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기계적 두상, 우리시대의 정신
[경향신문]
따지고 보면, 예측도 상상도 한 적 없는 미래가 펼쳐진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 어느 시점엔가 예상하거나 제시했던 미래가, 단지 내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 삶에 개입할 뿐 아닌가.
현대자동차그룹이 한때는 그룹의 ‘두뇌’로까지 여겨졌던 엔진개발센터를 폐지한 것이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의존하는 인프라 역시 영원할 리 없다는 것을 다들 짐작하고 있다.
삶의 기반이 급격하게 변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을 살았던 유럽 사람들의 마음에 감정이입되는 순간을 자주 만난다. 전에 없던 기술이 속속 등장하여 내가 알던 세계를 접어버리는 기분. 기술에 힘입어 성능이 현격하게 향상된 무기가 맹활약한 1차 세계대전으로 정신적·물질적 토대가 무너지는 상황을 겪는 기분. 과학기술의 역량 앞에서 이들이 겪었을 혼돈이, 지금의 인류가 겪는 혼돈과 다를까.
마치 지금처럼 기술문명을 향한 다양한 입장이 혼재하던 그 시절, 반이성·반도덕·반예술을 표방하며 기존의 모든 가치나 질서를 부정하던 다다이스트 가운데 한 명인 라울 하우스만은 ‘기계적 두상(우리시대의 정신)’을 통해 기계문명에 의탁하여 결정내리는 인간의 정신, 주체성을 점검했다. 그는 헤어드레서의 모형인형에 줄자, 회중시계, 망원경 손잡이, 인쇄용 롤러, 카메라 나사 등을 붙였다. 작가는 이 ‘로봇화된’ 머리를 통해, 당시의 인간들이 중요한 판단을 오로지 기술·산업에 의존해 내리는 것은 아닌지, 감정과 영혼을 비워낸 빈 깡통처럼 변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빈 깡통’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했다. 나무 머리의 텅 빈 눈에 시선을 맞추며,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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