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 인터뷰] 북한 연구한다며 쓰레기를 줍는 교수

양은하 기자 2022. 1.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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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5도에서 북한쓰레기를 줍다' 저자 강동완 교수

[편집자주] 북한을 바라보는 새 시각을 소개합니다. In/Out(인아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재미있으면서도 사색이 필요한 관점을 끌어낸다는 의미입니다. 고착된 관점과 새 관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강동완 동아대학교 교수.('통생통사 강동완TV' 갈무리)ⓒ 뉴스1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코로나19는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북한이 국경을 굳게 걸어 잠그면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더욱 요원해진 것이다. 북중 접경 지역이나 러시아를 드나들며 북한 연구 자료를 수집해온 강동완 동아대학교 교수(부산하나센터장)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중국의 입국 금지 조치도 막지 못한 그의 발을 코로나19가 잡았다. 흘려보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또 다른 현장을 찾아 나섰다. 한국에서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 바로 서해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대연평도, 소연평도)다. 그곳에서 그는 북한 주민들이 쓰고 버린 제품의 쓰레기를 주웠다.

"만약 북한 상품 포장지가 색깔 하나 없는 단순한 비닐 포장에 불과했다면 굳이 주목하지 않았을 거예요." 망원 렌즈로 북한을 들여다보려고 찾았던 백령도에서 우연히 파도에 떠밀려온 북한 쓰레기를 본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1년간 모은 북한 생활 쓰레기 제품 포장지는 모두 708종, 1414점. 과자, 사탕, 아이스크림, 빵, 음료수, 라면, 조미료 등 품목도 다양했지만 종류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음료수는 97종, 과자 58종, 우유도 38종이나 됐다. 곰돌이푸와 헬로키티를 닮은 캐릭터도 있고, 한국의 것과 유사한 제품도 있었다. 마치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것인 듯 포장이 고유하면서 화려했다. 그는 "장마당을 통한 시장 경제가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또 "주원료를 보면 원자재를 구할 수 없는 북한 경제의 열악성도 보인다"라고 말했다.

고초도 있었다. 수상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현지 주민이 신고한 적도 있고, 지뢰 경고판을 보지 못하고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바람에 인근 군부대에서 긴급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교수가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냐', '쓰레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현장에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북한 연구는 분단 조국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사람을 위한, 통일을 위한 길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소명일지, 항변일지는 오늘의 기준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로 뛰는 연구자'라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의 이야기를 서면과 전화로 들어봤다.

서해5도에서 주운 북한 제품 쓰레기(강동완 교수 제공)ⓒ 뉴스1
북한 음료수 병에서 떼어낸 라벨(강동완 교수 제공)ⓒ 뉴스1

-왜 쓰레기인가? ▶북한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분단 시대에 북한 상점에서 어떤 물건을 사고파는지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신비로운 비밀에 가깝다. 서해5도 지역 해안가에 떠밀려 온 북한 생활 쓰레기는 북한 주민들이 직접 사용한 제품이다. 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내부의 다양한 현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모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나. ▶솔직히 처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 쓰레기를 처음 발견한 백령도의 해안을 1㎞ 정도 걸으면서 주운 게 소주와 음료수 포장지 등 고작 3점에 불과했다. 북한 생활 쓰레기가 남한 지역에 떠밀려 왔다는 것 자체가 연구의 출발점이라 생각했다. 곧바로 서해5도 중 한 곳인 연평도에 들어가서 북한 쓰레기를 찾기 시작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수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쌓였다.

-북한 쓰레기의 어떤 점에 주목을 했나. ▶만약 북한상품 포장지가 색깔 하나 없는 단순한 비닐 포장에 불과했다면 굳이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별상품마다 각각의 특징을 보여주는 독특한 서체와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서 좁게는 산업미술 측면에서 상품의 브랜드, 디자인, 상표 등을 파악할 수 있고, 넓게는 북한 지역별 생산 공장, 생산 제품 현황을 파악 할 수 있다. 탈북민 면접을 병행하면 이러한 제품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유통되는지 사회상도 파악할 수 있다. 또 서해5도 지역은 남북이 접경을 맞댄 곳이라서 북한이 최전선 군부대에 지급한 보급품 포장지를 통해서도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같은 품목인데도 디자인이 다양한 건 어떻게 해석하나. ▶원자재를 수입하지 않고 자급자족,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에서 이리도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낸다는 게 의아했다. 나도 북한 상품이 제품의 특성에 맞는 상품명과 디자인은 물론 캐릭터까지 그려 넣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어쩌면 인민들에게 공급하는 소비품에 굳이 디자인과 브랜드를 고려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은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개인적 취향을 가진 '소비자'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고자 하는 북한 주민의 개인적 욕망과 정서가 보인다. 개별 기업소에 자율 책임제를 부여하면서 자체적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을 올리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건데 결국은 장마당을 통한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로 본다.

