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승격 30년 만에 특례시로 도약한 고양시의 빛과 그림자

황대일 2022. 1.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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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2배 늘어난 109만으로 전국 기초지자체 중 2위
재정자립도·GRDP 낮고 시민 고령화 빨라 경쟁력 약화
자족도시 향한 대형 일자리 사업 줄줄이 착수 속 다중 족쇄 여전

(고양=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심각한 주택난 해결을 위해 1992년 일산 대단지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시로 승격한 경기 고양시가 오는 13일 특례시로 출범한다.

특례시 확정을 알리는 고양시청 플래카드 [고양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는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몸집을 크게 불려 인구 기준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두 번째로 커졌다.

큰 덩치 덕분에 수원·용인·창원시와 함께 특례시 대열에 들어섰지만, 체력은 형편없는 약골이다.

수도권 과밀 권역으로 묶인 데다 휴전선과 인접한 특수성 등으로 과도한 군사·환경 규제를 받아 산업시설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민의 경제력을 나타내는 1인당 GRDP(지역 내 총생산)는 31개 경기도 시·군 가운데 27위로 바닥권이고 급격한 고령화로 도시 활력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시는 특례시 출범을 계기로 일산테크노밸리를 비롯한 굵직한 개발 사업을 알차게 추진함으로써 도시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지만 각종 난제가 쌓여 있어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농촌이 30년 만에 인구 109만 전원도시로 발전

고양시는 1990년을 전후한 시기의 대규모 택지 개발에 힘입어 1992년 2월 1일 군에서 시로 승격했다.

일산신도시 건립 당시 화정, 행신, 능곡, 중산, 탄현 등도 함께 개발되면서 외지인 유입이 빠르게 늘어났다.

덕양구 삼송지구 등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립돼 2014년 8월 1일에는 인구 100만 명을 돌파했다. 그 결과 한적한 농촌 지역이 불과 22년 만에 전국 10대 도시로 성장했다.

1992년 일산신도시 개발 당시 모습 [고양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 후에도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 지금은 시 승격 당시 25만8천여 명의 4.2배 수준인 약 109만 명에 달한다. 이로써 고양시는 전국 기초 지자체 가운데 수원시에 이어 두 번째로 커졌다.

아파트 3만8천 호를 짓는 창릉신도시가 완성되는 2029년에는 인구 12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밀도가 크게 높아졌음에도 주거환경은 비교적 쾌적한 편이다. 일산신도시는 전원도시의 모델로 평가받는다. 호수공원과 성저공원, 백석공원 등을 만들고 정발산 등 자연환경을 잘 보존한 결과다.

일산신도시 개발 당시 1인당 공원면적은 1㎡에 그쳤으나 1996년에는 68.8㎡로 커졌다. 이후 인구 팽창으로 20.8㎡까지 축소됐음에도 여전히 높은 편이다. 전체 공원면적은 30년 전 25만9천㎡에서 2천245만8천㎡로 무려 86배나 넓어졌다. 녹지 비율과 평균 용적률은 1기 신도시 중 가장 양호하다.

교통망은 급증한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 출퇴근 시간대에 큰 혼잡을 빚고 있으나 광역교통망이 머잖아 순차적으로 완성되면 대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개통 예정인 광역급행철도 GTX-A 노선은 서울 출퇴근 시간을 크게 줄이면서 교통 수요를 대거 분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고양시 창릉, 대곡, 킨텍스 등 3곳에서 정차하는 이 노선을 이용하면 킨텍스에서 서울 강남까지 20분대에 주파할 수 있다.

김포공항, 부천, 시흥 등으로 연결되는 수도권 전철 서해선은 2023년 1월 대곡역을 거쳐 일산역까지 연장된다.

고속 성장 뒤안길에 형성된 짙은 그림자

시 승격 30년 만에 몸집이 빠르게 비대해졌으나 거대 체구를 지탱하는 체력은 현저히 떨어져 주민 삶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못하다.

상당수 주민이 시내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느라 도시는 베드타운 형태를 띠게 됐다.

