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동맹을 코너로 몰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호주 방문 당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북한이 모두 종전 선언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전제 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철회를 내세우고 있고, 이 때문에 남북 간, 미북 간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맹 정치에서 ‘동맹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기’라는 것이 있다. 어느 일방이 공개 발언을 통해 상대방을 비난받고 책임져야 할 처지에 놓이도록 압박하는 상황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몇 주간 종전 선언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문 대통령의 호주 캔버라 성명은 사전에 워싱턴과 조율됐는지 여부가 완전히 불분명하다. 미국과 한국은 지난 몇 달 동안(대부분 한국이 요청해) 종전 선언에 관해 공을 들였지만, 이러한 논의는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문 대통령의 발표는 다소 시기상조였다.
워싱턴의 전문가들도 바이든 행정부에서 그런 발표를 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북한의 회담 조건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종식이라고 해도 한국 정부는 이를 미국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미국이 얼마나 자주 북한에 비적대적 입장을 표명했는지 옹호하는 입장에 서야 했다. 예를 들면 1993년 6월 미·북 공동성명에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 위협·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듬해 10월 미·북 기본 합의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 위협이나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확언했다.
클린턴 2기 때인 2000년 미·북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서로 적대감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과거의 적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확인했다.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고, 2005년 9월 6자 회담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도가 없다”고 확언했다. 이어 2006년 11월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안보 협정을 맺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북한에는 평화와 경제적 기회로 이어지는 또 다른 길이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2009년 11월 “미국은 북한에 다른 미래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북한은 더 큰 안전과 존중받는 미래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18년 7월 김정은과 벌인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의 갈등이 내일의 전쟁일 필요는 없다”며 “역사가 계속해서 증명하듯 적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1989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대통령,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적어도 40차례에 걸쳐 북한에 적대적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다른 어떤 비동맹보다 더 북한에 자주 안전 보장을 약속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북한에 대해 비적대적 의향을 명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종전 선언이 대화 재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켜 상황을 심각하게 악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또한 미국을 곤경에 빠지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문재인 정부는 대북 담화에서 비핵화라는 말을 드물게 사용하면서 비핵화를 낮은 순위로 격하했다. 그리고 북한이 회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양보(즉 비핵화 조치 없는 제재 완화)하라고 종전 선언의 공을 다시 미국으로 넘긴 것이다. 또 탄도미사일 실험이 없다고 해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중단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중을 심각하게 오도하는 것이다. 열 적외선을 사용한 CSIS의 최근 위성 사진은 북한 영변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이 완전히 가동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더 많은 핵무기를 생산한다는 의미다.
한국과 미국이 종전 선언에 아무리 공들인다 해도 북한은 이를 ‘종이 한 장’ 정도로 받아들이고 제재 완화, 합동 군사훈련 중단, 주한 미군 철수, 미국 핵우산 폐기 등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선언이 한반도의 평화가 북한의 끊임없는 핵무장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공인하는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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