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푹 끓인 뜨끈한 스튜에서 희미한 살인의 냄새를 맡았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2022. 1.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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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필름 위의 만찬]
영화 '헤이트풀8' & 스튜
영화 '헤이트풀8'에서 등장인물들이 '미니의 스튜'를 먹는 장면./와인스틴 컴퍼니

1877년, 적막이 공기에 그득히 밴 미국 와이오밍의 설원 위로 마차 한 대가 외로이 달린다. 승객은 교수형 집행인 존 루스(커트 러셀)과 살인마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다. 두 사람은 쇠사슬로 연결돼 있지만 운명은 더 이상 극과 극일 수 없다. 마차가 목적지인 레드록에 도착하면 도머그는 교수형을 당하고, 루스는 그의 현상금 1만달러를 챙길 예정이다.

양극단의 운명을 싣고 달리는 마차에 두 승객이 합류한다. 첫 번째 승객은 현상금 사냥꾼이자 미 북부군 예비역 소령 마커스 워런(새뮤얼 잭슨)이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형무소를 방화하고 탈옥해 명성을 날린 그는 도합 8000달러의 범죄자 시신 세 구를 레드록으로 가져가는 길이다. 두 번째 인물은 유명한 남부군 빨치산의 아들인 크리스 매닉스(월튼 고긴스)다. 그는 신임 보안관으로 발령받아 레드록에 가는 길이라며 읍소해 마차에 몸을 싣는다.

죽고 산 사람을 잔뜩 실은 바쁜 마차건만 날씨가 덜미를 잡는다. 눈보라가 심하게 날리기 시작해, 마차는 쉼터인 ‘미니의 잡화점’에 간신히 도착해 여장을 푼다. 잡화점 문을 열어 보니 주인인 미니와 남편 스티브 등 관계자는 아무도 없고 낯선 이만 가득하다.

대리 관리자라는 멕시코인 밥은 미니가 남편과 친정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지 일주일이라 말한다. 하지만 눈치 빠른 워런은 수상한 낌새를 채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스튜를 먹고 커피를 마신 루스와 마부 오비가 피를 토하고 죽는다. 누군가 커피에 독을 탄 것이다.

영화 '헤이트풀8'에서 등장인물들이 '미니의 스튜'를 먹는 장면./와인스틴 컴퍼니

“근데 난 스튜가 마음에 걸려. 미니의 스튜를 맛본 지 6개월이나 됐지만 저건 누가 뭐래도 미니의 스튜야. 미니가 어머니를 보러 일주일 전에 떠났다면 어떻게 오늘 아침에 스튜를 끓였지?”

워런이 예상했다는 듯 기선을 제압하고 스튜를 실마리 삼아 이상한 점을 되짚어 나가자 곧 전말이 드러난다. 멕시코인 밥과 나머지 인물들은 조디 도머그(채닝 테이텀)가 이끄는 갱단의 일원이었다. 누나인 데이지를 구할 심산으로 미리 도착해 잡화점의 모두를 죽인 것이다.

“우리 엄마도 스튜를 끓였는데 어떤 고기를 써도 맛은 항상 똑같았어. 찰리 삼촌의 스튜도 마찬가지라서 어떤 고기를 써도 같은 맛이 났지.” 오, 생각해보니 그랬다. 워런 소령의 논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튜는 정말 그렇다. 고기로 중심을 잡아주고 감자, 당근, 양파 같은 채소류에 콩 같은 곡식까지, 온갖 재료를 뭉근한 불에서 오래 푹 끓인다. 그러면 모든 재료가 십시일반 자기 지분을 공평하게 내놓아 딱히 한 맛이 두드러지지 않는, 둥글둥글한 표정의 음식으로 거듭난다.

심지어 십시일반 개념이 아예 이름에 배어 있는 스튜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토마토 해산물 스튜 ‘치피노’는 물고기를 잡지 못해 끼니를 굶게 된 어부에게 동료 어부들이 조금씩 보태준(chip in) 해산물로 끓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영화 '헤이트풀8'에서 사건 해결의 결정적 실마리가 된 '미니의 스튜'./와인스틴 컴퍼니

스튜 하나로 까발려진 모의는 결국 타란티노식(式) 총부림으로 막을 내리니, 시기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등장인물이 미니의 잡화점에서 숨을 거둔다. 최근 추운 날씨에 영화의 한기까지 스며들어, 다 보고 나니 따끈한 스튜 생각이 간절해졌다.

영화 속 사건 해결의 실마리인 까닭에 미니의 잡화점 스튜는 많은 이가 궁금해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맛이 궁금하다고? 영화 속 모양새와 인터넷의 레시피들을 교차로 참고하면 두 갈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영화의 스튜 자체는 색깔도 생김새도 카레를 닮았다. 카레도 결국은 강황을 비롯한 향신료 몇 가지로 끓인 스튜이니, 우리라면 인스턴트 믹스를 사서 상자의 조리법을 따라 끓이면 된다. 고기는 운동을 많이 한 부위인 목과 어깨 근처, 즉 소 목심과 돼지 목살이 푹 끓이기에 좋고 맛도 있다.

이 카레, 아니 스튜에 익숙해졌다면 고기와 채소는 똑같이 조리하되 카레 믹스 대신 통조림 토마토를 더해 끓인다. 그럼 가장 일반적인, 미니의 잡화점에서 낼 만한 스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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