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CES 2022'..도전과 희망을 봤다 [특파원칼럼]
누구의 탓도 아니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여파에 모든 것이 바뀌었을 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변했다'는 것이다. 현실도, 그리고 생각도 모두.
지난 5일(현지시간) 개막한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 2022'가 7일 막을 내렸다. 2년 만에 열린 오프라인 행사였는데 당초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불을 꺼야 했다. CES를 운영하는 미 소비자기술협회(CTA)는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상황에서 방역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CTA는 글로벌 팬데믹이란 악조건 속에서 CES라는 거대한 행사를 치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게리 셔피로 CTA 회장은 행사가 열리기 전 성명을 통해 이번 CES가 큰 도전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CES는 계속될 것이며 계속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행사는 대기업보다는 작은 기업들이 훨씬 많을 것이며, 전시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분명히 예년과는 다를 것이며 지저분하고 엉망(messy)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셔피로 회장은 "하지만 혁신은 본래 지저분하고 엉망인 것이며, 이는 위험하고 불편하다"며 "나는 CES가 우리 미국의 독특한 역사의 최고사례- 서로 다르지만 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 성공이 계급이나 종교나 그 어떤 것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힘에 기반을 둔 곳 -를 증명하는 곳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백신 접종을 하고 오미크론과 격리의 작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CES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며 "혁신을 이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연결과 발견할 하고자 하는 수천 명의 기업인들을 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예상대로 올해 CES는 험난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약 4000개 이상의 기업들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2200여개로 참가업체가 절반으로 줄었다. CES의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은 대거 불참했다. 삼성전자와 소니, 그리고 일부 중국 전자업체들이 눈에 띄는 대규모 부스를 마련했을 뿐, 빈 공간이 곳곳에서 보였다.
CES 메인 전시장을 찾은 참석자들도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삼성 등 일부 기업들의 인기 부스는 대기하는 사람들로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한산했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모여있는 전시장은 적막함까지 느껴졌다. 일부 시간에는 관람객보다 업체에서 출장 나온 직원들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디어' 배지를 목에 걸고 통로를 걷고 있던 기자에게 한 전장부품 업체 관계자가 다가왔다. 회사와 제품에 대해 소개를 해 줄 테니 잠시 시간을 내 달라고 요청했다.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고 나름 요새 가장 '핫'한 기술을 들고 나왔음에도 주목을 받지 못하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런 적극적인 홍보 담당자를 둔 기업은 그나마 다행이다. 부스에 앉아 스마트폰에 집중하거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행사가 취소됐던 지난해를 제외하고 10년 이상 빠지지 않고 CES에 참석했다는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는 "이렇게 썰렁한 행사는 처음"이라며 "내가 미디어 입장이라면 무엇을 써야 할 지 걱정될 정도"라고 말했다.
'CES 2015'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당시 CES는 축제였다. 전세계에서 모인 업계 관계자들과 관람객들로 인산인해였다. 활기가 넘쳤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환상적인 전시장을 둘러보고 난 후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다. 중국 업체들의 급부상과 드론, IoT 등 새로운 기술과 제품은 보는 사람을 흥분케 했다. 너무 볼 것도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시간이 없어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 'CES 2022'의 불이 꺼졌다.
내년 이맘때 열릴 'CES 2023'은 어떤 모습일까. 정확하게 예측하긴 어렵지만 어느정도 변화는 불가피할 것 같다.
많은 기업들이 올해 CES 현장 참가를 취소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직접 현장에 참가를 하지 않고도 성과 측면 등에서 별 문제가 없었다는 걸 확인한 순간, 이들은 참가하는데 큰 비용과 노력이 드는 기존 형태의 행사 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CES는 전시관 부스를 통한 '쇼' 외에도 기업들 간 수많은 비즈니스 미팅이 이뤄지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세상이 지속된다면, 미팅룸은 화상회의 또는 메타버스 가상공간 내에 만들어질 것이다.
기업들이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워 압도적 규모의 부스를 만들어 과시하는 시대도 지났다. 사람들이 눈요기를 위해 구경 갈 수는 있어도, 감동을 받지는 않는다. 앞으로 기업들의 전시는 제품 대신 혁신과 스토리로 채워지게 될 것 같다. 이번 CES에서도 관람객들은 제품보다는 미래 비전과 재미(Fun)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NFT(Non-Fungible Token), 메타버스 세상 등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특히 가상자산 관련 부스는 방문객들로 활기가 돌았다. CES도 세계최대 '가전 전시회'라는 꼬리표를 떼고 보다 과감한 업그레이드를 꾀할 때가 됐다.
이번 참가업체 2200여개 중 약 500곳은 한국기업이었다. 삼성전자, 현대차를 필두로 사실상 한국기업이 이번 CES를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봇,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 영역에서 명함을 내민 한국 기업들이 대거 눈에 띄었다.
코로나 감염 위험과 귀국 전 PCR(유전자증폭) 검사, 귀국 후 격리라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직접 현장을 발로 누빈 한국의 경영자·기업인들이 이번 CES의 주역이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올해 CES를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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