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탓'

황예랑 기자 2022. 1. 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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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1396호 표지이미지

결혼을 앞둔 38살 노동자 김다운씨가 경기도 여주에서 전봇대에 매달려 일하다가 숨졌다. 한국전력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고압 전류에 감전돼 전신 3도 화상을 입었다. 2만2천 볼트나 되는 고압전선 작업을 하는데, 고무로 된 절연장갑이 아니라 면장갑을 끼고 일한 탓이다. 절연장비를 갖춘, 바구니 모양의 작업차량도 없이 일반 1t 트럭을 타고 작업했다. 2인1조 작업 규정도 지켜지지 않아, 홀로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2021년 11월 일어난 일이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19일 만에 숨졌다. 2022년 1월에야 유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졌다.

28살 노동자 이훈우(28·가명)씨가 전남 곡성에서 전봇대에 매달려 일하다가 숨졌다. 한국전력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꼬박 21일째 30도 넘는 폭염이 매일같이 이어지던, 2021년 7월 일어난 일이다. 고압전선은 전기가 흐르지 않도록 죽여놨지만, 저압전선은 살려둔 상태였다. 그도 고무로 된 절연장갑을 지급받지 못해 면장갑을 끼고 일했다. 1차 부검 결과에서 감전이나 온열질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나는 광주에서 그의 부모를 만나고 기사를 썼다(제1376호 표지이야기). “엄마, 다녀올게” 하고 아침에 집을 나간 아들이 갑자기 “산재로 집에 못 돌아가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됐다. 김다운씨 관련 보도를 보면서, 아들 이야기를 하다 말고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던 이훈우씨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2021년 12월 나온 2차 부검 결과에서도 명확한 사망 원인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노조 관계자에게 최근 전해들었다. 2021년 전국에서 사고로 숨진 한국전력 노동자는 8명. 이 가운데 7명이 하청업체 소속인 비정규직이다.

“(중장비 운전자가) 이 간단한 시동장치를 딱 끄고 내리기만 했어도, 간단한 실수 하나가 정말 그 엄청난 비참한 사고를 초래했는데….” “현장에 와서 제가 본 바로는, 사고 원인은 그런 시정장치를 놔둔 채 내리다가 이런 사고가 벌어진 것 같고….” 사무실 한쪽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목소리를 듣고는, 순간적으로 ‘잘못 들었나’ 내 귀를 의심했다.

경기도 안양 도로 포장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 3명이 일하다가 숨졌다. 3t 이상 나가는 무거운 롤러를 내리던 중, 중립에 놓은 차량 기어가 운전자의 옷자락에 끼어서 갑자기 롤러가 움직이는 바람에 그 앞에서 일하던 노동자 세 사람이 롤러에 깔려 숨졌다. 2021년 12월1일 일어난 일이다. 다음날 현장을 방문한 대선 후보의 입에서는 “너무 안타까운” “너무 끔찍한” 사고라는 단어가 쏟아져나왔지만, 결론적으로는 “(개인의) 간단한 실수” “기본 수칙을 안 지킨 (노동자)” 탓이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절연장갑을 지급받지 않아 면장갑을 끼고 일하다 숨진 한국전력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모두 제 탓이다. 죽음 앞에서 그 무신경한 단어 선택이,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을 모르거나 모른 체하는 태도가 끔찍했다.

‘별의 순간’을 잡은 듯했던 윤석열 후보가 대선 60여 일을 앞두고 휘청이고 있다. 강렬한 정권교체의 열망은 그를 단숨에 지지율 1위 후보로 끌어올렸으나, 후보 개인의 자질 논란과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 국민의힘 내부 갈등이 겹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엄지원 기자가 ‘윤석열의 후퇴’가 무엇에 기인하는가를 깊이 들여다봤다. 후보의 역량과 자질뿐 아니라, ‘반문재인’이라는 깃발 아래 모였으나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선대위 조직의 문제점, 이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새 변수가 될 수 있을지 등을 두루 짚었다. 김규남 기자는 이렇게 요동치는 대선 국면에서도 변함없이 “권한을 내려놓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정치개혁 깃발을 들고 나선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를 인터뷰했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이번호부터 새로운 정치 칼럼 연재도 시작한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 중앙대 교수와 국회·청와대를 출입했던 이세영 <한겨레> 논설위원이 서로 묻고 답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한국 정치구조를 심층 분석하는 ‘신진욱×이세영의 정치 크로스’를 쓴다. 긴밀하게 연결된 정치와 경제 영역을 오가며 실증 분석하는 또 다른 칼럼도 1월 중에 선보일 예정이다. 달라진 지면으로 독자 여러분을 곧 찾아뵙겠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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