-쓰레기만 보면 북한의 식량난이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북한 지역 전반에서 소비되는 제품으로 볼 수 있나. ▶나도 처음엔 평양이나 대도시의 일부 사람만 쓰는 게 아니냐고 추측했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들(함경도와 양강도 지역 출신이 많다)에게 상품 포장지를 보여주었는데 '에스키모'라는 아이스크림 종류가 많다는 사실에 대부분 놀랐다. 자신들이 북한에 있을 때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2019년 양강도 혜산에서 탈북한 20대 청년은 책에서 소개한 30여 종의 에스키모 중에서 10여 종의 제품을 직접 장마당에서 구입해 먹어봤다고 했다. 그래서 장소나, 계층의 문제보다 시기의 문제일 수 있다고 봤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서 생긴 변화로 본다는 뜻인가. ▶북한이 2017~2018년 때부터 인민소비품 생산을 강조하고 있다. 조금씩 생산이 많이 되다 보니 평양을 비롯한 다른 시·도로 퍼져가는 거다. 이게 시장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제품을 생산한 공장 대부분이 평양에 있는데 송도원종합식료공장은 강원도 원산에 있다. 강원도에서 만든 제품이 서해안에서 보인다는 건 지역 간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시장이 확산되다보니 장마당 내에서 거래되는 물건들도 확산되는 것이다. 하지만 포장이 화려하고 양과 종류가 많아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직은 북한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들어 탄산단물의 주원료인 '8월풀당'(팔월풀의 당 성분을 우려내 정제한 것)은 설탕이 있다면 굳이 쓸 필요가 없는 재료다. 원자재를 구할 수 없어 자연에서 추출한 원료를 선전하는, 경제의 열악성을 보여준다.

-주운 제품들의 생산일이 대부분 최근인가. ▶북한 상품 특징 중의 하나가 '생산 날자는 접합면에 표기'라고 돼 있는데 70~80%는 생산날짜가 없었다. 주운 것 중에는 2020년이 가장 최근인데, 생산연도가 찍혀있는 건 극히 소수다.

-한국 제품 디자인과 유사한 제품들이 눈에 띈다. ▶북한은 외부정보를 철저히 단속한다. 2020년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든 것만 봐도 얼마나 외부 정보가 자신들의 체제에 위협이 되는 요소인지 잘 알고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한국산 제품의 디자인이나 캐릭터를 따라 하는 건 한국상품에 대한 인지도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북한 당국이 '발은 여기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라고 선전과 단속을 하지만 결국 고립되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말인 것이다.

-'대동강주사기공장'에서 만든 주삿바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는데. ▶북한 쓰레기는 대부분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안가에서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 주삿바늘은 굉장히 작은데 그 넓은 바닷가 해안에서 어찌 찾아냈다. 분명히 전날 다녀간 곳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왠지 한 번 더 가보고 싶었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드넓은 해안가 자갈 틈에 끼어 있었다. 유일하게 포장지가 뜯기지 않은 완제품이고, 북한에 가더라도 사 올 수 없는 품목이다. 북한 의료 상황을 엿볼 연구 자료이기도 해서 나한테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평소에도 북한 관련 물건을 수집한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걸 수집하시고 어떻게 활용하나. ▶한 달에 한 번씩 북중 국경에 갈 때도 있었다. 북한과 교역하는 조선족 상인들에게 부탁해서 물건을 받기도 하고, 그곳의 상점들을 뒤져서 북한 물건을 구하곤 했다. 대부분 화장품, 술, 담배, 과자 정도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중국에서 팔아야 하는 제품이다 보니 그런 제품들만 주로 나온다. 또 약간의 그림, 보석, 책도 있다. 담배 200여 종은 책('북한 담배')으로 냈고, 그림은 유튜브('강동완TV')를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나머지 제품은 '메이드인 북조선'이라는 시리즈로 책 작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중국 입국이 금지됐다고 들었다. ▶중국에서 망원 렌즈로 북한 지역을 촬영하고, 그곳 탈북 여성들을 면접하다 보니 '블랙 리스트'에 올랐던 것 같다. 20여 명 단체로 북중 접경 지역 투어를 하는데 검문소에서 나만 문제가 되어 2~3시간 잡혀있었던 적도 있다. 그런 상황들이 쌓이다가 종국에는 공항에서 추방되는 지경에 이렀다. 입국 금지를 당한 거다. 2019년 11월 일이다. 그러고 나서 바로 코로나19 사태가 왔다. 5년 정도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던데 2년이 지났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려고 한다. 중국에 못 가게 되면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북한 노동자들을 만났다. 어떻게든 내가 생각하는 '현장'에 가려는 내 시도이기도 하다.

