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을 앞두고 멈춘 38선 서쪽 기행

2022. 1. 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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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지난주 생생 통일현장에선 강원도 양양에서 소양강까지 38선의 흔적을 찾아가봤는데요.

오늘은 소양강에서부터 더 서쪽으로 가보겠습니다.

◀ 안주희 앵커 ▶

네, 38선은 결국 경기도 연천에서 비무장지대와 북한 지역에 들어가면서 더 이상 서쪽으로 갈 수는 없게 되는데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그 현장으로 이상현 기자가 안내해드립니다.

◀ 리포트 ▶

지난주 눈덮힌 동해안, 강원도 양양에서 출발해, 인제를 거쳐 소양강 상류까지 찾아갔던 38선의 흔적들.

분단의 상징이었던 북위 38도선은 소양강 물줄기와 함께 서쪽으로 흐른뒤 강원도 화천을 지나 춘천지역에 들어가고, 이번엔 북한강과 만나게 됩니다.

38선의 흔적을 찾아 직접 배를 타고 그 북한강을 따라 내려가봤습니다.

1960년대 춘천댐 건설과 함께 수몰된 곳이라는데요.

그중 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정확히 위도 38도, 북한강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과거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과 북을 잇는 다리가 놓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얕은 계곡에 놓인 다리 한 가운데에 선명하게 그어져 있는 38선.

북한강의 옛이름 모진강에 있던 다리, 모진교는 이렇게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까진 남북을 잇는 지역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1940년대 역사의 순간들/1985년 MBC 방송] "춘천에는 다리 한가운데를 38선이 이렇게 통과를 해서 그게 유명한 화젯거리가 돼 있었죠."

지금은 수몰돼 자취를 감춘 그 다리의 양편으론 해방 직후엔 미군과 소련군이 경비를 섰는데요.

당시만 해도 양측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때로는 식사도 함께 하며 돈독한 사이를 자랑했습니다.

[성수남/춘천 원평리 이장] "아버지 말씀이 저쪽 이남에는 유엔군이 주둔하고 여긴 소련군이 다리를 경계로 해서 보초를 섰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때는 이남하고 이북 왔다갔다 했었대요."

북한강에서의 38선 흔적을 뒤로 하고 배에서 내려 좀더 서쪽으로, 이번엔 그 수몰지역에 있던 38선 표지석 등이 옮겨졌다는 인근의 마을을 찾았습니다.

역시 북위 38도에 위치한 이 마을에선 지금은 철거된 한 집의 터를 볼 수 있었는데요.

38선이 지나가는 자리에 있었던 그 집 안은 정말 웃지못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심순택/춘천 원평리 주민] "내의네 집이라고 이름이 내의에요. 안방은 이남이고 윗방은 이북인데, 올라갔다 내려갔다 마음대로 못했어요. (집 안에서요? 집 안에서 왔다갔다 못한다는게 말이 돼요?) 왜냐하면 도망갈까봐 남한 사람이 북한으로 온다 이렇게 되는 바람에 경비들이 여기에 서 있었죠."

이 강원도 춘천을 떠나 경기도로 진입하는 38선은 가평의 북쪽을 통과한뒤 포천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포천에선 먼저 한탄강으로 흐르는 하천, 영평천 옆에서 38표지석과 함께 오래된 38선 휴게소를 만나게 되는데요.

지금은 영업이 중단된채 세월의 흔적만을 간직한 모습이었습니다.

휴게소를 뒤로 하고 좀더 서쪽으로 향하면 국도변에서 조그마한 정자와 함께 최근에 설치됐다는 38표지석을 만나게 됩니다.

폐쇄된 옛 도로 변에 있던 것을 옮겨온거라는데요.

산길을 따라 그 폐쇄됐다는 도로를 찾아가봤습니다.

[박계원/포천 추동2리 이장] "여기에 세워놓으면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기왕이면 교통량이 많고 그런데다 다시 옮기자 해서 거기로 공원을 만들어서 옮긴 거에요."

38고개로 불렸다는 옛 고갯길.

꼭대기가 38선이었던 그 고갯길로 한국전쟁 이전까진 남북을 왕래하며 논밭을 다니고 학교에도 오갔다고 합니다.

[황오장/포천 추동리 주민] "아이고 여기 다니려면..지금 이것도 많이 낮아진거에요. (더 높았어요?) 그럼요! 달구지 끌고..달구지 있잖아요, 소..우마차, 바퀴에 돌 달린거 그거 끌고 다니는거야. 그래서 여기 호랑이도 나온다고 예전에 많이 그랬지."

인민군이 후퇴할때 주민들을 북한으로 끌고가기도 했다는 그 한많던 38고개를 뒤로 하고 더 서쪽으로, 남한에서의 마지막 38선 마을이 있는 연천으로 향합니다.

선사시대 유적지로 유명한 경기도 연천의 초입.

한탄강을 목전에 둔 이 38선에선 한국전쟁때 파손됐던 38표지석 일부를 새 표지석과 함께 만날 수 있고요.

1.4후퇴 이후 다시 반격에 나섰던 아군이 1951년 5월 이곳의 38선을 재돌파한 날을 기념해 만들어진 돌파기념비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조성된 6.25참전 기념탑 등을 뒤로 하고 다시 서쪽으로 향하면 임진강을 건너 또하나의 38선 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도 마을의 안녕과 주민 화합을 위해 산신령에게 제를 지낸다는 평화로운 시골마을.

38선이 지나가는 마을이지만 마을 앞 임진강이 사실상의 남북간 자연경계로 된 탓에 북한군 통제를 받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최주연/연천 노곡리 주민] "그 현실을 볼 수가 없었고 또 붙들어가고 하니까 피해서 저 건너로 건너갈 수 밖에 없었죠. 점점 심해지다보니까 나중엔 할 수 없이 (전쟁) 한달전에 여기 완전히 다 남한에서 철수를 시켰어요."

그 남북간 자연경계가 됐다는 임진강을 따라 좀더 서쪽으로 가봤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위도 38도를 따라 계속 서쪽으로 오게 되면 이렇게 거대한 능이 하나 나타납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이 묻힌 경순왕릉인데요. 이곳에서 남한에서의 38선 여정도 끝을 맺게 됩니다."

경순왕릉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향하면 곧바로 금단의 땅인 비무장지대, DMZ에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휴전선과 교차하는 38선은 이후 개성 송악산과 황해도 옹진반도를 거친뒤 백령도 북쪽을 통해 서해로 흐르게 됩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민족의 운명을 갈라놓았던 북위 38도선.

이제는 보이지 않는 상처로 남은 그 38선은 한 서린 흔적을 간직한채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330996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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