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 누드 자화상 찍은 파격 사진가 정해창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2. 1. 8. 0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1929년 조선인 첫 예술사진 개인전 개최
풍경 사진으로 전통 풍속화 전통 이어
정해창이 1929년 촬영한 여인의 초상. 흰 저고리 차림에 흰 두건을 씌워 얼굴이 두드러지게 처리했다. 단아하면서도 기품있는 조선 여인의 미를 보여준다. 1998년 유리 원판으로부터 구본창 프린트, 사진컬렉션 지평

‘다년간 사진술을 연구하여 영리를 떠나서 예술사진을 제작하든 무허(無虛) 정해창씨는 그동안 박힌 자신 있는 사진 오십여점을 가지고 리제창씨외 여러 우인들의 후원으로 작품 전람회를 오는 29일부터 시내 광화문 빌딩(前반도신문사터)에서 개최한다는데 조선 사람으로 예술사진 전람회를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요 작품 중에도 훌륭한 풍경화가 많다더라.’(‘정해창씨 사진전람’, 조선일보 1929년 3월28일)

1929년 조선일보에 ‘최초’를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 ‘조선인 첫 예술사진개인전’을 여는 정해창(1907~1968)이 주인공이었다. 스물 둘 청년의 데뷔였지만, 동아, 중외일보는 물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까지 소개할 만큼 ‘최초’의 반향은 컸다.

◇흰 두건 쓴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

출품된 50여점 대다수는 ‘풍경 사진’이었다. 첫 전시회 출품작 중 유일하게 신문에 실린 사진이 ‘설경’(雪景·조선일보 1929년 3월29일)이다. 한겨울 눈 덮인 다리 풍경을 찍었다. 정해창 사진은 유리 원판 120여점이 남아있다. 야외에서 찍은 것 중 ‘설경’처럼 사람이 전혀 없는 사진은 13점뿐이다. 인물 사진 10여점을 포함, 대부분 사진 배경엔 사람이 들어가있다.

이 전시회에 출품된 것으로 보이는 여성 초상 사진이 있다. 흰 저고리 차림의 이 여성은 머리에 흰 두건까지 썼다. 시선은 정면이 아니라 45도 방향으로 비껴나있다. 주변 배경은 온통 흰색이고 조명을 받은 눈동자만 반짝인다. 단아하면서도 모던한 여인상이다.

1930년대 정해창이 촬영한 상반신 누드 자화상. 당대 어떤 조선인 화가도 시도하지 않은 파격적 작품이다. 예술적 자의식 강한 정해창의 면모를 보여준다. 1998년 유리원판으로부터 구본창 프린트. 사진 컬렉션 지평

◇관객 유혹하거나 도발하지 않는 시선처리

지난달 600쪽 가까운 저서 ‘한국사진사’(문학동네)를 펴낸 박주석 명지대 교수는 정해창의 인물 사진이 독특한 방법으로 촬영됐다고 설명한다. 먼저 사진 속 인물들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그래서 관객을 향한 유혹이나 도발의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인물의 굴곡을 살리는 대신 평면적으로 보이게 조명을 썼다. 한국 여성의 얼굴 형태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낼 수 있는 기법이라고 했다. 흰색 저고리에 흰색 두건까지 씌운 것은 여인의 얼굴이 갖는 미색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모델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사진 자체가 ‘절제를 통해 기품을 만드는 조선 여인의 미학을 자기 가치로 삼은 사진 작업’이라고 했다.

◇동경 외국어학교 다니며 사진 배워

정해창은 동경 유학생 출신 사진가였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보성고보를 졸업한 후 1922년 일본 동경외국어대에서 독일어를 전공했다. 그러면서 동경 가와비타(川端)회화연구소에서 서양화를 배웠고, 동경예술사진학교 연구실에서 사진을 시작했다. 1927년 동경외국어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정해창은 1939년 네번째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열 때까지 12년간 예술사진가로서 독자적 활동을 펼쳤다. 다른 사진가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한 ‘조선사진전람회’나 ‘납량사진 현상모집’같은 공모전에 출품한 적도 없다.