출근길 차량 정체 심각한 자유로 모습

자족 기능을 상실한 데는 전역이 과밀억제권역으로 지정돼 학교나 공공청사, 연구시설 등의 신·증설이 제한되고 공업지역 지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체 면적의 43%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이고 개발제한법과 농지법 등 다른 규제까지 겹친 것도 큰 장애가 됐다.

그 결과 공업지역은 고작 0.025%에 그친다. 3.4~8.5%인 부천, 시흥, 군포, 안양, 수원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서울시 쓰레기 하차장이나 폐수 처리장, 화장장, 발전소 등 각종 기피 시설이 들어선 점도 발전에 악재가 됐다.

중요 산업시설을 유치하지 못해 인구나 면적이 비슷한 다른 1기 신도시보다 재정수입이 1조 원가량 적다. 시 면적은 성남시의 갑절이지만 지역내총생산(GRDP)은 3분의 2 정도다. 시 면적의 20% 수준인 부천시도 GRDP가 고양시의 95% 수준이다.

인구 활력과 재정, 기반시설 등을 나타내는 경기도 지역발전지수도 뒤진다. B등급 이상인 다른 1기 신도시와 달리 고양시는 C등급이다.

1인당 GRDP(지역 내 총생산)는 매우 초라하다. 2016년 현재 1천875원으로 경기도 평균치인 2천960원보다 크게 밑돌고 31개 시군 가운데 순위는 27번째였다.

재정자립도는 꾸준히 하락해 낙폭이 경기도 평균치보다 훨씬 컸다. 2014년 47.8%에서 2021년 34.7%로 떨어져 도내 순위가 6위에서 12위로 미끄러졌다. 같은 기간 31개 시군 평균 재정자립도는 43.7%에서 37.7%로 낮아졌다.

법인 지방소득세는 인구가 비슷한 성남, 수원, 용인, 성남의 30~60% 수준이다. 이는 약 3만8천 사업체의 99%가 50인 이하로 영세하기 때문이다.

주민 1인당 평균 세출은 199만1천 원으로 도내에서 꼴찌다. 경기도 평균치인 253만800원의 78.7%다. 이 수치가 높으면 예산 혜택이 많다는 뜻이다.

인구가 빠르게 늙어가는 것도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0.3%로 경기도 평균치(10.1%)는 물론, 특례시로 함께 승격하는 수원시(8.0%)나 용인시( 10.2%)보다 높다.

논밭이나 늪지를 메워 건설된 일산신도시의 낡고 연약한 기반시설로 땅 꺼짐이 잦아 안전 불안도 커졌다.

2016년 이후 지하철 3호선 인근에서 지반 침하와 도로 균열 현상이 8차례 일어났다. 지난달 31일에는 마두역 인근 상가건물 지하 3층 주차장 기둥이 부서지면서 상가 입주민 등이 긴급대피했다.

2021년 12월 31일 마두역 인근 7층 건물 지하 콘크리트 기둥이 파손된 모습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반 침하 원인을 놓고는 의견이 갈린다. 한강과 가까운 농경지에 조성된 일산신도시의 지반이 높아진 지하 수위로 변형됐거나 땅속 지하수가 흙과 함께 빠져나가면서 공간이 생겨 지반이 꺼졌다는 것이다.

대형 일자리 사업 이어져 '자족도시 청신호'

시는 베드타운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노력 끝에 최근 여러 성과를 거뒀다. 풍부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형 사업이 지난해 5월부터 첫 삽을 뜨면서 자족도시를 향한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가장 먼저 실체를 드러낸 곳은 방송영상밸리다. 약 70만㎡의 장항동 부지에 영상물 기획·장비·디자인 관련 벤처기업이 입주할 이곳에는 이미 EBS와 JTBC 등 방송사 제작센터와 스튜디오가 들어섰다.

지난해 10월에는 일산 호수공원 인근에서 CJ 라이브시티 아레나 착공식이 열렸다.

