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의 진실' 누가 외면하나 [쓴소리 곧은 소리]
"원전 없는 탄소 중립 불가능"..한국원전, 가격 경쟁력 최고
(시사저널=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새해 벽두부터 에너지 업계가 소란스럽다. 환경부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2021년 12월30일·분류체계)이 발표되고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유럽연합(EU)의 분류체계 초안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2022년 1월2일). 원자력은 환경부 분류체계에는 없고 EU 안에는 포함되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측 건설의 단독협상대상자가 되었다고 밝혔다. 한국과 EU의 분류체계 발표, 한수원의 이집트 원전 참여가 무슨 관계냐 하겠지만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실 EU도 분류체계에 원자력 포함 여부를 놓고 첨예한 갈등이 있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10개 회원국은 원자력의 분류체계 포함을 찬성했고, 반면 독일 등 5개국은 반대했다. 갑론을박 끝에 가스발전을 분류체계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던 독일과 전력의 대부분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프랑스의 타협, 그리고 작년 말 풍력발전 감소와 가스 수급 불안으로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해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에 대한 우려가 반영돼 원전 포함 결정이 내려졌다.
녹색분류체계는 에너지 지원 돈줄…원전 수출에 영향
녹색분류체계는 기업들의 '그린워싱' 때문에 시작되었다. 많은 사례가 있지만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는 기업이 '친환경 화력발전소' 라고 홍보하거나, "수소, 대자연의 물로부터 지속 가능한 미래로"가 대표적인 그린워싱 사례다. 하지만 가스보일러 효율을 10% 정도 높인다고 지구를 지킬 수도 없고, 현재의 수소차가 온실가스 배출 없이 그린수소로 달리는 것도 아니다.
분류체계가 확정되면 녹색펀드의 사용과 녹색채권 발행 등을 판정하는 금융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게 된다. 분류체계가 '돈줄'을 결정한다. 분류체계에 포함된 기술은 글로벌 3위 규모의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연기금의 사용이 가능해진다. EU 초안이 확정되면 원전을 추진하는 나라는 1조 유로(1300조원) 규모의 그린펀드 자금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분류체계와 이집트 엘바다 원전 건설 참여의 관련성이고, 그래서 환경부의 입장이 애매해진 것이다.
탈원전에 찬성하는 언론이나 기관, 단체들은 EU의 녹색분류체계의 원자력 포함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사용후 핵연료의 처분 문제나 경제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원자력의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원전 운영국들의 골칫거리임은 분명하다. EU는 원자력을 조건부로 포함시켰다.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계획과 자금, 부지가 있어야 하고 신규 원전은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문제라면 우리도 이전 정부에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이번 정부가 계획을 재론하면서 5년을 허송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원전 운영국 입장에서 사용후 핵연료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고 불가능한 조건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 정부가 분류체계에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킨다면 EU처럼 동일한 조건을 달면 될 일이다.
두 번째, 원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원전이 비경제적 전원이라는 것이다. 2030년경에는 태양광, 풍력발전 비용이 원전보다 싸지기 때문에 원전이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미국, 프랑스 등 원전 건설비가 비싼 국가의 사례나 원전산업과 친하지 않은 펀드운용사, 증권사의 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한국 또는 벨라루스 원전 등의 성공사례는 애써 외면한다. 원전 건설의 몇 가지 사례와 경제성을 결정하는 요인을 보자.
프랑스의 플라망빌 3호기 건설비용은 최근 124억 유로(약 16조원)로 평가되었다. 예상금액 33억 유로의 4배가량이다. 이 원전은 2007년 착공해 2013년 가동될 계획이었지만 아직도 건설 중에 있다. 미국에 건설 중인 보글 3, 4호기도 공사기간이 늘어나면서 공사비가 2배로 뛰었다.
반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은 한국의 첫 수출 원전이다. 2011년 3월 공사 시작 후 2021년 4월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했고, 같은 해 11월 3호기까지 완공되었다. 영국 에너지기술연구소(ETI)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바라카 원전 1기의 평균 건설비용은 50억 달러(약 6조원)다.
원전의 경제성은 사실상 건설비가 좌우하기 때문에 건설비 경쟁력이 중요하다. 원전 발전비용 중 건설비 비중은 50% 이상이다. 위 사례들에서 보듯이 건설비 증감은 건설공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 벨라루스와 UAE 원전은 거의 예정된 시기에 예정된 비용으로 준공된 반면 플라망빌과 보글 원전은 공기가 지연되면서 건설비가 당초 예상 대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자금조달 비용이다. 벨라루스는 러시아로부터 저리의 차관을 제공받았고, UAE는 공사비용의 상당액을 자국이 부담했다. 반면 미국 등 민간이 원전을 건설하는 경우 자금을 조달해주는 금융기관은 높은 이자를 요구한다. 불확실성이 증가한다.
우리나라는 서방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전 공급망이 잘 갖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동일 타입의 원전을 꾸준히 건설함으로써 설비제작, 건설기술과 공사관리가 탁월하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유지되는 비결이다. 따라서 분류체계에서 경제성을 이유로 원자력을 배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
태양광·풍력만으로 탄소 감축 목표 달성 못 해
우리나라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하겠다"고 감축목표(NDC) 상향안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NDC는 협약에 의해 후퇴금지가 적용된다. 또한 정부는 앞으로 수립될 제10차 전력수급계획 전력정책심의회에서 "탄소 중립 및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전기화 수요를 반영하겠다"고 했다.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의 발전량이 1250TWh 수준이니 2030년의 발전량은 850TWh 정도로 기존 예측치에 비해 약 40% 증가해야 한다. NDC 달성을 위한 신재생 발전 비중이 30%로 상향된 것을 감안하면 신재생 용량이 140GW는 되어야 한다. 태양광·풍력이 앞으로 매년 10GW 이상씩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탈원전을 지속하면서 NDC 달성이 가능할까? 이것이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이 포함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밖에도 원자력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로 SMR의 상용화, 원자력발전을 용하는 그린수소의 공급 등이 있을 것이다. 탄소 중립을 주도하는 주요국 중 미국, 중국, 일본, EU가 런 이유들로 원자력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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