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목숨 걸고 소명 지키는 유일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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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제동 2층 주택에서 불이 났다. 소방관 46명이 출동했지만 다른 차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했다. 소방관들이 소방 호스를 끌고 수십 미터를 달렸다. 구조대는 불 속에 뛰어들어 집주인과 세입자 가족을 구출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아들이 안에 있다”고 울부짖었다. 소방관 3명이 다시 불 속에 뛰어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있는데 왜 돌아왔느냐”는 집주인의 항의에 방화복도 입지 않은 소방관 10명이 또다시 뛰어들었다.
▶얼마 후 굉음과 함께 집 전체가 내려앉았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소방관 수십 명이 다시 달려들었다. 굵은 눈발 아래 처참한 잔해 속에서 소방관 6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수색을 멈추지 못했다. 애를 태우는 집주인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 아들이 화재 현장이 아니라 친척 집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구조 작업이 끝났다. 이 아들이 불을 지른 방화범이었다.
▶이때 순직한 소방관 책상에서 미국에서 유래했다는 ‘소방관의 기도’가 발견됐다. ‘신이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2001년 일어난 홍제동 방화 참사는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 문제와 함께 공직의 직업적 소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이 사회에 던졌다. 이 소방관들의 희생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들이 방화범이란 사실을 알았어도 불 속에 뛰어들어야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한 생명을 구하라는 것이 신의 부름일까? 소방관은 모두 “그렇다”고 한다. 그것이 그 직업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탈출하는 곳으로 달려들어야 하는 직업이 군인, 경찰, 소방관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이런 직업의 역할이 빛나는 나라다. 6·25전쟁 이후 연평해전과 천안함까지 수많은 군경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번영도 없었다. 하지만 번영과 안정 속에서 직업적 소명을 잊어버린 군인, 경찰도 많이 보게 된다.
▶경기도 평택에서 창고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3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화재 진압과 인명 구출만큼 소방관의 안전도 소중하다. 위험한 진압 방식과 관행을 고쳐야 한다. 소방관은 지금 이 사회에서 목숨을 걸고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2020년 울산 주상 복합 화재 당시 33층 꼭대기에서 구출된 시민이 이렇게 말했다. “연기에 쓰러지기 직전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헬멧을 쓴 신(神)인가’ 하며 의식을 잃었다.” 이 숭고함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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