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다

한겨레 2022. 1. 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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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임현정의 클래식 산책][한겨레S] 임현정의 클래식 산책
침묵의 소리
“음악의 첫 음은 침묵이고 마지막 음도 침묵이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씨가 2018년 프랑스 브장송의 그랑 퀴르살(Grand Kursaal)에서 연주하고 있다. 다나기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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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침묵의 소리>라는 책을 냈다. 소리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음악가가 ‘침묵의 소리’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책을 쓴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음악가에게 침묵이란 화가에게 하얀 도화지와 같은 것이다. 도화지가 하야면 하얄수록 그림이 더 잘 보이듯, 침묵이 고요하고 평온할수록 음악은 더 선명하게 그려진다. 침묵은 무한한 감정과 영혼의 목소리를 그려낼 수 있게 해준다. 나에게 침묵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와 마음속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다시 하얀 도화지로 돌아가게 해주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고요함과 평온함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그 깊은 안정감을 토대로 에너지를 불러일으켜 모든 격한 감정들을 나의 손을 통하여 요동치게 만들 수 있다.

하얀 도화지가 있을 때 그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침묵이 있어야지만 소리가 존재할 수 있다. 더불어 음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등장하는 침묵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말을 하면서 중간중간 숨을 쉬는 것과 같은 것인데, 고요한 정적이 흐른 뒤에 전달되는 메시지가 더욱 영향력 있는 것처럼 곡 안에 존재하는 쉼표들은 음들을 더 부각해준다.

화가의 하얀 도화지처럼
침묵은 음악가에게 필수
고요함과 평온함에 닿아야
감정이 내 손에서 요동친다

침묵을 못 견디는 시대

“스마트폰을 포함하여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30분 이상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핸드폰이 없으면 안 돼요”, “5분도 너무 길어요”, “혼자 못 있어요” 등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그 어떤 것도 끼어들지 않고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침묵의 시간 동안 자신의 존재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로 인해 비롯된다. 방 안에서 평온하게 머무르지 못하는 것에서.” 철학자 파스칼이 한 말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침묵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하얀 도화지로 돌아가는 기회를 갖게 된다. 무한한 가능성이 춤을 추는 무대는 바로 하얀 도화지. 나는 그 도화지를 나의 본질이라고 부른다. 무한한 가능성이란 나를 제약하는 이름표들(인종, 국경, 성별, 직업 등)의 의미조차 초월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 무대 위에서 나는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 생각, 감정, 느낌, 아이디어, 기억, 영감, 상상력, 심지어 영성적인 차원까지 한계와 제약 없이 탐구할 수 있다. 예술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화장실 안이나 샤워장 안, 혹은 혼자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면서 아이디어나 영감을 떠올린다고 한다.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장소들이자 내면의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곳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상’의 시간과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명상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흔히 명상하는 동안 침묵을 하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어떤 것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수백명이, 수천명이 모여서 그런 명상 상태에 머무르는 공간이 있다. 바로 연주회장이다. 사실 수십명이라도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함께 모인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특히 모든 이가 같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 바로 연주회장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침묵을 한 채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며 감동, 승화, 기쁨, 카타르시스 등 여러가지 형태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맡긴다. 210년 전 쇼팽의 마음속에서, 250년 전 베토벤의 심장 안에서, 300년 전 바흐의 가슴속에서 요동치고 있었을 감응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이 순간 모두 하나 되어 공감하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거룩한 숨결을 호흡하면서 예술은 펼쳐지고, 순수한 사운드의 아름다움만이 존재한다. 음악은 우리가 되고, 나 자신이자 당신이며, 아름다움을 호흡하는 우리가 된다. 그 신성한 숨결과 침묵 속에서 한마음 한몸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 기적은 음악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우리가 모두 열렬히 하나가 될 때 표출되는 파장이다. 그 강렬한 진동 안에 울리는 기적을 음미하기 위하여 우리는 함께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때, 심장에서 영혼까지 깊은 감응이 일어나고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를 잊어버린 채 나를 둘러싼 모든 이름표들과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신의 순수한 본질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존재 자체가 무한한 사랑”

그 본질에 관한 시를 이 칼럼에서 모두와 나누고자 한다. 2018년 어느 날 갑자기 격렬하게 써 내려갔던 글이다.

우리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무한한 충만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존재 그 자체로 숭고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충분합니다.

지금 여기 숭고한 본질로서 존재하는 우리가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그 자체로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자체로 고귀하고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 작품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써도 써도 줄지 않고 써도 써도 닳지 않는 영원한 충만입니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우리는 온전하고 완전합니다.
우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외모나 성취한 일 같은 외부적인 것들로 우리의 가치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존재 그 자체로 무한한 사랑이고 숭고한 존재입니다.

이제 우리의 본질을 진정으로 알았으니
우리 자신을 정말 경이로운 존재로 존중합니다.
우리 자신을 정말 사랑으로 대합니다.
우리의 몸을 정말 아름다운 작품으로 대합니다.
우리의 몸을 정말 숭고한 가치로 대합니다.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당당하게 표출합니다.

우주도 ‘나’라는 그 유일하고도 존귀한 존재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우주에게 ‘나’를 누릴 수 있는 그 영광을 선물합니다.
지금 여기 고귀한 본질로서 존재하는 우리가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지금 여기 빛의 본질로서 존재하는 우리가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인종, 성별, 문화, 종교,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고
모든 것을 초월한 순수한 빛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을 축복합니다.
우리의 몸을 축복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사랑이다.
당신은 사랑이다.
나는 당신이다.
당신은 나다.
나와 당신은 나다.
당신과 나는 당신이다.
당신과 우리는 나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숭고하고 고귀한 존재다.
피아니스트, 서울대 산업수학센터(IMDARC) 자문위원. 프랑스 국립음악원 피아노과를 최연소 수석 졸업했으며, 영국의 음반회사 이엠아이(EMI)에서 2012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내면서 데뷔했다. 독창적이고 대범한 곡 해석으로 유명하며, 음악에서 자유를 추구한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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