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옛 중수부만도 못한 공수처
2011년 6월 3일 밤 10시 서울 서초동 법조 타운의 한 호프집에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 중이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핵심 멤버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조사 중이던 참고인들을 모두 집에 보내고 ‘셔터’ 내리고 왔다”고 했다. 그날 국회 소위에서 여야가 중수부 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방안에 합의하자 반발한 것이다. 한 간부는 “우리가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인 수사를 하니 ‘눈엣가시’를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중수부는 내내 ‘정치 수사’ 논란을 겪었다. 검찰총장의 ‘직할 부대’ 소리를 들으며 권력 의중에 따라 ‘선택적’ 수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2013년 4월 중수부는 32년 만에 현판을 내렸다.
그런 중수부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했다. 1997년과 2002년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 현직 대통령 아들을 구속했다. 이후 2012년 ‘파이시티 인·허가 사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구속할 때까지 실세 여럿이 중수부 문턱을 드나들었다. 특히 정치인 수사를 할 때는 ‘여야를 동수(同數)로 맞춘다’는 ‘기계적 중립’을 취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모습이라도 보이겠다는 것이었다.
과거 중수부가 담당했던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 우선권은 현 사법 체계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어받았다. 국민이 공수처에 기대한 것은 고위 공직자에 대한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였는데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다. 공수처가 수사 중인 12건 중 4건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관련됐고(작년 12월 말 기준), 이 때문에 ‘윤석열 수사처’라는 비아냥을 받는다. 공수처가 야당 의원들과 공수처를 비판한 언론인들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횟수는 이제 더 이상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반면 공수처가 여권 정치인을 수사한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총괄하고 있는 공수처 여운국 차장이 작년 말 국회 법사위 소속인 민주당 박성준 의원과 통화하고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자초했다. ‘중립적으로 보이는 것’마저 포기한 듯하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서 보여준 부실 수사 및 편파 수사 논란, ‘통신 자료 조회’ 논란에서 빚어진 민간인 사찰 의혹 등 온갖 얼룩이 묻은 공수처는 약 보름 뒤면 생일을 맞는다. 기쁜 날이지만 수사하느라 고생했다고 자축할 것이 아니라 지난 1년 했던 일을 곰곰이 돌아보길 바란다. 턱없이 부족한 수사 실력을 하루아침에 키우기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실력이 안 되면 최소한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공정성을 지키려는 모습이라도 보이도록 쇄신해야 한다. 개업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폐업하라’는 요구를 받는 게 공수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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