2021년 10월 27일 CJ 라이브시티 비전 선포식 장면

축구장 46개 규모의 한류월드에는 6만 명을 수용하는 국내 최대 K팝 전용 공연장인 아레나와 함께 테마파크와 상업시설, 공연장・호텔 등 갖춘 K-컬처밸리가 조성된다.

CJ 라이브시티는 착공 후 10년 동안 약 33조 원의 경제 효과와 28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방송영상밸리와 CJ 라이브시티가 완공되면 주요 방송사와 예능 기획사, 영상·음악 제작업체가 대거 입성하면서 K-콘텐츠의 본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87만2천㎡의 부지에 일산테크노밸리를 조성하는 사업도 순항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착공해 2024년 준공 예정인 이곳에는 미디어·콘텐츠, 바이오·메디컬, 첨단 제조 기업 등이 들어선다.

국내 최대 전시·컨벤션센터인 킨텍스(KINTEX)에는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제3전시장 건립이 추진된다. 이 사업이 완성되면 킨텍스는 세계 20위권 전시장에 진입하면서 동아시아 산업교류의 메카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결 과제 산적한 특례시의 미래

시는 오는 13일 특례시 출범을 계기로 경기 북부의 최대 첨단 자족도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장담하지만 난제들이 산적해 쉽게 낙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산업단지나 업무지구의 입지 조건은 고부가가치 기업이나 기술로 무장한 혁신 스타트업을 끌어들이는 데 취약하다. 일산테크노벨리는 신설 GTX 킨텍스역과 2km 이상 떨어져 교통 편의와 서울 접근성에서 불리하다. 분양가 인하나 법인세 감면 등과 같은 파격 유인책이 없는 점도 우수 기업 유치에 걸림돌이다.

시는 특례시 승격으로 행정·재정 권한이 커지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특례시라는 명칭과 일부 복지 특례만 얻었을 뿐 행정 지위와 자치 권한을 확보하지 못해 운신의 폭이 협소한 상태다.

이런 문제점을 피하려면 도세 징수액의 교부 비율을 올리고 지방소비세 인상분을 특례시가 직접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다른 지자체의 재원을 줄이거나 경기도의 시·군 기본계획 승인 권한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례시 살림살이가 커지면 소규모 지자체의 재정은 쪼그라든다는 점에서 특례시 권한 확대를 둘러싸고 지자체 간 갈등도 예상된다.

도시공간을 2도심(일산, 화정·창릉) 2부도심(대곡·삼송) 중심으로 재편하는 '2035년 고양 도시 기본계획'이 실효를 거둘지도 의문이다.

신도시 조성 당시 지어진 노후 아파트가 많은 데다 급격한 고령화로 지역 사회가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아파트는 내진설계를 하지 못해 안전 위험이 크고 상당수 승강기와 변압기, 소방시설 등은 교체 연수에 달했다.

일부 지역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으나 현행 법체계로는 한계가 많아 재건축 요건 완화와 용적률 확대 등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고양시는 1기 신도시를 품은 성남, 부천, 안양, 군포 등 수도권 4개 도시와 함께 공동 전선을 펴고 있다.

2021년 4월 23일 전국특례시 시장협의회 출범식 장면

이들 시장은 최근 국회에서 신도시 활성화를 위한 상생 협약을 맺고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휴전선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과도한 군사·환경 규제를 받아 발전이 더딘 문제점은 '광역연합'으로 풀어야 한다는 방안이 제기됐다.

특정 목적을 빠르게 수행하기 위해 다수 지방정부가 행정서비스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방식이다. 화성과 용인 등 반도체 공급망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기남부연합이 대표 사례다.

경기연구원은 지난달 인천・경기・강원 접경지역이 각종 규제로 1인당 GRDP가 전국 평균의 77.8%에 그치고 고령화 문제를 겪는다며 15개 시‧군을 광역연합으로 묶어 행정 효율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성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접경지역은 광역연합으로 대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광역연합은 중장기적으로 접경지역 종합발전계획 수립 권한과 관련 예산을 광역자치단체에서 넘겨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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