1929년 경성 광화문 빌딩에서 가진 첫 예술사진개인전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다른 이들과 달리 정해창만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45도 사선 방향을 보고 있다. 2002년 유리원판으로부터 주명덕 프린트. 사진 컬렉션 지평

◇조선일보 후원으로 지방 순회전

정해창은 1930년 10월 조선일보 후원으로 대구, 진주, 광주를 도는 지방 순회전을 열었다. 1년여 전 첫 개인전 성과를 지방에 소개하는 두 번째 개인전이었다. 전시회는 성황을 이뤘다. 10월9일부터 사흘간 조선일보 대구지국 주최로 도청 앞 임시회장에서 열린 전시회엔 3000명이 몰렸다.

첫 지방 순회전이라 허술한 점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이 처음인 만큼 급한 점이 많아 기대하시던 대구 여러 인사에게 죄송하게 되었다고 하며 요번 길에 남선(南鮮)을 순회하며 명승과 고적, 풍속 등을 돌아보고 계속하야 북선(北鮮) 지방을 돌아 내년 봄에는 완전한 작품을 많이 가지고 와서 여러분을 맞이하야 금번에 죄송하였음을 사과한다하며 진주로 향하였다고 한다.’(‘대구예술사진전람’, 조선일보 1930년 10월13일)

정해창은 1934년 서울 소공동 낙랑다방에서 세 번째, 1939년 종로 화신백화점 7층 갤러리에서 마지막 전시회를 가졌다. 네 번째 전시회를 알리는 기사(‘정해창씨 인화개인전’,조선일보 1939년 7월6일)에선 은퇴까지 예고했다.

정해창의 1929년 사진. 무제(두 여인). 1998년 유리원판으로부터 구본창 프린트. 사진컬렉션 지평

◇전각, 서예가로 변신, 동양미술사 강의

정해창은 이후 서예, 전각가로 변신해 전시회를 여는가하면, 동양미술사와 사진예술을 강의했다. 사진 입문서를 번역 출간하고 사진 관련 기고는 이어갔지만 1957년 뜻하지 않게 낙상으로 부상당해 칩거하면서 전통 사찰과 부도 등에 관심을 갖고 미술사 논문을 발표했다. 1968년 결국 낙상 후유증으로 별세했다.

1930년대 정해창이 촬영한 자화상. 역시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2002년 유리원판으로부터 주명덕 프린트. 사진컬렉션 지평

◇자의식 강한 누드 자화상

1930년대 정해창을 여느 사진가와 구별짓는 게 있다. 여러 점의 자화상, 특히 당대 어떤 조선인 화가도 시도하지 않은 상반신 누드 자화상을 남겼다는 점이다. 자화상은 개인을 사유의 중심에 놓는 근대성의 산물로 주목받는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와 그 뒤를 이은 렘브란트 등이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정해창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고희동 나혜석 김용준 이상 이인성 이쾌대 등이 자화상을 남겼다.

상반신을 드러낸 자화상은 그가 몸을 개인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내세웠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자기 몸을 피사체로 내놓을 만큼, 강한 자의식을 가진 예술가였다는 사실도 알 수있다. 박주석 명지대 교수는 ‘(정해창은) 이후에 등장한 그 어떤 사진가들의 사진보다도 한국적 정서를 잘 표현했고, 예술가로서 자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미적으로도 완결성을 가졌다’며 높이 평가했다.

2021년 12월 출간한 박주석 교수의 '한국사진사'. 정해창이 1929년 촬영, 조선인 첫 예술사진개인전에 출품한 여성의 초상을 표지사진으로 썼다. '한국사진사'는 1863년 이의익을 정사로 한 연행사일행이 북경에서 촬영된 사진부터 최근까지 한국 사진의 역사를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정리했다.

◇참고자료

박주석, 한국사진사, 문학동네, 2021

조선 뉴스라이브러리 100 바로가기

※'기사보기’와 ‘뉴스 라이브러리 바로가기’ 클릭은 조선닷컴에서 가능합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