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썰] '후보 교체론'까지 자초한 윤석열의 '자질 리스크'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자신의 실언·막말·내로남불 등
지지율 하락세 이어지면 "후보 교체" 목소리 커질 듯
안녕하세요. <논썰>의 손원제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선을 불과 2달 앞두고 제1야당의 선거대책위원회 전체가 일거에 해산하는 사태가 일어난 겁니다. 대신 후보가 직할하는 선거대책본부 체제로 남은 대선을 치르겠다는 건데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과연 이 ‘도박’과도 같은 선택은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까요? 지금부터 찬찬히 살펴보시죠.
“쿠데타” 대 “윤씨”…윤석열-김종인의 ‘차가운 결별’
국민의힘 선대위 해산이 발표된 건 지난 5일이었습니다. 전날 오후부터 여의도 정가에서 ‘김종인 축출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날 오전 윤석열 후보가 선대위 해체를 직접 발표합니다.
“오늘부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하겠습니다. 매머드라 불렸고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금까지 선거캠페인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다시 바로 잡겠습니다. (…) 철저한 실무형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겠습니다.”
윤 후보 발표 직전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뜻이 안 맞으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며 사퇴 뜻을 밝힙니다. 사실 김종인 위원장은 전날까지 선대위 전면 개편을 강하게 요구했던 당사자입니다. 그 내용은 자신을 중심으로 방만한 선대위를 슬림화하고 윤 후보의 돌출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강하게 통제하겠다는 거였죠. 윤 후보는 선대위가 하라는 대로 “연기만 해달라”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전날 김 위원장을 뺀 상임·공동선대위원장단 전원이 사퇴 뜻을 밝히면서 선대위 지도부에는 김 위원장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시간 만에 윤 후보가 선대위 자체를 해산하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선대위가 사라지면 당연히 총괄선대위원장 직위도 사라지게 됩니다. 자동 해촉입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윤 후보에 의해 자신이 경질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치욕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윤 후보 발표 직전 사퇴하겠다고 한 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노정객의 마지막 몸짓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렇다보니 김 위원장의 마지막 작별사가 아름다울 리 없습니다. 사퇴 의사를 밝힌 5일 그는 기자들과 만나 이런 말을 합니다.
“이번에 사실은 선대위 개편에 대해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선대위 개편을 하자는 건데, 그 뜻을 잘 이해를 못하고서 그 주변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보라. 무슨 뭐 쿠데타를 했느니 무슨 상왕이니 (…) 아마 언론에서 재밌게 많이 썼겠지만 무슨 상왕이니 쿠데타니 내가 무슨 목적을 위해서 쿠데타를 하겠나. 그 정도의 소위 정치적 판단 능력이면 더 이상 나하고 뜻을 같이할 수가 없다.”
이날 이른바 ‘윤핵관’으로 불리던 권성동 사무총장과 윤한홍 의원(선대위 당무지원본부장)도 당직과 선대위 직을 사퇴했는데요. 이걸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 질문에도 잔뜩 각을 세운 답을 내놓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그만두고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본질적으로 대선을 갖다가 어떤 방향에서 치러갈 것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있어야지. 그리고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그런 비전이 보이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윤 후보에 대해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그런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대목입니다. 사실상 윤 후보에 대해 대통령 후보로서 기본이 돼 있지 않다는 평가를 내린 겁니다. 심지어 윤 후보를 ‘윤씨’라고 지칭했다가 정정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내가 이 대표를 감싼다는 이딴 소리를 윤씨, 윤석열 주변 사람들이 한 것 같은데, 나는 이 대표에게 ‘선대위에 있든, 밖에 있든 당 대표로서 윤 후보 당선시키는 것이 네 책무’라는 것만 강조했다”
애초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후보에 대해 “별의 순간이 왔다”며 잔뜩 추켜세운 바 있습니다. 이후 윤 후보가 검찰총장직을 걷어차고 정치에 입문한 뒤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고비고비마다 윤 후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윤 후보에 의해 내쳐지는 씁쓸한 결말을 맞게 된 겁니다.
