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비상] 부메랑 된 외화채권.. 은행권 손실 증가 우려

허지윤 기자 2022. 1.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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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딜러를 비롯한 실무자들은 일이 늘어나니 괴로운 상황이죠. 자칫 에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고요.”

최근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르면서 외환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질 가능성에 은행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3.2원 오른 1204.2원에 거래를 시작해, 1201.5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중 기준으로는 2020년 7월 20일(1206.5원) 이후 최고 수준이고, 종가 기준으로는 2020년 7월 24일(1201.5원)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테이퍼링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에 미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달러를 밀어올린 것이다.

환율 변동은 금융사들이 꼽는 시장위험 요소 중 하나다. 통상 고(高)환율 상황에서는 은행들이 외화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 달러를 대량 보유한 기업이나 개인들이 달러를 팔면서 외화 예금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외화 자산보다 외화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환율이 급등하면 예년보다 회계상 손실이 크게 인식될 우려도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환율 변동에 따른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만 은행업계에서는 외화 유동성 측면에서 엄격하게 리스크를 관리해왔기 때문에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외환 업무 담당자는 “환율 변동과 함께 금리 인상, 주식시장의 변동성 확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확대 가능성 등에 따라 리스크가 커질 수도 있고 위험성이 완화할 수도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시작 직후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선 7일 오전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금융지주사들 장부 상 외화환산손실 커질 수도 있어”

통상 환율이 급등하면 금융그룹의 손익을 보여주는 회계 장부 상에도 영향을 준다. 단적인 예가 ‘외화환산손익’이다. 이는 기업이 보유한 외화 또는 외화로 표시된 채권과 채무를 기말 결산일에 원화로 환산해 평가할 때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발생한 손실이라기보다는 회계 장부상 인식되는 손실이다.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면 외화환산손실이 커질 수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은행의 외화 부채 규모가 크게 잡히는 탓이다. 즉 외화 부채와 외화 자산 간 갭이 발생하면서 그만큼 손실이 커지는 것이다. 반대로 환율이 급락하면 외화환산이익 등 회계 상 수치가 개선되는 효과가 생긴다.

4대금융지주 중에서는 하나금융지주가 환율에 따른 외화환산손익 변동 폭이 큰 편이다. 외환은행과 합병 과정에서 외환은행의 외화 부채도 안으면서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부채가 많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까지 회계 상에서 ‘원화 강세’ 효과를 봤다. 하나금융지주의 3분기 누적 외화환산이익은 882억3100만원으로, 전년 동기(183억9300만원)보다 이익이 커졌다. 지난 2020년 1분기 코로나19 충격으로 한때 환율이 1280원까지 급등하면서 1091억원의 비화폐성 외화환산손실을 기록했는데, 2020년 4분기 환율이 급락하자 유가증권 평가손익 등이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그간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하나금융의 비화폐성 외화 환산 손실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영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 4분기와 올해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이 향후 공시 실적에 반영되면서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KB금융지주의 작년 3분기까지 외화환산 손실이 1855억1700만원으로, 전년 한해 손실 규모(1177억8600만원)를 넘어섰다. 우리금융지주는 작년 3분기까지 누적 외화환산 손실은 937억9500만원이다. 전년 한해 외화환산손실은 1915만400만원이었다. 신한금융지주는 작년 1~3분기 누적 367억4200만원의 외화환산 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연간 외화환산손실이 143만8000만원이다.

A금융지주 관계자는 “외화환산손실은 단순히 장부상 손실일 뿐”이라면서 “이는 외화 후순위채나 외화신종자본증권 등 파생상품을 통해 손실을 헤지(hedge·위험자산의 가격변동을 제거)고 있기 때문에 실제 리스크를 키우는 요소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B금융지주 측 관계자는 “필요시에는 외국계은행과 통화스와프를 통해 장기 채권과 장기 자산의 환율을 고정시키는 방안도 있다”면서 “설정된 리스크 한도 범위 내에서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급격한 환율 변동성 확대 등에 대비하기 위해 환율 동향 모니터링·익스포저 점검을 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영향도를 분석하며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부쩍 늘어난 은행 달러예금… “한은 금리 변수 있어”

신한·KB국민·우리·하나 등 4대 시중 은행의 지난해 12월 말 기준 미국 달러 외화예금 잔액은 총 536억5041만달러(약 64조 4877억여원) 규모로, 전년(484억3233만달러) 대비 약 10.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작년 11월 기준 미국 달러화 예금은 888억달러(약 106조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강세에도 외화 예금이 예년보다 증가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해외채권 발행과 상환 예정 자금, 해외투자 자금 등 자본거래 관련 자금을 기업들이 예치하면서 외화 예금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즉,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기업이 해외채권을 발행할 때 들어온 외화를 예치하고, 이 자금을 채권 발행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언제 빠져나갈지는 모른다는 게 한은 측 설명이다.

환율이 낮을 때 향후 달러 강세를 기대하며 달러를 사들이는 심리도 작용하긴 했다. 기업들은 수입 대금 결제 등을 위해 유학생 자녀 등 달러 실수요가 있는 고객 등을 중심으로 달러를 미리 사두는 경향이 있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작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에 달러 가치가 더 오를 것으로 기대 하에 달러 예·적금 수요가 늘긴 했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상반기 외화 예금의 향배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은행 관계자는 “환율 상승을 기대하고 예금 유입이 더 늘 수도 있는 반면, 차익 실현을 노리는 매물이 더 많이 나올 수도 있어 향후 추세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금리 인상에 이은 한은의 금리 인상 결정 시점이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후속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환율 변동성 우려는 완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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