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테러' 무서워 글 못 쓰나요? 당신만이 아닙니다

양지호 기자 2022. 1.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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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헌법|조너선 라우시 지음|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432쪽|2만1000원

소셜미디어는 현대 민주주의에 위기를 가져왔다.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을 기본 값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가짜 뉴스를 통한 선동과 날조를 일삼는 자들이 있다. ‘트럼프가 사실 2020 대선에서 승리했다’며 지지자들이 소요 사태를 일으킨 것은 유명한 사례. 한국에서는 동료 집단에서 지지받지 못하는 의학자가 ‘코로나 백신은 효과가 없다’는 주장으로 백신 접종률을 낮추고 있다.

다음 무기는 ‘언팔’을 무기로 겁박하는 사람들이다. 팔로어 수가 권력인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어가 셀럽을 응징하는 방법은 팔로우·구독 등을 끊는 것이다. 영어로는 ‘취소 문화(Cancel culture)’라고 한다.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아웃’된다. 정치인·연예인이 주 대상이지만, 드라마나 영화로도 확장한다. 여남·남녀 갈등 같은 첨예한 문제에서는 입 다물고 있는 게 답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반려견’이라는 표현 대신 ‘애완견’이라 말하면 바로 ‘수준이 낮다’며 응징당한다.

조너선 라우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쓴 ‘지식의 헌법’은 양식 있는 사람들이 상식적인 대화를 나누기란 갈수록 요원해지는 것만 같은 현대사회의 병폐를 지식의 형성 원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다. 그가 말하는 지식(knowledge)은 흔히 우리가 ‘진리’와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류가 옳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한 단독자의 경험이 아닌 ‘우리의 경험’을 통해 체계화됐다고 그는 말한다. “어떤 한 사람의 경험이 단독으로 존재한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 만일 그가 타인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것을 환각이라 부른다. 당신과 나는 ‘우리’보다 편향됐다.”

그렇기에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은 ‘지식 형성’이라는 추상적 이야기와 하나로 묶인다. 지식은 공동체에 의해 형성되는 일종의 집단 지성인데, 소셜미디어는 지식 생성을 교란한다. 이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저자는 가짜 뉴스와 ‘취소 문화’를 정조준한다. 미국에서는 전자는 극우, 후자는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일부 좌파 세력의 무기다. 한국에서는 좌우 관계없이 확산하는 전략이다.

가짜 뉴스는 알겠는데, 취소 문화란 무엇인가. 저자는 ‘강압적 동조와 이념적 블랙리스트를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학내 따돌림이 무서워서, 또는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발언을 했다’며 신고할까봐 인종·성적 지향·계층·소수자 같은 주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미국 대학생과 교수를 인터뷰한다. 특정 집단의 지배적 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순간 인생이 ‘취소’당할까 두려워 자기 검열에 빠진다. ‘바른 마음’ ‘나쁜 교육’을 쓴 저명 학자 조너선 하이트 교수도 이들 중 한 명이다. 하이트 교수는 “전 뉴욕대에서는 모험을 하지 않아요. 언제든 신고당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한국에서야 ‘언팔’로 끝나지만 미국에서는 트위터에 무심코 남긴 한마디로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저자 역시 동성애자로 동성애 인권 운동을 해온 사람이지만, 소수자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미국 현실에 혀를 내두른다. “그들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겁먹게 해서 입을 다물게 만든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취소 문화의 신봉자는 ‘상처를 주는 표현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한다. 라우시는 그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입을 다물게 하고, 신경증에 걸리게 하며, 갈등을 초래하고, 과잉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보상을 준다. 즉 검열 기계다.”

그러나 그는 소셜미디어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는 위키피디아처럼 이제는 공신력을 어느 정도 확보한 백과사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각 소셜미디어 업체들은 가짜 뉴스를 줄일 방안을 (뒤늦게나마) 고안하고 있다. 흔히 지식의 보고라고 생각하는 인쇄술 발달도 1400년대 마녀에 대한 소책자를 유럽 전역으로 퍼뜨리며 공황과 살인을 불렀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러나 초기 혼란이 끝나 인쇄술이 가져온 인류 지식사의 공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용자가 보다 현명해져야 한다는 결론은 다소 평범하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한국과 세계를 지배해온 ‘가짜 뉴스’와 ‘취소 문화’에 대한 분석은 시의적절하고 흥미로운 사례로 가득하다. ‘이런 말 요즘 하면 안 된다는데,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됐나?’라는 생각을 해봤다면 ‘7장 취소 문화’를 읽으면서는 위로를 얻을 수도 있다. “경쟁적 비난은 우리가 하지 말기로 선택할 수 있는 게임이다” 같은 직역투 번역이 이어져 거슬린다. 미국 헌법에서 주장하는 가치와, 지식 생성 체계가 요구하는 미덕이 닮았다는 논지 전개는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생소할 수 있다. 원제 ‘The Constitution of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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