김 위원장과 윤 후보가 이런 파국을 맞은 건 내부 권력 다툼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김 위원장은 ‘여의도 차르(황제·독재자)’라고 불릴 정도로 이른바 ‘그립’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윤 후보가 움직여야 대선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했습니다. 반면, 윤 후보는 ‘반문 세력’의 높은 정권교체 여론을 등에 업은 자신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러야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통제하려고 드는 김 위원장보다 자신을 떠받드는 윤핵관들의 충성 경쟁에 마음이 더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 후보가 되고 ‘컨벤션 효과’로 40%를 오르내리는 높은 지지율을 구가할 때는 김 위원장의 선대위 영입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준석 대표의 첫번째 잠행 등으로 지지율이 출렁이자 김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는데요. 이번에는 끝내 “연기만 해달라”는 김 위원장의 제안을 물리치고 후보가 직접 선거대책본부를 지휘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윤 후보 자신이 감독과 배우를 다 하겠다는 건데요. 이것 역시 김 위원장에게 주도권을 내줬다간 후보의 권위가 흔들리고 오히려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이런 판단을 내린 데는 윤 후보를 둘러싼 측근 윤핵관들의 조언이 큰 영향을 끼쳤을 걸로 보입니다. 실제 윤 후보 주변의 검찰 출신 측근 인사들은 김 위원장의 선대위 재편과 “연기만 해달라”는 주문이 쿠데타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내보였습니다.
“어제 일은 김종인 위원장의 쿠데타 아니냐?”(진행자)
“맞다. 후보에게 미리 상의 없이 선대위의 전면 개편을 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일단 사퇴시키는 방향으로 공개적으로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김용남 국민의힘 선대위 상임공보특보, 4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별의별 소리를 측근들이 많이 했다는데, 그런 식으로 해서는 선거를 승리로 가져갈 수가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죠. 김 위원장은 윤핵관이 표면적으로는 물러났어도 이미 곳곳에 심어 놓은 수하 인물들을 통해 윤 후보에게 계속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밖에 직책도 없는 사람이 영향력을 다 행사하고 있다. 내가 굉장히 불편한 사람들이다. 쿠데타를 했다느니 이딴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도와줄 용의는 전혀 없다. 잘하리라 생각하고 방관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 전개 과정에서 윤 후보가 가장 분노한 대목이 김 위원장의 “연기만 해달라”는 발언이었다는 점도 두 사람의 결별이 결국 주도권을 둔 권력 다툼 때문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지금까지 김종인과 윤석열 두 사람의 결별 과정과 이유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그렇다면 ‘정권 교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진통 끝에 손을 잡았던 두 사람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가 냉랭하게 돌아서게 되기까지 주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다고 봐야 할까요.
앞에서 봤듯이 윤핵관 쪽에선 후보를 ‘아바타’로 만들겠다는 김 위원장의 오만, 두번씩이나 선대위를 뛰쳐나가 윤 후보에게 부담을 안긴 이준석 대표의 경솔한 처신과 언행 등이 이번 사태를 낳은 원인이라고 지목합니다. 물론 김 위원장과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이준석 대표가 이렇게 행동하기까지 근본적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윤 후보 본인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는 게 객관적입니다. 고비고비마다 윤 후보가 잘못된 판단과 독단적 언행을 드러내면서 지지율이 하락했고, 이에 대한 처방을 놓고 당과 선대위 내 대립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지혜롭게 수습하는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윤 후보가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킨 탓에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입니다.
가족 문제 대처, ‘공정·상식’ 정치적 자산 스스로 허물어
윤 후보의 위기를 초래한 가장 직접적인 문제가 부인 김건희씨 ‘허위 이력’ 의혹이라는 데는 이론이 별로 없습니다. 의혹 그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김씨와 윤 후보의 대응 방식이 국민적 분노와 실망을 더 키웠습니다.
