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급등한 가구·치즈값..美 의회·Fed 흔들다 [글로벌 현장]
2022. 1. 8. 06:01
인플레이션, 바이든 정부 최대 골칫거리로..인력난 속 생활비 연동 임금제도 '속속'
글로벌 공급난 충격은 세계 최대 가구 회사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스웨덴계 다국적 기업인 이케아는 새해부터 글로벌 제품 가격을 평균 9%씩 인상했다. 2020년 3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발생 이후 누적돼 온 물류·인력난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비용 부담을 자체 흡수해 왔지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케아 측은 “미국에선 지금과 같은 공급 차질과 비용 압박이 2022년 내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성비를 중시해 온 이케아는 다른 어떤 회사보다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 글로벌 기업이다. 이케아가 한꺼번에 9%나 올린 것은 공급난의 역풍이 얼마나 거센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바이든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인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미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21년 11월 기준 6.8%(전년 동기 대비) 급등했다. 1982년 6월 이후 최대 상승폭으로 기록됐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역시 4.9% 뛰었다.
휘발유와 경유 등 에너지가 문제였다. 휘발유 값은 1년 만에 58.1%나 치솟았다. 중고차 가격은 같은 기간 31.4% 뛰었다. 물가 산정 기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200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공급 차질과 보상 수요, 원자재 값 급등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정부 지원금 등으로 지갑이 두툼해진 소비자들이 여행·레저 등 서비스를 줄이고 그 대신 상품 사재기에 나섰다는 지적도 있다. 이른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도 문제다. 2021년 말부터 코로나19 지배종으로 떠오른 오미크론 변이가 공급 교란을 심화시키고 다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새해부터 크래프트하인츠·몬덜리즈 등 대형 식료품 기업들은 치즈·쿠키·옥수수캔 등의 가격을 최대 20% 올렸다.
미 정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가 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2021년 1월 취임 후 최저치인 40% 선에 불과하다.
바이든 정부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연방거래위원회(FTC)·법무부·농무부 등을 동원해 반독점 조사를 벌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부 기업이 담합해 제품 가격을 끌어올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농무부는 대형 정육 업체들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가금류와 돼지고기 가격을 과도하게 인상했다고 보고 있다. FTC는 석유 업체들이 인위적으로 휘발유 등 가격을 올린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경제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물가 급등의 일차적인 원인은 정부와 의회가 막대한 돈을 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들의 인건비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자발적 퇴사자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추가 이직을 막으려면 임금을 더 줄 수밖에 없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고를 이유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임금 인상→기업 부담 가중→제품 가격 인상→임금 인상 요구’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기준으로 민간 부문 노동자의 임금은 평균 4.6%(전년 동기 대비) 인상됐다. 소매·유통 및 접객 업종 인상률이 높았지만 관리·경영·금융 등 전통 화이트칼라 직군의 인상률도 3.9%에 달했다.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이다.
비영리 조사 기관인 콘퍼런스보드 역시 2022년 미 기업들의 평균 임금 인상률을 3.9%로 추정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올해 임금 인상 계획을 사전 조사한 결과다.
물가와 임금이 자동으로 연동되는 제도가 수십년 만에 부활한 것도 팬데믹 이후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다. 그 무엇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인력 부족 사태가 맞물린 데 따른 영향이다. 노동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의 협상력이 전례없이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발적인 직장 퇴사자 수는 2021년 7월부터 4개월 연속 400만 명을 넘었다.
물가와 임금 연동제를 도입한 대표적 기업은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 업체인 존디어와 시리얼 브랜드로 유명한 켈로그다. 이들 기업의 노사는 2021년 말 ‘생활비연동조정(COLA) 규정’을 나란히 단체 협약에 도입했다. 특히 존디어는 3개월마다 물가지수를 따져 실질 임금을 보전해 주기로 했다.
해리 카츠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활비 연동 조정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에 도입한 제도”라며 “기본적으로 노사가 위험을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마이클 월든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명예교수는 “광범위하게 도입하면 인플레이션을 아예 제도화하는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며 “1970년대에도 이런 제도가 임금과 물가의 악순환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올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7% 가까이 치솟았던 작년보다 완화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악의 공급 교란을 겪어 온 기업들이 다양한 해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처 다변화와 함께 기술 혁신을 추구하고 있어 추가 가격 인상이 제한될 것이란 진단이다. 2021년 소비자물가가 많이 뛰었던 데 따른 기저 효과도 기대된다.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물가 급등세가 조기에 누그러지기는 어렵지만 올해 3~5% 범위에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중앙은행(Fed) 역시 2021년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내놓은 경제 전망에서 연말 개인소비지출(PCE) 근원 물가를 2.7%로 예상했다. 38년여 만의 최고치였던 작년 11월(4.7%)의 절반 수준이다.
투자은행 JP모간은 올해 1분기 소비자 물가가 3.5%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급등했던 에너지 가격이 안정을 회복하면서 물가 우려를 덜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소비자 물가 기준 3~5% 역시 경제엔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 경제가 오랜 기간 2%대 저물가에 안주해 온 때문이다.
