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故황예진씨 남자친구..왜 '살인죄' 인정 안됐나?

정혜민 기자 2022. 1.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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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에 출석한 이모씨(당시 31세) 모습. ⓒ 뉴스1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머리를 옮기려다 찧었어요. 술을 많이 마셔 완전 기절했어요. 머리에서 피가 납니다"

지난해 7월25일 오전 3시1분쯤, 119에 신고가 접수됐다. 구급대가 도착했을 당시 고(故) 황예진씨(생전 26세)는 심정지 상태로 머리에서는 피가 많이 흘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119에 전화한 것은 황씨의 남자친구 이모씨(32)였다. 하지만 황씨는 술이 아니라 이씨의 폭행 때문에 정신을 잃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황씨는 깨어나지 못했다. 3주 동안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있었던 황씨는 8월17일 세상을 떠났다.

사건 직후 경찰은 이씨를 상대로 수사에 나섰다.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황씨 사망 후 경찰은 이씨의 혐의를 상해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바꿨고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황씨와 이씨는 인턴사원 동기로 만나 2020년 12월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약 7개월 뒤 황씨는 이씨의 폭행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씨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집들이날 밤, 30분간 황씨 숨지게 한 4차 폭행

사건 발생 전날인 지난해 7월24일 저녁, 이씨와 황씨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황씨 집에서 집들이를 했다. 그리고 25일 오전 2시23분 황씨가 함께 집들이를 했던 친구를 바래다준 직후 사건이 시작됐다.

황씨는 이씨의 휴대전화를 확인한 후 자고 있던 이씨를 깨워 "둘 사이 다투는 내용을 왜 친구들에게 알렸느냐"고 물었고 이에 이씨는 "이야기하기 싫다, 그냥 헤어지자"며 황씨를 침대 위로 밀쳐 넘어뜨리고 황씨 집을 나왔다.

황씨는 뒤따라 나와 이씨의 머리채를 잡았다. 격분한 이씨는 황씨의 양팔을 붙잡은 채 황씨를 계속 밀쳤다. 결국 황씨가 넘어지면서 머리가 벽돌 기단에 부딪혔다.

황씨는 약 4분간 기절해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씨는 황씨의 몸 위에 올라타 황씨를 누르면서 폭행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포함해 이씨는 총 4차에 걸쳐 황씨를 폭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황씨를 내버려 둔 채 황씨 집에 들어가 자신의 자동차 열쇠를 가지고 나왔다. 하지만 1층 오피스텔 입구에서 황씨를 다시 만나게 됐다. 이 자리부터 차량으로 가는 길에서, 또 주민이 나타나자 이씨와 황씨는 오피스텔 1층으로 돌아가 계속 다퉜다.

황씨가 이씨를 때릴 것처럼 하자 이씨는 황씨를 벽으로 몰고 가 저항하지 못하는 황씨의 계속 때려 밀쳤다. 머리와 목이 크게 흔들린 황씨는 다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씨는 112에 전화를 걸어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와 줄 수 있느냐, 왜 자는 척하는지 모르겠다"고 신고를 했다가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전 2시57분이었다.

이씨는 의식불명인 황씨의 상체를 잡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끌고 가다 떨어뜨렸다. 황씨의 뒷머리가 바닥에 부딪혔다. 머리에서는 피가 났다. 이씨는 119에 전화해 신고했다.

이씨는 황씨의 상체를 들어 오피스텔 건물 바깥으로 끌다가 다시 떨어뜨렸다. 황씨의 이마가 바닥에 부딪혔다.

구급대가 오고 황씨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3주 뒤 황씨는 사망했다. 부검 결과 황씨의 사인은 척추동맥 파열로 인한 뇌저부 지주막하출혈이었다. 4차 폭행 당시 황씨가 목이 심하게 꺾였다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척추동맥이 파열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故 황예진씨 어머니가 6일 1심 선고 직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뉴스1

◇유족 "살인죄로 처벌해달라"…재판부 판단은?

황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8월2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딸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한 달 만에 약 53명의 동의가 모였다.

황씨 어머니는 "일반인이라도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보면 곧바로 119 신고부터 하는 게 정상이지만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딸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한참 지나서야 119에 허위 신고하고 골든타임을 놓치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살인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데이트폭력 가중처벌법 신설과 가해자에 대한 구속수사·신상공개를 촉구했다. 이 사연을 접한 많은 사람이 함께 마음 아파하고 공분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6일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유족은 기소 당시부터 이씨를 '상해치사'로 기소한 데 유감을 표했다. 황씨 어머니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공소장 변경을 통해 '살인죄'를 물어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황씨 어머니의 증언을 듣던 방청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증거로 제출된 폭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던 이씨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방청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안동범)는 지난 6일 이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선고를 들은 녹색 수의 차림의 이씨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재판부는 "이씨가 의도적으로 황씨를 살해하거나 살해의 의도로 방치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살인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황씨와 감정 대립 중에 우발적으로 폭행하면서 상해치사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른바 '교제살인' 내지 '스토킹살인'의 일반적인 유형으로 보복의 의도로 계획적인 살인에 이르는 경우와는 사안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황씨 유족은 반발했다. 황씨 어머니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면 사람을 그렇게까지 방치할 수 없다"며 "검찰이 항소를 안 하면 1인 시위라도 해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은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대가가 불과 징역 7년이라는 것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며 "검사의 징역 10년 구형조차 납득하기 힘든 유족들은, 그보다 더 낮은 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전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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