김건희씨 의혹이 불거진 뒤 사흘 만에야 윤 후보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그러고도 바로 다음날 “김씨 허위 이력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노코멘트”라며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이래서야 누가 그 사과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김씨 본인도 첫 의혹 보도 뒤 12일 만에야 공식 사과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6분 넘게 읽은 입장문 중에서 자신이 잘못한 사실을 언급한 대목은 딱 한 문장입니다.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습니다.”
김씨 의혹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15년에 걸쳐 최소 5개 대학에 제출한 이력서에 스무 가지 넘는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는 겁니다. 사문서 위조와 업무방해, 사기 등의 범죄 혐의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장문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소명이 전혀 담기지 않았습니다. 범죄 혐의를 인정하거나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도 없었습니다. 사과의 기본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겉핥기 사과’를 하면서, 상당 분량을 윤 후보와의 연애담과 남편 자랑, 남편에게 누가 되고 있다는 미안함 등으로 채웠습니다. ‘대국민 사과’가 아니라 ‘대남편 사과’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김건희·윤석열 부부의 이런 태도가 국민적 반감을 불러일으킨 건 당연한 일입니다. 윤 후보는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대면서 정치적 위상을 키웠습니다. 검찰에 재직하며 신정아·정경심씨를 비슷한 혐의로 가차없이 수사하고 처벌했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는 ‘공정과 상식’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웠습니다.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의 부인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운 자세로 “관행”이었고 “전체적으로 허위는 아니다”라고 비호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자산인 ‘공정과 상식’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자, 지지율도 함께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허위 이력’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자신과 부인이 악수를 연달아 두면서, 윤 후보가 내세워온 공정과 상식의 정당성과 명분은, 특히 중도층과 2030에서 이제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허물어진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준석과 전면 충돌도 자초
이준석 당대표와 ‘강 대 강 충돌’도 따지고 보면, 김씨 의혹에 대한 대처 방식을 둔 대립에서 비롯된 문제였습니다. 신지예씨 영입 등을 둘러싼 갈등도 이에 비하면 부차적입니다.
이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을 내던지게 된 직접적 계기는 조수진 최고위원 겸 공보단장의 ‘하극상’이었죠. 구체적으로 이 대표는 지난달 20일 중앙선대위 비공개 회의에서 조 최고위원을 향해 “모 언론에서 윤핵관발로 나오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보도에 대응하라”는 취지로 발언합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언급한 기사 내용이 바로 ‘한 당 관계자가 김씨 허위 이력 의혹에 이 대표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선대위 홍보미디어본부장직 사퇴를 촉구했다’는 겁니다. 이 대표가 이 기사를 언급하며 조 최고위원에게 공보 대응을 지시했지만, 조 최고위원은 “내가 왜 그쪽의 명령을 들어야 하느냐. 나는 후보 말만 듣는다”며 콧방귀를 뀐 거죠. 이에 이 대표가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선대위가 필요없다”면서 책상을 치고 회의장을 나갔고, 결국 이 대표의 선대위원장 사퇴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윤 후보가 “그게 민주주의”라며 하극상을 한 조수진 최고위원을 편든 것도 이 대표의 분노를 부채질했습니다.
“정치를 하다 보면 같은 당 안에서나 선거 조직 안에서나 서로 생각이 또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군사 작전 하듯이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하겠나.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니겠나.”(윤석열 후보, 12월20일 강원도 철원의 공공산후조리원을 방문한 후 기자들과 만나)
김건희씨 의혹 대처에 대한 이견이 이 대표 사퇴의 뇌관으로 작용했다는 건 이 대표 스스로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2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사퇴한 직접적인 계기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누군가의 지시 내지 부탁으로 교수 출신 국민의힘 의원 8명이 김건희씨 의혹과 관련해 '시간 강사 채용 방식 등은 관행이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말이 되느냐'며 반대 의견을 냈더니, 바로 윤 후보 측에 ‘이준석이 선거를 안 돕는다’는 식으로 보고가 들어갔다. 선대위에 대전략도 없다. 이를테면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의혹에 대해 대응이나 엄호 어느 쪽으로도 방침이 없었다.”
