대책 본부 산하에 편입시키는 방식이다. 다만 정책본부는 별도로 존치시켜 후보 공약 개발에 집중하게 했다.
그런데 이러한 개편은 김 전 위원장이 주장한 ‘총괄상황본부’ 중심의 선대위 재편과 무엇이 다르냐는 문제가 있다. 김 전 위원장 역시 “매머드 선대위는 내가 처음부터 얘기한 것 아니냐”며 “선대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자고 얘기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개편안이 쇄신을 주도할 인물, 기구만 바꾼 ‘김종인 없는 김종인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선대위의 인적 쇄신을 주장해온 김 전 위원장을 배제한 것이 사실상 가장 큰 개편이라는 의미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윤 후보가 발표한 개편안에서 조직을 바꾸고, 전략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말장난”이라며 “핵심은 결국 김종인과의 결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 방식대로 해서는 중도나 2030세대를 잡을 수 없다는 김종인 측과 윤 후보 측근 사이의 전략적 차이가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편안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지점은 2030세대의 지지율 회복이다. 윤 후보 스스로 선대위 개편 명분을 “청년세대가 캠페인에 주도적으로 뛸 수 있게 의사 결정 구조를 단순화하고 실무형으로 바꾸는 게 맞다고 판단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민의힘에서 2030세대의 지지를 이끌고 있는 이 대표가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지난 6일 저녁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갈등을 봉합하기 전까지 윤핵관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는 대선까지 남은 60여일 동안 이 대표와 윤핵관이 완전한 ‘원팀’을 이룰 수 있을지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또 갈등과 이탈, 극적봉합을 반복하고 있는 이 대표의 재합류가 실제 지지율 회복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선거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 유권자들의 피로감만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대의가 보이지 않는 정치적 이벤트는 유권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며 “기분이 나쁘면 뛰쳐나가는 당대표와 공들여 영입한 인재를 손쉽게 내치는 후보의 재결합은 선거용 이상의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대선에서 윤 후보가 패하면 분란을 만든 이 대표의 정치생명도 끝날 수 있는 상황에서 적당한 타협을 이룬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윤 후보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당내 의원들에게 대표직 사퇴 압박을 받았다. 만약 갈등을 그대로 둔 채 윤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곤두박질쳤다면 그의 당대표직 유지는 장담이 어려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윤 후보는 지지율 하락의 처방전으로 선대위 개편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문제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정말 선대위에 국한된 것이냐는 점이다. 원인을 잘못 진단하면 제대로 된 처방은 내릴 수 없다. 이번 개편안을 두고 당 안팎에서 이른바 ‘본인 리스크’를 언급하는 배경이다.
■대선까지 국정운영 능력 보여줄 수 있을까
지지율 회복을 노리는 윤 후보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능력 입증과 비전 제시’다. 윤 후보는 잇단 실언과 모호한 정책 답변 등으로 스스로 기대치를 낮춘 측면이 있다. 이에 더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제안한 토론회를 사실상 거부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자신감과 실력’ 측면에서도 의구심을 키웠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윤 후보가 승리하려면 문재인 정부가 비판받는 ‘무능력’과 반대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데 사실상 실패하고 있다”며 “여론조사를 보면 ‘국정운영 능력’ 기대치도 오히려 이 후보가 앞서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토론회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윤 후보는 뒤늦게 “캠프 실무진에게 법정 토론 이외의 토론 협의에도 착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론에 나서더라도 지지율 반등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미 국민의힘 경선 토론 과정에서 윤 후보의 발언들이 논란을 낳은 바 있다. 최 교수는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갖춰야 할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오히려 윤 후보는 본인 리스크를 인정하고, 김 전 위원장을 포함한 각 분야 능력 있는 사람들의 조언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가 뾰족한 반전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후보 교체 논의는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2등을 한 홍준표 의원의 발언이 새삼 주목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민의힘 내부에서 후보를 교체하는 것보다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최진봉)는 평가가 나온다. 또,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단일화는 ‘정권교체의 대의’보다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만 보일 수 있다”(신율)는 분석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과 결별하며 선대위를 개편한 것은 반등을 위한 양날의 칼을 손에 쥔 것과 같다”며 “이제는 내부 갈등에서 자유로워진 만큼 비전 제시에만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간절한 마음으로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면 윤 후보에게도 반등의 기회가 한 번쯤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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