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바다사나이 이지상씨,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바다로

김낙희 기자 2022. 1.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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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보령에 귀어, 조업 첫해 2000만원→2021년 3억원 수익
이웃에 베푼 게 정착에 도움.."새해 3개월 만에 3억 버는 게 꿈"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보령=뉴스1) 김낙희 기자 = “전남 여수의 한 섬에서 태어났죠. 어린 시절부터 소라와 해삼을 잡고, 낚시도 하며 바다와 함께 지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원양어선 항해사를 시작으로 선장까지 했어요. 그런 데도 귀어(歸漁)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타향인 충남 보령시 남포면 삼현리로 귀어한 이지상씨(63). 연안통발 어선 한별호(4.99톤)를 타고 보령 앞바다를 누비는 그가 귀어 5년 차를 맞아 밝힌 속마음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여수에서 배를 타고 1시간가량 걸리는 초도(草島)이다. 섬에서 육지로 나와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수산대학 어업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부터 1994년까지 원양어선(미셸호·아포코205호) 항해사와 선장으로 일했다.

이 기간 이씨는 줄곧 캐나다, 프랑스, 뉴질랜드, 아프리카 가나 등 태평양과 대서양을 누볐다.

충남 보령시의 귀어인 이지상씨(63). 그가 26살 항해사 시절 때의 모습.(이지상씨 제공) © 뉴스1

힘들어하는 아내 위해 바다 떠날 결심 이지상 씨는 1991년 아내인 김신희 씨와 결혼한다. 이후 원양어선 선장 직업 특성상 오랜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내를 배려해 바다를 떠날 것을 결심을 했다. 1995년 서울로 상경해 관악구 신림동 신대방역 주변에서 부동산중개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25년여간 바다를 떠나 생활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해온 그는 내내 바다를 잊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7년 지인과 함께 찾은 보령시 ‘호도’에서 재미 삼아 통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계기가 이씨를 바다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통발을 들어 올릴 때마다 노래미, 우럭, 장어(아나고) 등 예상하지 못했던 수산물들이 계속 올라오는 모습이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다. 그는 결국 귀어를 결심하고 가족 설득에 나섰다.

이지상 씨는 “아내가 뜻밖에 쉽게 허락해 줬어요.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뱃놈이 그렇게 다시 하고 싶으면 단단히 준비하라는 당부를 했죠”라며 “2017년 부동산중개업을 폐업하고 아내와 함께 보령으로 내려갈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고향인 전남 여수는 귀어·귀촌 대상지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의 두 자녀가 계속 머물 서울과 멀기도 할뿐더러 이미 통발 체험 당시 충남 보령을 대상지로 정했기 때문이다.

보령 남포면 귀촌, 2018년 6월 1일 첫 조업 이씨는 즉시 귀어·귀촌박람회 견학을 시작으로 한국어촌어항협회가 추진한 귀어·귀촌아카데미를 연이어 이수했다. 이후 보령 대천항 앞바다에서 조업하는 한 통발어선에 취업해 선원으로 일하며 어업 일을 체득했다.

귀어 자금은 수협에서 어선 구매 관련 정책자금 3억 원을 대출받아 충당하고, 나머지 부족분은 그의 아내가 지원해줬다.

그와 아내는 보령 남포면 삼현리의 한 주택과 어선을 매입했다. 이들은 자녀 이름의 첫 글자에서 각각 따다 붙인 ‘한·별’을 어선 이름으로 지었다. 한별호는 2018년 6월 1일 대천항에서 첫 통발 조업에 나선다.

이지상 씨는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안다고 자신해 일사천리로 귀어·귀촌 준비에 열을 올렸다”며 “통발어선 선원으로 몇 달 일한 후 바다에 나가보니 마주한 건 차디찬 텃새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통발 어업에 나선 첫해 고작 18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처참한 결과였다. 아내는 이듬해부터 내조에만 집중하기로 했고, 대신 외국인 선원 두 명을 고용해 바다로 나갈 채비를 했다.

이지상씨(오른쪽)와 아내인 김신희씨가 자신들의 통발어선인 한별호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이지상씨 제공)© 뉴스1

마을에서 치이고 바다에서 치이고 이씨와 부인은 귀어·귀촌에 앞서 어느 정도의 텃새는 예상했다. 주민들도 느닷없이 마을로 귀촌한 이들이 달가울 리 없었다. 바다에서는 선원이던 그가 하루아침에 선주 겸 선장으로 신분이 바뀌어 나타나자 곧바로 견제 대상이 됐다.

이씨는 “마을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배척당하기 일쑤였고, 바다에서는 통발 조업 과정에서 다른 선주들과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며 귀어의 어려움을 떨어놨다.

이 때부터 그는 서울에서 공인중개사 시절 체득한 '상부상조'의 생활방식을 어민들에게 펴나갔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조업을 통해 어획한 제철 수산물을 일정량 나눠주고, 어민들과는 친밀도를 높이는 데 치중했다.

여기에는 공인중개사 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그를 통해 덕을 본 주민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텃새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지상 씨는 내친김에 대천항통발영어조합법인 총무직(무보수)을 맡아 자신과 같은 어업에 종사하는 동료들을 위해서도 일했다. 또 어선 전복 등 해양사고가 발생하면 구조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어업소득 수직 상승…새해 꽃게잡이 올인 그 결과는 어업소득 수직 상승으로 이어졌다. 귀어 이듬해인 2019년에는 2억 3000만 원, 2020년 2억 8000만 원, 2021년에는 3억 원의 고소득을 일궈냈다.

한별호는 풍랑주의보 등 특별한 예보가 없는 날이면 매일 새벽 2시께 대천항에서 만선의 꿈을 품고 보령 앞바다로 향한다. 같은날 낮 12시면 조업을 마치고 대천항으로 돌아온다.

12월부터 5월까지는 낙지, 6월부터 8월까지는 돌게·장어(아나고)·소라, 9월부터 11월까지는 꽃게를 잡는다.

이지상 씨는 “섬에서 자라고 바다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그런 데도 귀어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조건 베푼다는 생각으로 생활하다 보니 마을에 빨리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그러면서 “임인년 새해에는 꽃게 조업에 승부를 걸겠다”면서 “제철인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만에 꽃게 3억 원치를 잡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새해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지상씨(왼쪽)가 자신의 통발어선인 한별호에서 조력자인 동료와 함께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뉴스1

kluck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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