김씨 의혹에 대한 대응이 윤 후보의 ‘내로남불’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정치적 자산의 붕괴와 나아가 당의 분열로까지 이어졌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정치적 자산 붕괴와 당의 분열, 이 두가지는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을 이끈 요인이라는 점에서 지금 윤 후보 위기의 본질적 요인은 김건희씨와 윤 후보 자신에게서 비롯한 것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윤 후보의 거칠어진 입, ‘자질 리스크’ 분출
지난해 연말 윤 후보는 하루가 멀다시피 험한 말을 쏟아냅니다. 김씨 의혹과 당 내분 등으로 지지율 하락이 가팔라지자, 정부·여당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풀이됐습니다. 윤 후보는 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와 29일 경북선대위 출범식, 30일 대구선대위 출범식에서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후보에게 “확정적 중범죄자” 딱지를 붙이기에 이릅니다.
“검찰이나 정권의 태도를 보면 확정적 범죄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데, 이런 확정적 중범죄,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는 후보와 국민들 앞에서 정해진 정도의 토론이 아닌 토론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윤석열 후보, 12월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
헌법상의 ‘무죄 추정 원칙’을 저버린 것은 물론, 피의자로 입건되지도 않은 경쟁 후보를 “중범죄자”로 몰아간 것은 정치적 금도를 어긴 것이라는 비판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왔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30일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이재명 후보에 대해 민주당 당원과 상당수 국민이 대통령 후보로 인정하고 윤 후보 못지않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윤 후보는 그 발언만으로 이 후보 지지자들을 무시하는 셈이고 그런 태도 하나하나가 중도층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윤 후보는 또 “이런 사람하고 토론해야겠느냐. 어이없고 너무 같잖다”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국민이 대선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자리인 토론 참여마저 거부한 것입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또 자신이 없어 토론을 피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키는 구차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정부·여당을 향해선 ‘철 지난 색깔론’ 공세를 폈습니다.
“좌익 혁명 이념, 북한의 주사 이론 배워서 민주화운동 대업에 끼어 마치 민주화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이렇게 살아온 그 집단들이 이번 문 정권 들어서서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 무식한 3류 바보들 데려다가 정치를 해서 나라 경제 망쳐놓고 외교·안보 뭐 전부 망쳐놨다.”(윤석열 후보, 29일 경북선대위 출범식)
곧바로 여당에서 반박이 나왔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우리가) 무식한 삼류 바보 검찰총장을 쓴 건 반성하고 있다. (…) 대통령 후보의 품격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검찰총장의 모습, 그리고 폭력적인 모습만 확인할 수 있다.”(강훈식 민주당 의원, 31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민주화 운동엔 붉은 색깔을 물들이면서, 독재정권은 미화합니다.
“권위주의 독재정부는 우리나라 산업화 기반 만들었다. 이 정부는 뭐 했나. (…) 자유민주주의 지키려고 하는 것인지 이 나라를 사회주의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인지.”(윤석열 후보, 12월29일 경북선대위 출범식)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했던 ‘전두환 미화’ 발언의 연장선입니다. 당시 국민 능멸 논란을 빚었던 ‘개 사과’, ‘사과는 개나 줘버려’가 윤 후보의 진심이 아니었느냐는 의심을 부채질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선이 필요 없다”는 황당한 주장도 거리낌없이 내놓았습니다.
“대선도 필요 없고 이제 곱게 정권 내놓고 물러가라”(윤석열 후보, 12월29일 경북선대위 출범식)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소양을 의심하게 하는 무지하고 과격한 주장입니다. 각 당 후보들이 대선에서 비전과 정책 경쟁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는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조차 안중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윤 후보의 ‘아무말 대잔치’는 외교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8일엔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어떤 입장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런 답을 했죠.
“한국 국민, 청년들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 중국 청년 대부분이 한국을 싫어한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 현 정부에 들어서 중국 편향 정책을 들고 미-중 중간자 역할을 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안 좋게 끝났다.”