물가 상승이 Fed의 조기 긴축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월가에선 물가 상승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Fed가 이르면 3월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테이퍼링(채권 매입 감축)을 끝내자마자 바로 긴축을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준금리 인상 확률을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Fed워치에 따르면 3월 금리 인상 확률이 70%에 달하고 있다. 한 달 전 예측 때(25%)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물가 이슈는 정치권도 흔들고 있다. 오는 11월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대부분을 물갈이하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영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CNN이 작년 말 긴급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256명 중 72%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80%는 “생필품 가격 인상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1년 전보다 재정 형편이 나아졌다는 응답자는 21%에 불과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
[글로벌 현장]
글로벌 공급난 충격은 세계 최대 가구 회사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스웨덴계 다국적 기업인 이케아는 새해부터 글로벌 제품 가격을 평균 9%씩 인상했다. 2020년 3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발생 이후 누적돼 온 물류·인력난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비용 부담을 자체 흡수해 왔지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케아 측은 “미국에선 지금과 같은 공급 차질과 비용 압박이 2022년 내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성비를 중시해 온 이케아는 다른 어떤 회사보다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 글로벌 기업이다. 이케아가 한꺼번에 9%나 올린 것은 공급난의 역풍이 얼마나 거센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바이든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인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미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40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 직면한 미국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21년 11월 기준 6.8%(전년 동기 대비) 급등했다. 1982년 6월 이후 최대 상승폭으로 기록됐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역시 4.9% 뛰었다.
휘발유와 경유 등 에너지가 문제였다. 휘발유 값은 1년 만에 58.1%나 치솟았다. 중고차 가격은 같은 기간 31.4% 뛰었다. 물가 산정 기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200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공급 차질과 보상 수요, 원자재 값 급등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정부 지원금 등으로 지갑이 두툼해진 소비자들이 여행·레저 등 서비스를 줄이고 그 대신 상품 사재기에 나섰다는 지적도 있다. 이른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도 문제다. 2021년 말부터 코로나19 지배종으로 떠오른 오미크론 변이가 공급 교란을 심화시키고 다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새해부터 크래프트하인츠·몬덜리즈 등 대형 식료품 기업들은 치즈·쿠키·옥수수캔 등의 가격을 최대 20% 올렸다.
미 정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가 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2021년 1월 취임 후 최저치인 40% 선에 불과하다.
바이든 정부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연방거래위원회(FTC)·법무부·농무부 등을 동원해 반독점 조사를 벌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부 기업이 담합해 제품 가격을 끌어올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농무부는 대형 정육 업체들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가금류와 돼지고기 가격을 과도하게 인상했다고 보고 있다. FTC는 석유 업체들이 인위적으로 휘발유 등 가격을 올린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경제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물가 급등의 일차적인 원인은 정부와 의회가 막대한 돈을 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인 72% “인플레 대응 못한 정부에 실망”
기업들의 인건비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자발적 퇴사자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추가 이직을 막으려면 임금을 더 줄 수밖에 없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고를 이유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임금 인상→기업 부담 가중→제품 가격 인상→임금 인상 요구’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기준으로 민간 부문 노동자의 임금은 평균 4.6%(전년 동기 대비) 인상됐다. 소매·유통 및 접객 업종 인상률이 높았지만 관리·경영·금융 등 전통 화이트칼라 직군의 인상률도 3.9%에 달했다.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이다.
비영리 조사 기관인 콘퍼런스보드 역시 2022년 미 기업들의 평균 임금 인상률을 3.9%로 추정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올해 임금 인상 계획을 사전 조사한 결과다.
물가와 임금이 자동으로 연동되는 제도가 수십년 만에 부활한 것도 팬데믹 이후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다. 그 무엇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인력 부족 사태가 맞물린 데 따른 영향이다. 노동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의 협상력이 전례없이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발적인 직장 퇴사자 수는 2021년 7월부터 4개월 연속 400만 명을 넘었다.
물가와 임금 연동제를 도입한 대표적 기업은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 업체인 존디어와 시리얼 브랜드로 유명한 켈로그다. 이들 기업의 노사는 2021년 말 ‘생활비연동조정(COLA) 규정’을 나란히 단체 협약에 도입했다. 특히 존디어는 3개월마다 물가지수를 따져 실질 임금을 보전해 주기로 했다.
해리 카츠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활비 연동 조정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에 도입한 제도”라며 “기본적으로 노사가 위험을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마이클 월든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명예교수는 “광범위하게 도입하면 인플레이션을 아예 제도화하는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며 “1970년대에도 이런 제도가 임금과 물가의 악순환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올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7% 가까이 치솟았던 작년보다 완화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악의 공급 교란을 겪어 온 기업들이 다양한 해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처 다변화와 함께 기술 혁신을 추구하고 있어 추가 가격 인상이 제한될 것이란 진단이다. 2021년 소비자물가가 많이 뛰었던 데 따른 기저 효과도 기대된다.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물가 급등세가 조기에 누그러지기는 어렵지만 올해 3~5% 범위에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중앙은행(Fed) 역시 2021년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내놓은 경제 전망에서 연말 개인소비지출(PCE) 근원 물가를 2.7%로 예상했다. 38년여 만의 최고치였던 작년 11월(4.7%)의 절반 수준이다.
투자은행 JP모간은 올해 1분기 소비자 물가가 3.5%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급등했던 에너지 가격이 안정을 회복하면서 물가 우려를 덜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소비자 물가 기준 3~5% 역시 경제엔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 경제가 오랜 기간 2%대 저물가에 안주해 온 때문이다.
물가 상승이 Fed의 조기 긴축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월가에선 물가 상승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Fed가 이르면 3월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테이퍼링(채권 매입 감축)을 끝내자마자 바로 긴축을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준금리 인상 확률을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Fed워치에 따르면 3월 금리 인상 확률이 70%에 달하고 있다. 한 달 전 예측 때(25%)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물가 이슈는 정치권도 흔들고 있다. 오는 11월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대부분을 물갈이하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영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CNN이 작년 말 긴급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256명 중 72%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80%는 “생필품 가격 인상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1년 전보다 재정 형편이 나아졌다는 응답자는 21%에 불과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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