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베이비②]가족과 생이별?..겨우 만난 손자 보고도 '뒷짐'

강대한 기자 2022. 1. 8. 0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산후조리원은 출입조차 안돼..'프리패스' 남편의 막중한 임무
가족·지인 쪼개서 인사..아기와 코로나 '나노분리' 어려워

[편집자주]2020년 1월20일 우리나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인류의 생활 패턴을 바꾸어 놓았다. 유례 없는 전염병으로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수칙이 일상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변화된 일상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코로나 시국에 태어난 천사들, ‘코로나 베이비’다. 기자도 코로나 시국에 아빠가 됐다. 기자의 사연을 토대로 ‘코로나 베이비’의 일상을 풀어본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들.© 뉴스1

(창원=뉴스1) 강대한 기자 = 살아 있는 혈육이나 부부간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헤어짐을 ‘생이별’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시국에 태어난 ‘금쪽이’들은 대부분 생이별을 경험한다.

방역지침에 따라 입원실 및 산후조리원에는 남편이든, 친정 엄마든 단 1명만 출입할 수 있어서다. 나 같은 경우 산후조리원에는 아예 들어가질 못했다. 속옷 등 아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조리원 입구에서 기다려야 한다. 선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출산 소식을 들은 가족·친척·지인 등이 오가며 축하를 받던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홀로 시간을 보내는 아내도 무료한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육아 교육 프로그램도 사라졌다. 코로나19가 바꾼 산부인과 주변의 요즘 풍경이다.

조리원에는 출입이 안됐지만 입원실에는 들락날락한 ‘프리패스’ 카드를 쥔 유일한 1인. 그 1인에 선정된 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들에게 좀 더 많은 ‘코로나 베이비’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다.

오전·오후·저녁 하루 딱 3번만 보여주는 면회시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각 면회는 20분씩. 최대한 많은 동영상과 사진으로 귀한 얼굴을 담되, 영상통화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저 문명의 발전에 감사할 따름이다.

문명의 혜택 덕분(?)인지 신생아실에 설치된 큼지막한 통유리는 아래로 반쪽만 깨끗하다. 부부들이 ‘코로나 베이비’를 제대로, 가까이 보겠다고 유리에 찰싹 붙어 옷으로 비벼대고 있어서다. 통유리에 커튼이 처지기 전까지 한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고 모두 아우성이다.

코로나19를 깜빡 잊은 가족, 친지, 지인들이 병원까지 찾아오지만 예외는 없다. 보고픈 아기나 산모는 한 번도 못 보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썩 달가울리 없는 남편만 나와 마중하면 표정은 실망감이 가득하다.

그렇게 입원 1주일, 산후조리 2주일 동안 소고기·조개·가자미 등 갖가지 미역국만 질리도록 들이킨 아내는 아들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코로나 베이비’가 집으로 입성했지만, 모자를 기다리던 가족들은 얼씬거리지도 못한다.

출산 후 금기기간으로 대문에 쳐진 금줄을 걷던 ‘삼칠일’은 오늘날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와 산모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외부인의 접촉을 막는 정도로 이해된다. 모자는 삼칠일을 떼고 집으로 왔지만 더욱 예민할 수 밖에 없다. 전염병인 코로나19와 맞딱뜨려야 하는 일선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의 미역국.© 뉴스1

우리의 사정과 심정을 잘 아는 가족들은 아예 “보고싶다”는 말조차 꺼내지도 못한다. 나는 위로 형이 있고, 아내는 밑으로 남녀 동생 3명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 아버지만 계시고, 처가댁에는 장인·장모님 모두 건강하시다. 새 식구인 ‘코로나 베이비’까지 모두 10명의 직계 가족들은 생이별을 한 채 포스트 코로나만 기다렸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되레 심해져만 갔다. 손주 기다리다 망부석 되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때 쯤 겨우 어른들을 초대했다. 이미 아들은 태어난 지 100일쯤 되어갈 때였다.

어렵사리 손주를 본 우리 아버지는 정말 뒷짐지고 눈으로만 봤다. ‘까꿍놀이’도 마스크로 반쯤 가린 얼굴로만 하셨다. 그토록 보고 싶던 손주를 앞에 두고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보자 코로나19가 더 얄미웠다.

아내 눈치를 봐 가며 아버지에게 직접 손주를 안겨줬다. 그제야 멋적은듯 하면서도 해맑게 웃으셨다. 덩달아 아기도 할아버지를 보고 웃었고 분위기는 삽시간에 따뜻해졌다. 그렇게 3대가 만나 오래된 이야기 보따리를 풀듯 웃음꽃을 피웠다.

처가댁은 더했다. 가족들이라도 주소가 다르면 사적모임 5인 이상 금지에 해당돼 장인·장모님만 먼저 왔다. 불행 중 다행은 당시 영유아는 인원수로 산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또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

아내는 아들·딸 4명을 키워낸 장모님의 육아 노하우를 전수받았고, 나는 장인어른께 '가장의 마음가짐' 정도의 제목이 어울릴만한 '술자리 특강'을 들으며 잔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제, 처남은 따로 찾아왔다.

지인들의 발걸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코로나 베이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속 편했다. 그러나 속이 편한만큼 몸은 고단했다. 손님이 올 때마다 밥상을 따로 차려야 했고, 만일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식세기(식기세척기)도 구입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투자였다.

우리 부부는 애초 아들과 코로나19를 완전히 떼어놓고 싶었지만, 때아닌 생이별에 마음이 약해졌고 일상에 녹아든 코로나19는 '나노분리'로는 대처하지 못했다. 지금도 지속되는 코로나19에 그저 마음만 조릴뿐 안전한 육아에는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rok181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