-쓰레기를 수집하면서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서해 섬의 현지 주민이 인적 드문 곳에 수상한 사람이 보인다고 신고해서 곤욕을 치른 적도 다수다. 지뢰 경고판을 보지 못하고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바람에 인근 군부대에서 긴급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부산에서 출발해 인천까지 그리고 인천 연안부두에서 4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뱃길도 큰 난관이었다. 백령도에서 나흘 만에 겨우 배가 떴는데, 소청도에 들렀다 나갈 욕심을 부렸다가 발이 묶여 일주일간 갇힌 적도 있다.

-꽤 위험해 보이는 방식인데, 이런 연구 방법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연구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특히 북한 사회와 사람에 대한 이해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발로 뛰는 연구자'라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늘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한다. 새로운 방식, 기존에 하지 않은 연구 주제를 찾으려 한다. 중국에서는 탈북 여성을, 러시아에서는 북한 노동자를 만나려고 기회만 되면 무조건 다녀오려 했다. 현장에 직접 갔기 때문에 지금의 이 연구도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보는 것만이 진실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솔직히 북한이 공식 행사를 할 때 주석단에 누가 올랐는지, 북한의 제2인자가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북한 문헌을 보며 의미를 분석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문헌에만 의존하다 보면 북한을 피상적으로 알 수밖에 없고 결국 연구실에 갇힌 연구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북중 국경에서 눈으로 보이는 현상만으로 북한 실태를 분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격하려 한다. 망원렌즈를 통해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실제 북한의 허상과 실상을 알리려고 한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다. 이게 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교수라는 직책을 고려하면, 그런 방식이 학술적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 있어서 고민도 있을 것 같고. ▶매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고, 현장에 갔을 때 내가 가는 길이 맞느냐고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 북중 국경에 가서 북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탈북민에게 보내면 그분들은 명절날 고향 땅을 보게 되는 거다. 나는 연구를 위한 북한 연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통일을 위한 길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 현장에 나갈 수밖에 없다.

-'통일 크리에이터', '통일 덕후'로 불리길 원한다고 했다. ▶북한 연구는 단순히 북한적 현상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분단 조국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접근해야 한다. 통일을 염두에 두지 않고 북한이나 탈북민을 보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분단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북한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북한 주민들의 힘으로 북한 사회가 변화될 것이며,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외부 정보를 유입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신념이다.

-이번 연구에 대해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신선하다거나 놀랍다는 게 첫 번째 반응이다. 너무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니 새로운 연구 자료를 발굴했다고 높이 평가해 주는 분들도 많아졌다. 사실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던 초반에는 비난이나 욕도 많이 들었다. 교수가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냐. 그 쓰레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이다. 만약 종류가 많지 않았거나 획일적이었다면 별로 의미가 없었겠지만 다양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이라고 나는 자부한다.

-동해안에서도 북한 쓰레기를 주우러 다닌다고. ▶서해안에 이어 바로 시작했는데 서해5도에서 주운 것보다 더 많았다. 놀라운 건 서해안에서 보지 못한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평양 공장에서 만든 제품들은 겹쳤다. 평양 제품은 서해뿐 아니라 동해도 간다고 봐야 할 것 같다는 뜻이다. 동해 쪽에서만 발견된 제품은 청진, 회령 등 그 지역 공장에서 만든 제품들이었다. 이렇게 동해안까지 연구를 확장하면 북한의 유통 실태나 경제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동해안에서 북한 쓰레기를 줍다'라는 책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탈북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돌봄학교와 통일문화센터를 세우는 게 꿈이다.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국내에 입국하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현실이 아이와 함께 생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하지 못해 일반학교에 적응하기 어렵고, 아이를 돌보느라 엄마는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안학교가 아닌 방과후 학교 성격으로, 일반학교 전입을 위한 디딤돌 역할의 학교가 필요하다. 통일문화센터는 일상에서 통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통일 감성 공간을 의미한다. 또 국내 최대 북한 관련 박물관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 물건을 수집하고 있다.

yeh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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