도무지 한 나라를 이끌어보겠다는 유력 대선 후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와 중국의 ‘한한령’ 맞대응 등으로 한-중 간의 비호감이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걸 유력 대선 후보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거칠게 얘기하는 건 너무도 부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유력 정치인이 입밖에 내는 순간 한-중 양국의 갈등은 더욱 에스컬레이트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되어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만약에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다 그러면 이것은 말 그대로 대형 외교 참사입니다. 쉽게 말해서 외교의 기본을 잘 모르시는 것 아닌가 싶어요. 대통령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 다르고 어 다르거든요. (…)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예를 들어서 윤석열 후보 발언이 중국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 윤석열 후보야 모르고 연못에 자기는 모르고 돌멩이 하나 던졌다고 치더라도 그 돌멩이에 맞는 개구리 생각은 해보셔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윤건영 민주당 의원, 12월30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윤 후보는 국가 지도자를 꿈꾼다면 정제된 발언을 하는 것부터 배워야만 할 겁니다.
윤 후보는 아마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이런 과격한 주장을 쏟아낸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로 돌아왔습니다. 윤 후보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될 자질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에 불을 붙인 겁니다.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평정심을 잃고 극단적인 언사를 구사하는 후보에게 국정을 믿고 맡길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이에 앞서 경제 관련 유튜브 채널인 ‘삼프로 티브이’에 출연한 것도 윤 후보의 국정 능력에 대한 회의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윤 후보는 구체적인 경제 현안에 대한 몰이해만 드러내면서 실물 경제와 정책에 대해 식견과 이해도를 보여준 이재명 후보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습니다.
윤 후보의 실력과 자질에 대한 의문이 커진 상황에서 이뤄진 신년 여론조사 결과는 윤 후보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일깨워 줍니다. 올해의 시작과 함께 쏟아진 각종 대선 여론조사들은 예외없이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 소폭 상승과 윤 후보의 지지율 급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윤 후보에게서 떨어져 나간 표 일부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옮겨가면서 안 후보의 지지율이 두자릿수에 다가선 것으로 나왔습니다.
특히 후보의 국정역량과 호감도를 비교한 <한국일보> 신년 여론조사 결과가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 조사에서 이 후보의 국정 역량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과반(50.3%)이 ‘충분하다’(‘부족하다’ 47.6%)고 답했습니다. 반면 윤 후보의 국정 역량에 대해선 ‘부족하다’는 응답이 69.8%였고, ‘충분하다’는 27.4%에 그쳤습니다. 또 후보에 대한 느낌을 물은 조사 결과를 보면, 비호감도를 나타내는 ‘느낌이 나빠지고 있다’는 응답은 윤 후보 50.4%, 이 후보 33.8%였습니다. 윤 후보의 비호감도가 이 후보보다 16.6%포인트나 높게 나타난 겁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김종인 위원장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선대위 전면 개편이었습니다. 김 위원장 중심으로 선대위를 재구성해 윤 후보의 메시지와 일정까지 김 위원장이 꽉 틀어쥐고 관리해나가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래야 윤 후보의 막말로 인한 더 이상의 실점을 막고 정책 비전 제시를 통해 지지율 반등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선거운동 과정을 겪어보면서 도저히 이렇게는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당신의 비서실장 노릇을 선거 때까지 하겠다. (…)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주는 대로만 연기만 좀 해달라. (…) 국민 정서에 반하는 선거운동을 해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 후보가 자기 의견이 있더라도 이것이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면 그런 말은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김종인, 3일 국민의힘 의원총회)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연기만 해달라는 말은) 가급적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그동안 후보가 말실수를 해서 바로잡으려면 별수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던진 이 마지막 승부수도 5일 윤 후보의 거부로 결국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오히려 김 위원장마저 밀어내고 윤 후보 직할의 선대본부가 들어서면서 윤 후보는 이제 누구 눈치도 볼 이유가 없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윤 후보가 정책 중심의 메시지로 중도층을 겨냥하기보다 계속 강경한 발언으로 강성 지지층 결집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중도층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이미 선대위 재편 과정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은 윤 후보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준석과 ‘묻지마 봉합’…상호 불신은 해소 안돼
다만 윤 후보도 강한 위기감을 느끼면서 변화의 몸짓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장면도 나왔는데요. 6일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이준석 대표 사퇴 촉구 결의’가 논의되는 가운데 윤 후보가 저녁 8시께 예고없이 나타나, “저와 대표와 여러분, 모두 힘을 합쳐 3월 대선을 승리로 이끌자”며 이 대표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이에 이 대표도 “세번째 도망가면 당대표를 사퇴하겠다”고 말한 뒤 윤 후보와 포옹했습니다. 일단 내분을 봉합하는 모양새를 만든 겁니다. 다만 갈등의 원인까지 해소한 건 아닙니다.
사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철규 신임 전략기획부총장 임명안 처리를 두고 언성을 높이며 정면 충돌한 바 있습니다. 이 대표가 이른바 ‘윤핵관’이라는 점을 문제삼아 임명에 반대했지만, 윤 후보는 당무우선권을 내세워 임명 강행 의사를 밝힙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마음대로 임명장 쓰시라. (그러나) 제 도장이 찍힌 임명장이 나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맞섰다고 합니다. 이 일이 벌어진 직후 열린 의총에서 의원들은 원내지도부의 제안에 따라 이 대표 사퇴 촉구 결의를 할지 말지를 논의한 겁니다.
롤러코스터를 탄 끝에 두 사람이 가까스로 갈등을 덮었지만, 과연 제대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특히 윤핵관 등 핵심 문제에 대한 분명한 정리 없이 ‘묻지마 봉합’을 한 탓에 언제든 실밥이 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실제로 이 대표는 7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전날 윤 후보와 전격적으로 화해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윤 후보 쪽에서도 우려가 나왔습니다. 김영환 전 선대위 인재영입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이준석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니 후환이 있을까 두렵다. 이 ‘아름다운 봉합’은 며칠 가지 않아 수많은 문제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치적 리더십 흔들…‘후보 교체론’까지 솔솔
이 때문에 현재로선 윤 후보가 이후 지속적으로 이 대표와 전면적으로 협력하면서 선거운동을 통해 이탈한 지지층을 복원하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선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결국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윤 후보가 지지율 하락을 신속히 저지하고 반등 계기를 찾지 못할 경우 ‘후보 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후보가 교체되려면 지지율에서 두자리 숫자로 벌어져야 하고 그다음에 이를 리드할 수 있는 여론이 있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이 현역 의원들이며 이어 당의 원로급, 또 하나는 언론으로 쉽게 이야기해서 조중동으로 이들 3객체가 '안 되겠다, 바꿔야 된다'라며 같이 밀고 나오면 윤석열이 어떻게 당해 내겠는가. 현역 의원, 원로, 언론, 이 3가지가 의견 일치를 보면 (후보 교체가) 가능하다고 본다.”(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4일 KBS ‘주진우 라이브’)
불과 두달 전만 해도 이재명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면서 지지율 1위를 구가하던 윤 후보로선 ‘후보 교체’가 거론되는 지금의 상황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윤 후보의 자업자득입니다. 부인 리스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자신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을 날린 것도, 각종 막말과 실언으로 자질 논란을 일으킨 것도, 김종인을 일거에 내친 것도 윤 후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윤 후보가 자신을 배제하기로 한 기류가 분명해진 4일 저녁 금태섭, 정태근 전 의원 등 측근들과 함께 한 만찬 자리에서 ‘국운이 다했다’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내친 윤 후보의 대선 승리가 어려워졌다는 인식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걸 ‘국운이 다했다’가 아니라 ‘국운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봅니다. 유력 대선 후보의 자질과 실력이 이제나마 국민 앞에 실체를 드러내고 평가받는 것은 국가 전체로선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자질과 실력이 부족한 후보가 이를 들키지 않은 채 대통령이 됐을 때 국가와 국민이 감당해야 할 엄청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이보다 큰 국운이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자, 이제 두달 남은 대선 가도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국운은 계속 발휘될 수 있을까요. <논썰>에서 함께 계속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바로 영상으로 확인하시죠.
기획·출연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PD
도움 채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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